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물젤리 Aug 30. 2023

미남이는 매일매일  복수를 하기로 했다

여섯 살 미남이

서울에 있는 딸이 거의 한 달 만에 내려왔다.

통화할 때마다 소식을 듣고 종종 영상통화까지 하면서도 늦게 도착한 딸의  궁금증은 미남이에게  쏠렸다.


얼마 전에 조카 사위인 미남이 아빠 생일이었다.  그날은 별일 없이 지나갔는데 다음날  잠에서 깬 미남이가 빕스 왜 안 갔냐고 아침부터 울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벌써 한참 전에 다음 가족 생일 때는 빕스가 자는 말을 지나듯 했었는데  생일날은 잊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야 그 말을 생각해 낸 게 문제였다.


약속을 했으면 가야지 왜  안 데리고 가서  애를 울리냐던 딸은 내일 미남이 데리고 빕스에 가자고 했다.


어린이 집 점심시간이 11시 30분이라 그전에 도착하려면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깜짝 이벤트로 그렇게 좋아하는 이모가 짠 하고 나타나서 어린이 집에서  조퇴까지 시켜주니 미남이 기분이야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미남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맞은편에서 7분 대기가 뜨는 카카오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낮  땡볕이래 그늘도 없는 곳에서 얼굴을 뜩 찡그리며 서 있는데 어린이 집에서 나오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다.

"어? 우리 한자 할아버지네?"

셋이 인사를 하고 오늘도 한자를  배웠냐고 물었다.

"동쪽 서쪽 죠? 오늘은 녘동을 배웠어요"

"그럼  글자 알아?"

"동녘동 알죠오"

대답에 자신감이 뚝뚝 묻어났다. 그래도 원체 입만 살아서 둥둥 뜨는 미남이다보니 행여나 니가?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정말이냐고 마구마구 바람을 잡았다.


"그럼 미남이 동녘동 쓸 줄도 알아?"


"당연히 알죠오"


큰소리를 친 미남이는 글자를 쓰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지손가락을 펴서 허공에다  네모를 먼저 그리더니 어찌어찌 동녘동 비슷하게 써냈다.

미남이가 어떤 글자를 쓸지 미리 알고 있는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복잡한 퍼즐 맞추듯해서 겨우 동녘동이란 걸 알아챘지만 가르쳐주신 한자 할아버지가 보셨어도 알지 못할  세상에는 없는 창의적인 글씨체로 어렵게 그려 다.


"어머 어머 진짜 썼어"

"이렇게 어려운 글자를 미남이가 쓰다니 말도 안 돼"

한자 한 글자로 얻어먹은 감동이 워낙 크다 보니 잠시동안은 더위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그 어려운 글자를 썼어 미남아?"

"믿을수가 없네 정말 믿을수가 없어.


우리가 하도 호들갑을 떨었더니 미남이가 비결을 발설했다.


"어제 배웠는데 오늘 <복수>를 했거든요"


"비결이 복수라고????"

 "아아 복수?~~복수를 하면 이렇게 잘하는구나. 미남이 앞으로 매일매일 꼭 복수하자?"


어려운 한자 한 글자를 깨친 미남이는 배운 한자 복수하느라 허기가 졌는지  먹방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식성을 발휘해 시원하게 본전을 뽑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미남이 손을 잡았다. 잡은 손 주인이 나라는 걸 확인한 미남이는 손을 쏙 빼더니 뒤에 서 있는 이모 쪽으로 가서 이모 손을  잡고 내려갔다.  


매일매일 복수 잘하면 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 했는데 지나친 복수는 미남이에게는 뇌의 과부하를, 이모는 카드연체로 인한 신용도 하락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적당한 복수를 권장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