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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산 토끼 Apr 28. 2021

아빠 없는 출산

feat. 디스크에서 하지마비까지

우리 귀여운 아기가 태어난 날. 그 감격적인 순간에 나는 쓸쓸한 병상에 누워 있었다.

소변줄을 끼고, 상체조차 제대로 일으키지 못한 상태로…


태어난 지 3일째 (출처 : 처형 카톡)


척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우울한 병실. 

대부분의 환자가 60대를 넘긴 차분하지만 생명력이 없는 병실에서 

처형이 보내준 아이의 사진은 매우 생경한 느낌이었다.


‘이 아기가 내 아들이구나….’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코끝이 시큰해졌고, 이내 끅끅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주변 환자들에게 들키기 싫어 옆으로 돌아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다.


아이의 출생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아쉬움, 출산으로 힘들어했을 아내를 옆에서 보듬어주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평소에 내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이런 중요한 순간에 병상에 누워있다는 자책. 

복잡하고도 서럽고, 또 안타까운 감정.


나는 ‘마미증후군’ 환자이다. 

이름조차 매우 생소한 질환.


척추 끝에서 신경 다발들이 퍼져나가는 모양이 마치 말꼬리 같다고 해서 

이를 마미 또는 말총(말꼬리)이라고 부른다.


이 신경들이 손상되거나 마비되면 하반신이 마비된다.

대개 디스크 수술이나 낙상으로 척추 신경이 손상되어 마미증후군이 발생된다.

마미증후군 (출처:자생병원 블로그)


아이가 태어난 그 날, 나는 마미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누구보다도 행복했어야 할 그 날에, 나는 홀로 누워 병원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석고보드 표면의 무질서한 무늬만을 몇 시간이고 바라봐야 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오래도록 천장을 바라본 일이 있을까?

일반인의 경우, 하루에 5분, 아니 1분 이상 천장을 바라보지는 않겠지. 

도배 기사거나, 아님 불면증이 있지 않고서야…

천장 석고보드 (출처:구글 이미지)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내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려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내가 마미증후군이고, 이젠 휠체어를 타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다.

나의 아기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짐이 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울고 괴로워했다. 

이렇게 누워서 3주를 지내니 우울증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우울증에 걸린 주변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였는데,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무너져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같은 소식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은평 아기 확진자 #46’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꼭 한 달 만에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사로도 우리 아기의 확진 사실을 접하고는 오열했다.


나쁜 일이라는 나쁜 일은 다 오는 2020년…. 

나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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