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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잇 do it Feb 18. 2022

결혼식이 끝나고

THE END ...

끝나버렸다. 나의 결혼식이. 2019년 9월에 처음으로 홀투어를 시작했으니, 무려 1년 4개월 만이다.




처음에 내가 추구하는 결혼식장의 분위기는 확고했다. 밝고 하얀 톤의 꽃이 많은 하우스 웨딩 같은 분위기. 어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깨끗하고 단아하며 그리너리한 꽃이 만발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야외 결혼식을 하고 싶지만 비용적인 부담과 결혼식 날까지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내 성격을 알기에 야외는 애저녁에 포기했다. 대신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찾아 밤낮으로 매일매일 서칭을 했다. 어느 정도 마음에 들면 저장을 해두고 비교하면서 식장 리스트를 추리고 매 주마다 데이트를 삼아 식장 투어를 다녔다.

보통 웨딩홀은 봄, 가을이 성수기이다. 날씨가 좋은 만큼 식 비용도 올라간다. 대관료도, 식사 비용도. 비용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가성비 좋은 달에 식을 올리고 싶었지만 남자친구가 선선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꼭 식을 올리고 싶어했다. 그래, 결혼식에 원하는 조건이 딱 하나인데 그거 못 맞춰줄까 싶어서  9~11월 가을로 견적을 받았다.

까다롭지 않은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내 결혼식이라 하니 신경 쓰이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버진로드가 짧네, 식사 공간이 협소하네, 주차 입구가 좁나, 조명 색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노란 것 같아. 이런 저런 조건 따지다 보니 100% 마음에 딱 여기다 싶은 홀이 없었다. 하나가 마음에 들면 하나가 크리티컬하게 걸리고.. 나만 이게 거슬리나 싶어 웨딩 카페를 들락 날락 거리며 관련 키워드가 보이면 다 클릭해보고 사람들 의견도 읽어보고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어 한 곳만 더, 한 곳만 더, 방문을 했고 그렇게 서울에 20군데 이상 홀 투어를 했다.



그래서 정말로 원하는 곳을 찾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니다. 그래도 최선이라고 생각한 웨딩홀을 2군데 예약해두고 무료 취소 기한인 3개월 전까지 고민하기로 했다. 확신에 차지 않으니 선택을 최대한 뒤로 미뤄두었다. 결혼 준비는 홀 외에도 결정해야 할 목록들이 수두룩 하므로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좋은 선택을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원래 대로라면 11월 6일에 홍대나, 한남동의 한 곳에서 식을 올렸어야 했다. 그러나 식을 올리기 100일 전에 식을 미룰 수 밖에 없는 개인적인 건강 문제가 겹치고, 8월쯤 한창 심해진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 인원이 50명으로 제한까지 생기니 그야말로 급 현타가 왔다. 중요한 건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 둘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는(빌립보서2:2) 본질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결혼식을 미루면서 위치도 지하철 역에서 가깝고, 식사도 맛있고, 주차도 편해 하객들이 오시기 편한 곳으로 예식장을 바꾸었다. 100%의 기준을 7~80% 정도로 낮추고 나니 결정이 쉬워졌다. 그동안 핸드폰에 코를 박을 듯이 고민했던 날들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모두를 위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끝마치고 식사를 하고, 정산까지 마치고 나오는데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드디어 끝났다는 시원함, 코시국에 안전히 끝냈다는 안도감, 예상보다 많은 하객에 대한 고마움, 이제 드레스는 더 이상 못입어 보나 하는 아쉬움, 진짜 결혼이라는 걸 한건가 어리둥절함, 빨리 쉬고싶다라는 간절함까지.


말 그대로 시원 섭섭하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1년 동안 나의 뇌 구조의 80%는 결혼이라는 키워드였는데, 이제는 떠나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인생에 첫 결혼식에 한번 뿐이니까, 보태보태병에 걸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도와준 신랑에 대한 감사와 1년을 넘게 준비하면서 고생한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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