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예비신랑의 자기 반성
결혼식이 1일 남았다. 지난 여름 프로포즈에 성공한 뒤 본격적으로 결혼준비를 시작한지 1년하고도 몇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전세 신혼집 구하기, 예식장 예약하기, 셀프웨딩촬영, 청첩장 돌리기 등등의 공공연히 결혼을 한다는 예비부부들의 그것들을 해치우며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이렇게 돼버렸다. 이런 내게 최근 가장 많이 들리는 질문이 있다면 단연코 이 한 마디일 것이다.
“결혼을 앞둔 기분이 어때?”
진부하지만, 기혼이고 미혼이고 뻔하게도 궁금한 기분인가보다. 아니 진부하다기엔 나 또한 먼저 결혼하던 친구들에게 묻고 또 묻던 질문이었다. 이 뻔한 질문에 전에 나는 로맨틱하고 색다른 답변들을 내놓으리라 다짐했건만 막상 질문 공세의 주인공이 되고나니 나 역시 뻔한 답변을 늘어놓기 일수였다.
“모르겠고 하루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물론 ‘결혼’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놈의 ‘결혼식’이 하루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답변이렸다. 이 답변은 나의 예비신부도 마찬가지. 결혼 시작도 전에 이 무슨 맥빠지는 소리인가 싶지만 일단 우리의 답변은, 그리고 내가 들어왔던 답변은 늘 그래왔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하며 하루하루 눈에 생기를 잃어갈 때쯤, 갑자기 생기 넘치는 눈으로 예비신부가 물었다.
“예비신랑도 결혼이 기대 돼?”
결혼을 한 2주쯤 남겨두고 이 질문을 처음들었을 때, ‘응?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빨리 신혼여행이나 가고 싶다더니 이 무슨 질문인가’ 싶었지만 일단 그간 습득된 생존본능대로 답변을 내뱉었다.
“으응, 기대되지..!”
자동응답기마냥 내뱉어진 답변 뒤로 빠르게 이후 생존 전략을 구상하는데, 예비신부의 이어지는 한마디가 오늘 이글을 쓰게 만들었다.
“나는 우리 결혼 생활이 너무 기대돼. 이 다음 스텝들도 빨리 빨리 마주하고 싶어.”
‘오’
그 말을 듣고 딱 이 한마디만 새어나왔다. 창피하지만 이 말을 듣고 감동과 미안함 몰려왔다. 우리의 진짜 목적지는 결혼 ‘생활’인데 나는 그 진짜는 신경도 쓰지 못한채 ‘식’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겨우 하루짜리 일과가 무엇때문에 존재하는지, 무엇이 본질인지 잊고 있던 것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남들과는 다르게 예비신부는 별다른 로망이 없는 편이었고 특이하게도 나, 예비신랑이 전부터 로망이 한가득인 커플이었다. 순전히 내 욕심으로 플래너도 없이 거의 다 자체적으로 진행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5년 연애간 싸울일 없던 우리가 싸웠던 건 대부분 결혼식에 대한 나의 욕심과 예비신부의 욕심이 달랐기 때문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지나치게 (식)에만 몰입해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자기 반성도 잠시 여전히 빨리 식이 끝났으면 좋겠고 어찌됐건 식은 식대로 잘 치뤄야 하기에 정신없이 남은 일주일을 보내겠지만 식 뒤, 진짜 결혼 생활이 있다는 걸 다시 되새긴 지금은 자기 전 매일 예비신부와 결혼식이 아닌 다음 스텝을 이야기한다. 여전히 몰랐던 모습을 보면서 상처 받고, 또 여전히 서로가 이해가지 않지만 다음 스텝을 위해서 약속을 만들어 간다.
짚어보면 프로포즈 때만해도 정말 오래 고민하고, 또 고백했던 이야기들인데 그새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새까맣게 잊어버린 스스로가 한심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디데이를 현재진행형으로 다시 새어야겠다.
아, 그래서 결국 '결혼을 앞둔 기분'이 어떻냐고?
'한치 앞도 알 수 없어서 막막한데, 이럴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