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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산 토끼 May 16. 2021

사랑보다 아픈 상처

더 대상포진 파트Ⅰ

임신 6개월 차의 어느 겨울 저녁.


얼마 전부터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좀 있긴 했지만, 오늘은 좀 이상하다고, 특히 옆구리와 등이 너무 당기고 아프다며 아내가 불안한 눈빛으로 안절부절못했다.

마치 담에 걸린 것처럼 쑤시고 결린다고 했는데,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 괜찮겠지 하며 씻으러 들어갔던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왼쪽 가슴 옆에는 자잘하게 빨간 좁쌀 모양의 띠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상 포진
대상포진 (출처 : Dinaaz Hair & Skin 홈페이지)


아내의 증상은 확실했다.

그것이었다.

30대의 어느 여름, 대상 포진으로 입원하는 악몽을 겪은 나였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충격을 크게 받은 듯했다.


‘아무래도 대상포진이 맞는 것 같은데, 일단 내일 병원 가보자.’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걱정스러운 나의 표정과, 내 입에서 나온 ‘대상 포진’이라는 단어에 아내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누구보다도 불안해할 아내를 생각해서 애써 담담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나 역시 놀랐던 터라 불안을 다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새벽에 아내는 갑자기 울면서 잠에서 깼다. 밤새 잠을 설치고 못 자다가 까무룩 잠들었는데 그마저도 나쁜 꿈을 꾼 모양이었다. 무섭다고, 아기와 오빠에게 미안하다고 줄줄 눈물을 흘렸다.


아내의 멘탈은 가출했고, 나는 도저히 출근할 정신이 아니었다.


회사에 휴가 신청을 하고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바로 산부인과로 갔다.

아내의 산부인과 주치의도 대상포진이라고 진단하였고, 즉시 내과 진료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다니던 산부인과가 규모가 있는 편이어서, 바로 협진을 받을 수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보통 소아기에 수두를 일으킨 뒤 몸속에 잠복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보통은 수일 사이에 피부에 발진과 특징적인 물집 형태의 병적인 증상이 나타나고 해당 부위에 통증이 동반된다. 대상포진은 젊은 사람에서는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60세 이상의 성인에게서 발병한다.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 환자 또는 장기이식이나 항암치료를 받아 면역기능이 떨어진 환자에서 많이 발생하며, 이 경우에는 젊은 나이에도 발병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병적인 증상은 피부에 국한되어 나타나지만,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환자에서는 전신에 퍼져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 발병 위치 : 피부, 신경계

*출처 : 서울대학교 병원 홈페이지


임산부 5만 명 중 1명의 확률이라는데, 왜 하필 우리에게…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엄청난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또다시 아이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대상포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한다. 먹는 약이 기본이 되는 치료라서, 아무래도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지 우리는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당연히, 임산부에게는 안전한 약만 써야 한다. 미국 FDA 기준에 따르면, A등급은 상당히 안전하며, B등급까지는 투여가 가능한 것으로 분류가 된다.


미국 FDA 임산부 투약 기준 (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E%84%EB%B6%80_%ED%88%AC%EC%97%AC_%EC%95%88%EC%A0%84%EC%84%B1

Grade B


아내가 복용해야 할 항 바이러스제는 B등급이었고, 진통제인 타이레놀 역시 B등급이었다.


왼쪽 겨드랑이와 등과 가슴까지 삽시간에 붉게 퍼진 대상포진.

아내는 난생 처음 겪는 격한 열감과 심한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했지만, 아이에게 혹여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마음에 진통제는 복용하지 않고,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항 바이러스제만 복용하기로 했다.


매일 밤 아내는 설명 못할 고통에 신음하며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낮에도 고통과 싸웠다.


대상포진의 통증은 만성 암 통증을 훨씬 넘어서며, 산통보다도 고통지수가 높다고 한다.  


대상포진 통증 등급표 (출처 : 한국일보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9060478384119


임산부이니 항상 따뜻하게 지내야 하는 터라 뜨거운 포진을 식히자고 집 실내온도를 낮출 수도 없는 일.


격한 딜레마 속 아내는 불지옥을 겪으며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가슴과 옆구리에 난 불을 끄려고 안달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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