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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Jan 15. 2023

주방말고 자기만의 방

엄마를 위한 방이 필요해 


코로나 때문에 모든 생활 패턴이 꼬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모든 결심을 코로나가 망쳤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부대끼고 가족들의 세끼 밥과 간식을 챙기는 일로 하루가 지나갔다.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건 넷플릭스 뿐이었다. 낮에는 육아와 집안일, 밤에는 넷플릭스 감상의 일과가 이어졌다. 집콕하는 가족들을 위해 요알못 (요리를 알지도 못하는) 엄마의 3끼 집밥 도전이 시작되었다. 

야심 차게 매일 다른 식단을 짜고 간식도 만들었다. 손에 물기 마를 날이 없었다. 


“코로나 이후에 주부 습진 걸리신 분들이 참 많아요.” 


요즘 ‘엄마 환자’들이 유독 늘어났다며 의사가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가려워진 손을 벅벅 긁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신세 한탄도 늘어갔다. 밥 먹고 치우고 준비하는 시간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원체 살림을 꼼꼼히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관심도 없다. 예쁜 그릇에 보기 좋게 음식 세팅을 하기보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얼른 치워버리는 방법이 좋았다. 엄마의 손 맛을 구현해내는 로봇이 하루 빨리 개발되도록 빌 뿐이었다. 


그 날 따라 무슨 바람이 들어서인지 넷플릭스가 아닌 팟캐스트를 틀었다. 

피로한 눈을 감고 나른한 성우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다가 두 눈 번쩍 뜨게 한 대목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가 앞으로 백 년 정도 살게 되고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중략)
 비록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도 단언합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그래, 이렇게 무료하고 엉망이 된 이유는 코로나 잘못이 아니었다. 바로 내 방이 없어 서다! 

무려 90여년 전부터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외쳤 건만 이제서야 그 목소리를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만 알던 내가 그녀의 한 마디로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암요, 자기만의 방 필요하고 말고요. 당장 거실 가구를 한 쪽으로 밀어냈다. 쓰지 않고 창고에 처박힌 먼지 쌓인 책상을 닦아 창가 앞에 놓았다. 좋아하는 책도 갖다 놓고 예쁜 꽃무늬 탁자보도 씌웠다. 이렇게 나만의 방이 생겼다! 비록 거실 한 구석 1평 공간에 불과했지만 아무려면 어때. 


차츰 내 방에 머무르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줌 모임을 하고…나의 모든 활동들이 좁디 좁은 공간에서 드넓게 펼쳐졌다. 세상에, 내 작은 방 하나가 만들어진 게 이렇게나 신이 날 수가. 

그 동안 쌓아 두고 읽지도 않은 책을 읽고 노트를 펼쳐 필사를 하고 일기를 썼다. 그럴수록 내 손에는 행주보다 컴퓨터 마우스가 쥐어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새 주방을 등진 엄마, 와이프, 딸, 며느리가 되었다. 반찬을 사다 먹거나 부모님들께 얻어먹는 횟수가 늘어났다. 매일 새벽 현관문 앞에는 나를 위하는 택배상자가 소복소복 쌓여갔다. 


“대체 뭐한다고 이렇게 바쁘니? 엄마가 되어 가지고는…너무 사 먹지 마라.” 


친정 엄마의 한숨어린 목소리를 애써 한 귀로 흘렸다. 나도 알아요, 안다고요. 하지만 한 번 주방에서 멀어진 내 마음은 쉬이 원상 복구되지 않았다. 이제서야 비로소 내가 정말 오래 머무르고 싶은 방을 만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의 첫 장에는 늘 내 방을 그렸다. 현실에 없는 상상 속의 방이었다. 벽 한가득 넓은 창문이 자리잡고 있다. 창문을 열면 새들이 지저귀는 풍경을 늘 볼 수 있는 방이다. 눈부신 햇살을 살짝 막을 수 있는 하늘하늘한 핑크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창가 앞 있는 커다란 나무 책상에는 좋아하는 책과 예쁜 꽃이 놓여져 있다. 조용하면서 따뜻한 나만의 방. 그 곳에서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책을 읽는 상상을 했다. 영원히 살 것 같았던 완벽한 집에서 도망치듯 이사 나오게 된 기억이 상상의 방을 자꾸만 그리게 만든 것일까. '나만의 방이 갖고 싶어.' 내 마음은 오랫동안 외치고 있었다.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 방이 늘 그리웠다. 


마흔살이 되어서야 갖고 싶지 않은 척하는 마음을 걷어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왜 그렇게 상상 속의 내 방을 그렸는지를 알았다.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내 마음대로 꾸미고 만들 수 있는 내 방을 원하고 있었음을 깨달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나만의 방이 필요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주방 말고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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