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이가 같이 즐겨봤던 드라마 ‘환혼’에는 ‘약과’가 등장한다. 배경이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약과라는 것이 귀한 간식거리였겠지. 그러니 여인은 도련님이 좋아하는 약과가 생각나서 저잣거리에서 약과를 샀고 약과를 받은 도련님은 그것을 건넨 마음을 소중히 간직했을 것이다.
드라마에 푹 빠진 밤, 출출하지만 무언가를 차려 먹기 애매한 시각이다. 그래서 아이와 나는 드라마에 나오는 약과에 꽂혔다. 약과가 나오는 장면마다 ‘먹고 싶어!’를 연발하며 내일은 꼭 약과를 사러 가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동네 마트를 돌며 약과를 찾기 시작했다. 너무 평범하게 생긴, 유통기한이 1년은 더 될 것 같은 약과는 패스하고 한입에 쏙 들어갈만한 약과가 100개쯤 들어있는 걸 샀다. 그날 우리는 드라마에 나오는 걸 우리도 먹는다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약과가 내 취향이 아니어서일까, 별 맛이 없었던 것일까, 아이도 나도 하루이틀 만에 약과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렸고 약과는 냉장고에 들어간 채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냥 두었다가는 결국 버리게 될 것 같아 꺼내서 먹어본다. 하지만 처음 먹었을 때의 그 맛이 아니다. 억지로 먹으니 점점 더 먹기 싫어진다.
아이 핑계를 대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니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계획에 없던 지출도 생기고 매일매일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니까. 그렇게 합리화한다고 쳐도 남아있는 이 약과들은 어떡할 것인가?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별로 내키지 않는다.
순간의 ‘마음’에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아이의 얼굴에 핀 웃음을 보기 위해서 쓴 돈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계속 그걸 갖고 있어서 불편한 마음 사이에서 열심히 저울질을 해봐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어느 쪽을 택해도 괜찮다는 뜻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고민을 한다는 건 어느 쪽이나 비슷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약과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론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