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떼어 낸 글쓰기
브런치스토리라는 공간을 알게 된 건 3년 전이었다.
당시 한 교수님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디자인 수업에서 현 메타버스제작사 김동은 대표님을 처음 만나 뵙고 대표님을 리서치하던 중에 대표님께서 남기신 글들의 자취를 좇다가 브런치를 접했다.
동은 대표님의 게시글과 다른 작가분들이 올리신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인상은 블로그보다 비즈니스적이지만 논문만큼 아카데믹하진 않다는 거였다...! 유익하고 인사이트가 넘쳐났지만 동시에 유쾌했다.
깨달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나도 언젠가 내가 쌓아온 경험과 생각을 이곳에 멋지게 풀겠노라라고. 하지만 100 아니면 0의 사고로 점철된 게으른 완벽주의자 infp에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란 각고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몇 년에 걸쳐 깨달았다.
3년 간의 깨달음의 시간 동안 쌓인 인풋은 꽤나 그럴듯하고 풍부했다. 글 쓰고 싶은 소재와 공유하고 싶은 경험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작이 어려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글의 톤 앤 매너를, 전문성과 유쾌함의 농도를 고민했던 것 같다.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풀기에 적합하지만 교수님께 보내는 메일이나 논문처럼 깔끔 정장차림은 아니어도 거주권을 획득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멋진' 글의 색감을 스포이드로 뽑아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그럼에도 완벽한 컬러 차트를 찾지 못했다. 사실 톤 앤 매너가 뒤죽박죽이면 뭐 어때에 이르렀다. 쓰다 보니 지금의 농도가 가독성이 받쳐주는 한에서 적당히 현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다른 소재로 글 쓰면 필요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TPO에 맞게 문체를 갈아 끼우겠다. oo
“나는 글에서 나를 떼어낼 수 없는 나인지라 나를 떼어 내어 이를 양분으로 글을 쓴다.”
소제목에 적은 '나를 떼어 낸 글쓰기'라는 건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자의식 과잉-자기 지시 없이 못 사는-의 특질 상 나는 나를 떼어낸 1 글을 쓰는 게 어렵다. 아닌 말로 글과 작가를 어떻게 떼어 놓겠는가. 여기에 파고들면 하염없이 공상을 늘어놓을 수 있기에 나(작가)로부터 독립된 글의 존재 가능성, 이 가능성의 층위를 논하는 철학과적 면모는 잠시 내려놓겠다. 원래부터(여기서 원래란 연세초등학교 1학년 혹은 태초) 말하는 감자였으므로 어렵지도 않다. 무튼 공유가 가능하다면 공유할 매거진 너드에 기고한 기사들과 내가 숱하게 써왔던 글쓰기 과제들을 보면, 나는 나를 떼어낸 1 글을 못 쓴다. 오히려 나는 나를 떼어 낸 2 글을 쓴다.
고로 세상 사람들아 여기 나를 이루는 생각의 조각을 떼어서 선보인다! 많관부~
이런 면에서 내 글은 모두 자기소개이자 자기 지시다. 나에게 글쓰기란 현상학적으로 나를 구상 혹은 추상해 가는 여정이랄까. 나 자신을 퍼즐처럼 조각내어 다시 맞추고 그 전경을 보고서는 다시 허물어버리는 영원회귀. 쩔 수 없다. 작가적 자의식이 과한 들. 아이 캔트 헬프 마이 셀프.
‘나는 왜 나일까’라는 생각을 하면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만 10세 시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