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절망과 희망
시술 이후 찾아왔던 방사통의 100배는 되는 듯한 작열감.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난 소리를 질렀고 머리맡의 사물함을 마구 두들기면서 간호사를 불렀다.
간병하러 오신 아버지도 내가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같이 소리를 지르셨다. 천상 양반이신 아버지도 아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괴로워하시며 화를 내셨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주사, 주사 놔줘요’
‘진통제, 진통제, 진통제!!!!’
‘애가 죽어간다니까! 뭐 하는 거야, 빨리 의사 불러와!’
소용없었다. 강력한 진통제를 주사기로 잔뜩 투여해도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허벅지가 부풀어 올라 터져 나가는 듯한 통증과 뜨거움에 몸부림치며 계속 고함을 쳤다.
허리 밑으로 양쪽 허벅지, 엉덩이가 공중에 떠 다니는 듯한 느낌.
엄청나게 큰 튜브 위에 누워 있는 느낌. 하체가 부풀어 올라 2~3배가 된 것 같고, 그리고도 계속 팽창하는 듯한 느낌, 뜨거운 작열감과 함께 고통도 커져만 갔다.
풍선처럼 다리가 부풀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신경 손상으로 인한 통증이었던 것 같다.
나의 난동에 퇴근했던 주치의가 달려왔다. 심각한 얼굴로 나와 간호사에게서 상황을 보고 받던 의사는 즉시 재 수술을 하자고 했다.
밤 10시에 나는 또다시 수술대에 올랐고, 통증은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나의 하체는 여전히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었으며,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도 않는 주제에 아픔은 느낄 수 있었다. 계속 진통제를 투여했다.
의사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의 경과에 대해 묻기만 하고,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병실을 떠나는 의사를 보며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의사가 아무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니, 인터넷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나의 증상을 검색하던 나는, 내 증상과 가장 유사한 결과를 찾아냈다.
마미馬尾 증후군 또는 말총 증후군
허리 근처에 있는 말꼬리 모양의 신경 다발 손상으로 하지가 마비되는 증상이다.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이 마비되고, 72시간 내에 조치하지 않으면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나의 아이가 태어난 날에, 내가 마미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의사가 알려주지 않았던 가혹한 진실을...
나는 절망했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
세상이 빙빙 돌았고 나는 아무런 생각을 못 한 채로 눈물만 흘렸다.
문병 온 분 중에, 전직 대학병원 간호사였던 분이 계셨는데, 병원을 슬쩍 들러보시고는 나직이 충고해 주셨다.
‘빨리 대학병원으로 옮기세요’
‘여기 있다가는 증상이 더 악화될 거예요.’
그리고, 의료인인 사촌 처남도 나에게 빨리 다른 병원, 대형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했다.
그제야 나의 이성이 돌아왔다.
휠체어를 타고 의사를 찾아갔다.
‘제 증상이 마미증후군이 맞죠?’
의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빨리 조치를 취해야죠! 선생님이 못하시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 보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72시간이 지났어요. 대체 어쩌실 겁니까’
‘…….’
나는 소리를 질렀고, 그 의사는 고민하다가 어떤 대형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구급차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대형 병원.
하지만, 그 병원의 의사 역시 절망 속에 신음하는 나를 버렸다.
‘환자분은 72시간이 이미 지나서 오셨기 때문에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빨리 수술하면 되지 않을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인터넷에서 이미 조사하여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의사의 입으로 들으니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내와 아기한테 미안했다.
응급실 병상에 누워 계속 울었다. 아버지도 내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셨다.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이 내 손등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우린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흐느끼고만 있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 회복이 어렵다는 말을 내뱉은 의사는, 황당하게도 그냥 퇴근해 버렸다.
어차피 늦은 시간이고, 마취과 의사도 퇴근했으니 내일 새벽 일찍 수술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의사가 떠나고 응급실에 남겨진 나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수술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또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30분간을 정신없이 검색한 끝에, 아주대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주대병원 정형외과. 그 근방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유명한 이국종 교수님도 계시고, 국내 대형병원 순위 10위 안에도 들어 있어 믿음직했다.
나를 받아줄지 아닐지도 모른 채 나는 사설 구급차를 다시 불러서 아주대병원으로 갔다.
전쟁이었다.
코로나 거점 병원이었던 아주대병원의 응급실은 거의 피난민 수용소 같았다.
고글과 마스크를 쓴 간호사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고, 환자들은 제대로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외국인도 많아서 더 통제가 안 되는 것 같았다.
나와 아버지도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여서 허둥지둥 수속을 밟았다.
1시간 넘는 입원 절차를 밟아 응급실로 들어갔고, 누운 채로 진료를 보았다.
젊은 레지던트가 나의 증상을 확인하고 급히 교수님에게 보고했다.
행운이었다. 한 교수님께서 퇴근을 미루고 심야 수술을 잡아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