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송은 제주로 이주하기 전이었다. 갑자기 이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소송하기 몇 년 전부터 남편과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많이 다퉜고 이혼 얘기도 수시로 나왔다. 그에게 정이 떨어진 지는 오래였지만 아이가 어렸고 이혼 후 달라질 삶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 망설였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남편과 전혀 감정적 교류가 없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무엇을 해도 진정으로 즐겁지 않았다. 마음이 현재가 아닌 미래나 과거에 가있었고 심지어 육아를 할 때도 집중이 안 됐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자격증을 취득한다거나 아니면 미니멀 라이프를 한다며 집안 살림을 정리하는 일에 빠져 있었다. 현재 내 삶이 공허하니 어딘가 마음을 쏟을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영혼 없는 좀비같이 살았다. 하루 종일 바쁘지만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분명치 않고 기력만 소진되는 삶이었다. 정신적인 만족감이 없다 보니 아이의 칭얼거림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거기에다 부부싸움까지 해대니 기쁨이나 행복 같은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가 선을 넘어버렸다. 빨래 문제로 다투었던 어느 날 친정식구들이 있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올린 것이다. 소설이라고 해서 대단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나를 비꼬려고 자기감정에 취해 써댄 조악한 비난 글에 불과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내 이름과 비슷했고 주인공의 남편이 주인공에게 핍박과 멸시를 당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주인공은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온갖 취미생활에 빠져 있고 남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비난까지 곁들였다. 남편은 소설 끝에 이렇게 덧붙이며 나의 부모님에게 물었다. '소설의 결말은 ㅇㅇ씨가 이혼 서류를 갖고 와서 정리하자고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와 나의 부모님을 무시하고 있다고 은연중에 느꼈던 것이 정말 사실이었구나. 카톡 메시지의 요점은 '당신들 딸자식 이혼당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교육 잘 시켜라'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장인 장모가 우스워보였으면 그런 메시지를 버젓이 단체 카톡방에 올릴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 이제 정말 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나는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에게 왜 그런 메시지를 보냈냐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충격이 컸기도 했지만 그런 메시지를 보낸 사람에게 더 이상 듣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가 해외출장을 가고 나서 며칠 있다가 차를 몰고 법원 근처로 갔다. 법원 근처에는 변호사 사무실들이 많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혼 소송을 하려면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무작정 변호사를 구하러 간 것이다. 알단은 아무 변호사 사무실이나 가서 상담을 받을 생각이었다.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라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법원, 변호사와 같은 단어를 생각하는 자체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불안했다. 법원 앞까지 가는 데만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정말 이걸 하고자 하는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로 많은 변호사 사무실 중 간판과 창문에 이혼이라는 글씨가 있는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장님은 왜 이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물으셨던 것 같다. 대충 그동안에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이혼 의사가 확실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집에 가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본 뒤 두 번째 방문에 변호사 선임 계약을 하게 되었다. 사무장님은 그동안 부부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적어서 달라고 하셨다. 집에서 일기장을 뒤지며 한글 파일을 채워나갔다. 이혼 사유가 딱히 폭력이나 외도, 도박 같은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불화였기 때문에 이혼 사유로는 약했다. 우리나라는 6가지 이혼 사유에 해당이 되어야지만 이혼이 성립되기에 소송을 해도 이혼이 안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기억나는 사건들을 다 적었다. 사무장님과 파일을 주고받으며 몇 번 수정을 했고 며칠 뒤 소장이 접수되었다. 처음이라 소송을 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혹시 너무 늦게 알게 되었을 경우 그가 돌발행동을 더욱 심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비교적 초반에 알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장이 접수되고 며칠 후 출장을 가있는 그에게 소송 사실을 알렸다. 그는 처음에는 당황했는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가 자신을 겁주려고 수를 쓴다고 생각을 했던 것인지 부정을 했다가 협박조로 나오다가 나중에는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잘못했다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제 정말 잘 알겠으니 앞으로 180도 달라지겠다고 눈물로 애원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정말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며칠에 걸친 끈질긴 회유 끝에 남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심하고 소를 취하한 것이다. 결국엔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보다는 앞으로는 내가 그의 눈치를 조금 덜 보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잘못했다고, 달라지겠다고 하니 적어도 똑같은 식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잘못을 한다면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이혼에 협의하겠다고 말했기에 이혼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그가 더 이상 나를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틀린 생각이었다. 소를 취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이전보다 훨씬 공포스럽고 구역질 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를 피했다. 하지만 그는 집요하게 나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새벽에 아이와 내가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와 할 말이 있다며 잠을 못 자게 했다. 길면 서너 시간 동안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며 괴롭혔다. 그래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야 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은 확실히 비정상적이고 심각한 상태였다.
쉽게 이혼 소송을 취하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이전보다 더욱 삶이 괴로워졌을 뿐 아니라 내가 또다시 소송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가 공격 방식을 더욱 교묘하게 바꾼 것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서 나를 심리적으로 괴롭게 하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다. 그도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아서인지 돌발적인 행동이나 협박성 메시지를 전송하는 등 자신을 온전히 컨트롤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같은 집에 사는 것을 점점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다시 소송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소송 때 소장만 접수하고 취하를 했기 때문에 변호사 사무실에 선임 비용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없는지 물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계약서가 그렇게 작성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몇백만 원을 날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 소송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소송을 처음 시작할 때 정말 큰 용기를 냈고 굳은 결심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내 결심은 약했던 것 같다. 단 며칠간의 거짓 눈물 쇼에 넘어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도 저도 아닌 좀비 상태로 살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