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출산을 열흘 남짓 앞둔 5월 4일 월요일 아침.
나의 허리는 꺾이고 말았다.
극심한 통증. 기역자로 꺾인 허리.
나는 두발로 일어설 수 없었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강아지처럼 기어서 간신히 화장실을 다녀온 나는 회사에 상황을 알리고 기어서 병원을 가려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 목장갑 찾아줘’
‘갑자기 목장갑은 왜?’
‘기어서라도 병원에 가야겠어.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가 걸어서 2분 거리니까, 기어서 가면 10분이면 되지 않을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구급차를 부르자’
‘119가 이런 일에 올리가 없잖아, 그냥 기어서 갈 수 있어.’
극심한 고통에 데굴데굴 구르던 나는 기어서 병원까지 갈 생각이었다.
사설 구급차가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리고, 119가 고작 허리 환자를 위해 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사실 그때까지 나는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 실랑이하던 아내는, 여기저기 전화해 보더니 가톨릭대병원 앞에, 휠체어 대여 서비스를 해 주는 의료기 상사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잠깐만 누워 있어. 내가 휠체어 빌려 올게’
나의 만류에도 아내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휠체어를 빌리러 갔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아내가 돌아왔다. 의료기 상사까지의 거리는 1km 남짓. 원래라면 30분이면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가 휠체어를 밀면서 언덕을 내려올 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만삭의 임산부가 대성통곡하면서 빈 휠체어를 밀며 언덕을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시큰하다. 이 얼마나 나쁜 남편이고, 나쁜 아비인가….
엄마는 강하다. 아내도 강하다
그 이후로 아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때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린 것일까?
아니면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일까?
아내가 빌려온 휠체어를 타고 집 앞 정형외과에 입원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관리자가 되면서 업무 과부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터라, 이번 기회에 한 1주일 정도 몸을 쉬면서 머리도 좀 식힐 요량이었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척추 분리증 이외에는 특별히 이상소견이 없다고 했다.
MRI를 찍을 필요는 없고 1~2주 쉬면 나을 거라는 의사의 진단.
나와 아내는 안도했고, 1주일간의 입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척추분리증
척추뼈 뒤쪽으로 관절 사이가 좁아져 있는 부분인 협부에 결손이 발생한 상태
출처 : 청주 마이크로 병원 홈페이지 척추 분리증은 무시무시한 이름과는 달리, 전방 전위증으로 발전하지만 않게 잘 관리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1주일 쉬고 나니 그런대로 혼자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허리가 좀 구부정하고 통증이 여전히 있었지만, 하루빨리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퇴원했다.
마음이 바빴다. 초임 관리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게다가 며칠 후면 아이가 태어난다. 나는 한가롭게 누워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급한 마음으로 내 몸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퇴원한 것.
그것이 기나긴 입원, 투병생활의 시작인 것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