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색소변성증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집에서 아이들과 눈을 가리고 잡기 놀이를 몇 번 해봤을 뿐.
눈을 가리고 소리를 따라가면서 내 앞에 물체가 있어 부딪치지나 않을지 두려워하며 조심조심 움직이길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워 모든 신체의 움직임마저 어설픈 나를 보며 아이들이 꺄르륵 웃기도 했던 기억...
눈을 가린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진다...
그 두려움을 몸으로 겪고 있는 S는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집에서는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
인덕션이 있지만 웬만한 일들은 전자레인지를 사용한다고 했다.
계란프라이도 전자레인지에 해 먹는다고 했다.
다림질은 집안일을 봐주시는 분이 일주일에 한 번 와서 도와주시거나 세탁소를 이용했다.
셀프 배식을 하는 회사 식당은 꼭 다른 직원이 떠 줘야만 먹을 수 있어 S는 옆에서 숟가락만 들고 따라다닌다.
점심식사 후 간단한 산책을 혼자서는 못한다. 누군가 옆에 있어서 함께 걸어야 했다.
옆에 누군가 없으면 그냥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컴퓨터 문서가 아닌 출력된 자료는 읽을 수 없었다. 건강검진을 위한 문진도 옆에서 누군가 읽어주면 대답을 하고 옆에서 대신 체크해 줘야 했다.
옷을 사러 갈 때는 색깔과 모양을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새로운 장소에 갈 때도 꼭 누군가가 함께해야 했다.
그야말로 눈이 되어줄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만 했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기가 어려운 상황.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상황.
S는 그런 삶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할 수 없는 것을 애써 하려고 하지 않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애써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세월을 보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S는 새로운 업무를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2년이면 대부분 전보가 이루어지는 회사에서 S는 6년째 같은 과에서 일하고 있다.
전보요청을 했지만 받아주는 과가 없다며 결국 거절당했다.
사실 나는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한다.
S는 정원 외 인원에 속한다. 필수인원을 제하고 추가 1명이 되는 인원으로 S가 들어가는 과는 직원을 정원보다 1명 더 받는 꼴이 된다. 각자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한 명을 더 받는 상황임에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불편해서 일 것이다.
S가 옴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질 것이고 직원들은 본인의 업무도 바쁜데 누군가를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이기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 모습 또한 우리 사회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 생각하면 이해할만하다.
사실 나도 S와 이렇게 가까워지기 전엔 장애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가까이서 볼 일도 많이 없었다.
장애인 중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를 가지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90% 정도가 후천적 장애를 가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든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함께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바쁜 당장은 피하고 싶고,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또한 이해가 가긴 한다...
S의 담당팀장님이 바뀌면서 S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일해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나는 S에게도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해서 업무에 도움을 받는 일에 대해 적극 지지했다.
회사 내에 다른 장애인들도 있었지만, 그 지원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S는 본인이 시작하려니 걱정도 좀 되고, 업무에 대한 부담감도 컸었나 보다.
나는 S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계속 이렇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우선 한번 부딪혀보자. 해보고 안되면 팀장님도 아 안되는구나 생각하시겠지... 근데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고 하면 계속 이 상태로 머무르게 될 것 같아.
너처럼 똑똑한 애가 그냥 이렇게 있는 거 난 보기 좀 안타까워. 한번 해보자."
사실 좀 걱정도 됐다.
내가 하는 일도 아니면서, 앞을 볼 수 있는 내가 S를 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건 괜한 오지랖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정말 솔직하게 S가 그냥 이대로 있는 건 너무 안타까웠다. 내가 진짜 S를 친구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S는 고민 끝에 활동보조인을 받기로 결정했고, 업무도 맡았다.
맡은 업무로 스트레스받아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괜히 옆에서 부추겼던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맘이 들기도 하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면 난 정말 잘 한 선택이라 믿고 싶다.
S는 겨울에는 스키도 타러 다니고, 여름에는 보트도 탄다.
일본으로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여수로 단양으로 나보다 더 많은 곳을 보러 다니는 것 같다.
물론 꼭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냥 머물러 있지 않고, 그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도 바람과 공기를 느끼고 여행에서의 여유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런 S에게 업무를 더 받는 일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S는 아직도 마음 앓이를 하고 있다.
직원들이 업무의 주체자는 본인인데, 활동보조인에게 바로 이야기하거나, 본인을 없는 사람취급하거나 하는 일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느낌들..
그렇지만 S는 그냥 있지는 않는다. 조금 더 지켜보고 계속되면 상대에게 이야기해 정정을 요구해 보겠다고 했다.
S의 그런 적극적인 모습이 참 좋다.
요즘 S는 점심시간에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점심시간에 러닝 하는 걸 알고는 본인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고, 나는 기꺼이 체력단련실로 S를 안내했다.
사실 혼자 할 때보다 운동시간도 줄어들고, 중간중간 봐줘야 해서 흐름이 끊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감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S가 하고 싶은 것을 당당히 이야기하고 함께 해달라고 내미는 손이 참 좋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니!!
S를 알고 만난 유튜버가 셋 있다.
#우령의 유디오.
https://youtube.com/@Youdio-wooryeong
학생 때부터 봐왔는데 이번에 KBS아나운서가 됐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많이 알려줘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 늘 응원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KBS 아나운서 합격한 거 보고는 나도 모르게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원샷한솔
https://youtube.com/@OneshotHansol
이분도 시각장애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다. 이분은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이라는 책까지 지필 한 작가이기도 하다.
#위라클
이분은 시각장애인은 아니고 지체장애인이다.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지만 휠체어를 끌고, 운전까지 직접 하는 등 정말 존경스러운 분.
시각장애알고리즘을 타고 알게 됐는데 장애인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