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산 Feb 04. 2024

대격변이 예고된 한국 의료

간단하게(?) 훑어보기

어차피 잘 와닿지 않을 테니 길게 얘기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 이 내용조차도 일부에 불과하다. 너무 많은 정책이 한꺼번에 나왔다.


#1 배경

'소아과 오픈런'이니, '3분 진료'이니, '응급실 뺑뺑이'이니 하는 자극적 문구는 의사들의 힘을 빼기 위한 명분 쌓기일 뿐이고, 사실은 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2 의료보험 시스템

의료는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시스템이고 '공짜'가 아니다. 인간에게 필수이면서도 매우 비싼 재화가 바로 의료. 정상적인 국가라면 '의료 제공자(=의사)'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사가 통제되지 않으면 신체적이든 경제적이든 환자가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따라서 의사의 돈줄은 국가가 쥐고자 한다. 그게 의료보험 시스템이다.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 어쩌고를 강요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인간은 보상에 따라 움직이고 의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의료보험 시스템이 존재한다.


열심히 일할수록 보상을 많이 주는 제도라면 의사가 알아서 최상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의사 얼굴 보기가 너무 쉬운데, 비용도 많이 든다.


그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의사의 보상을 형편없이 만들자. 그러면 국가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지만, 의사가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 저하된다.


의학의 발전, 고령화 사회 등이 의료비 증가를 유발하고 이는 국가 건보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따라서 많은 선진국이 점차 의사의 보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편하는 추세이므로 한국도 이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 또한 국민이고 사람이므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3 총액계약제

의사에게 어떻게 보상해 줄 것인가? 다양한 형태가 논의된 바 있다.


① 행위별 수가제: 제공한 서비스, 약, 도구 각각에 가격표를 매김

                        환자에게 많이 제공할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음 


② 포괄수가제: 질환별로 가격표를 매길 테니 알아서 해결해라

                     (세트 메뉴 가격이라고 보면 비슷)


③ 총액계약제: 의사 너희가 열심히 일 하든 말든

                    줄 수 있는 1년 총의료비를 정해놓을 테니

                    그걸로 너희들끼리 나누렴. 그럼 수고해~


①번 의사가 가장 열심히 일하는 대신 과잉 진료 논란이 발생하기 쉽다. ②, ③으로 갈수록 의료비 통제가 쉬워지지만, 해외로 의료인력이 유출되고 국내 의사는 의욕이 없어 의료 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한국의 의료 보상 제도는 '행위별 수가제'에 일부 '포괄수가제'이다. 이걸 '총액계약제'로 넘어가겠다고 하는 것이 이번 발표 내용 중 하나이다. 건보 재정이 위험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생각한다만, 그걸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달고 얘기하는 건 아는 사람이 보기엔 좀 의아하다.


#4 실비보험 통제

국가 재정으로 보장해 줄 수 없으나, 수요가 있는 의료 서비스는 민간 보험이 담당해 왔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민간 보험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왜냐면 보험 회사는 기본적으로 이익 집단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공짜 점심이란 있을 수 없으며, 기본적인 계산은 다음과 같은 게 맞는 거다.


내가 받을 보장 = 내가 낸 보험료 - 수수료 및 운용비


따라서 사실 내가 잘 재테크를 해서, 아니 그냥 적금을 들어서 미래에 쓸지도 모를 병원비를 저축해놓는 게 머리 아프게 보험 가입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왜냐면 보험은 타 먹는 것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누군가는 낸 보험료보다 더 큰 보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보험회사가 손해이므로 회사는 어떻게든 돈을 안 주고 싶어 하는 게 기본자세이다.


보험사가 특히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것이 실비보험이다. 실비보험으로 홍보해서 사람들 가입시킬 땐 좋았지만, 막상 환자들이 실비를 많이 타니 정리하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짜잔~ 이번 정부 발표에서 병원이 아예 실비 청구를 유발하는 진료 행위 자체를 못 하게 할 거란다. 실비 청구를 이용해 의사가 돈 버는 걸 죄악이라 규정하며.


음... 그런가? 뭐 그런가보다 쳐도 말이지... 비급여 진료와 실비 보험은 민간의 합의로 이뤄진 것이고 국가 건보재정과는 별개의 돈이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 마치 민간 보험사의 입김을 받아 정부가 대신 의사를 때리는 듯한 형국이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의사 나부랭이가 알 수는 없다만, 정부의 발표 당일 보험주 주가는 일제히 폭등했다. 입시 관련주 같은 거 사지 말고 보험주나 미리 사둘걸...


아무튼 아직 실비 보험 가입 안 했다면 더 이상 보험회사에 현혹되지 마시고... 이미 가입되어 있다면 약관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애당초 그렇게 진료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보험 회사는 이번 개혁안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이다.


#5 의료계 종사자들 간의 판도 변화?

① 의사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직업이 저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충격인데, 그래도 의대 정원을 늘리면 멋모르고 좋다고 갈 사람은 많겠지... 참고로 한의사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정부가 이렇게나 의사를 죽이겠다는데, 파업도 안 한대요? 다른 직종이었으면 당일에 벌써 뛰쳐나왔겠다 ㅋㅋㅋ"


이렇게 적고 보니 좀 얄밉군.


② 한의사

일단 정부와 의사 간 다툼으로 엄청난 어부지리를 보고 있다. 실비 청구 통제로 정형외과의 도수치료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수요가 한의원의 추나 치료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추나와 도수치료는 다르다고 하는데, 환자 입장에선 큰 차이를 모르고 비용이 싼 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추나와 도수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생략.


아무튼 미소가 절로 지어질 상황인데, 한의사가 대놓고 반기지 않는 이유는 의사를 때려잡은 뒤엔 다음 차례는 한의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앙숙인 관계이지만, 의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듯.


③ 물리치료사

물리치료사는 지금 난리가 났다. 물리치료의 수요를 전부 한의사가 가져가게 생겼기 때문에 근본적인 입지 자체에 위기를 느끼는 중이다.


④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한꺼번에 얘기해서 미안합니다만, 절대 '기타 등등'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병원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가 망하는 것이 호재인지 악재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의원들이 문을 닫으면 당장 취업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그만큼 다른 기회도 주어질지 모를 일이다.


다만 '총액계약제'가 묶는 의료비에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인건비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의사가 얻어터지는 걸 숨죽이며 보고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6 그저 총선용 해프닝?

의사는 왜 파업을 안 하나? 못 하나?


그건 아직 정부가 말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라고 말만 무성하게 하며 의사를 자극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없단다. 계속 발표하겠다던 의대 정원 확대조차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 계속 뭔가 할 것 같은 불안감만 증폭시켜 놓고 의사들이 반발하도록 기다리는 것 같다. 정부는 의사가 먼저 파업해 주길 바라는 듯하다. 나오면 때려잡는 모습을 연출하도록. 마침 총선이 멀지 않았으니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부도 의사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날이 선 긴장은 최고조가 되고 승패는 찰나로 결정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의사의 싸움이지만, 우리는 한국의 의료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공모전 당선 작가님을 미리 축하드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