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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Oct 25. 2023

힘들면 청소라도 해야지

EP.10 힘들면 청소라도 해야지


창틈 사이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을 받으면서 눈이 떠지는 아침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운함이 느껴진다. 라고 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과 상상은 늘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햇살을 만끽하면서 알맞게 구워진 토스트에 커피를 마시는 삶이란, 여느 관찰 예 프로그램에만 존재하는 그림 같은 상황일 뿐이다. 직장인의 아침은 식사 따위 사치다. 당장 핸드폰의 알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대지만 깨기 싫어서 이불 위를 뒹굴 거리다, 10분 단위로 맞춰둔 핸드폰 알람을 고 부스스한 머리에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기 바쁘다. 그러고서는 바로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다행히 내 직장은 재택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준비를 다하고 일을 하면서 식빵 하나 곁들여도 되지만, 오래전부터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이제는 점심이 되도록 허기지지 않는 몸이 됐다.


이런 몸의 규칙처럼 내게는 일어나서 늘 하는 규칙적인 활동들이 있다. 아무리 바쁜 아침이라도 꼭 지키는 철칙 같은 것들인데,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어나자마자 인센스 스틱에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에는 창문을 열고 침대에 있는 이불을 정리한다. 보통 출근 한 시간 전에 일어나려고 노력하는데, 늘 30분을 남겨두고 일어나는 탓에 이불 정리 후에는 부랴부랴 10분 만에 샤워를 하고 10분 내에 머리 손질까지 마치고 옷을 입는다. 만약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108배를 하거나 간단하게 운동을 하는데, 푸시업 30개와 스쾃 50개만 깔짝깔짝 하는 정도다.


108배란 말 그대로 108번 절을 한다. 종교적 목적으로 시작한 규칙이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명상과 운동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진행하게 됐다. 그래서 수능을 앞둔 자식을 위해 간절하게 비는 부모님들의 108배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숫자만 세면서 절하기 바쁜데, 꽤 운동 효과가 좋아서 스쾃 100번을 하는 것보다 더 건강의 변화가 다이내믹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을 비우기도 좋아서 아침마다 드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오늘 누굴 만나고, 뭘 하고, 또 뭘 해야지’라는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용도로도 애용한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 나면 조금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샤워를 하면서 대충 씻어내고, 면도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거울을 보면서 “오늘도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런 요상한 자기 최면도 하지 않는다. 거울을 바라보는 건 면도가 똑바로 되고 있는지를 관찰할 때뿐이다. 빠르게 몸을 씻은 후에는 무조건 욕실을 차가운 물로 한 번 씻어낸다. 그리고 수챗구멍의 머리카락들을 휴지로 훔쳐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린다. 2주에 한 번씩 욕실청소를 하기는 하지만, 얼추 깨끗한 물로 헹궈내야지 마음이 편하다. 욕실 밖으로 나와서는 화장실 문턱에 고인 물까지 몸을 닦은 수건으로 훔쳐낸다. 수건은 바로 세탁바구니에 넣기보다는 접어둔 빨래 건조대에 널어두고 하루가 지나면 세탁바구니에 집어넣는 게 일종의 규칙이다. 또 수건도 늘 순서대로 넣어두고 순서대로 꺼내서 쓴다. 그리고 스킨을 묻힌 화장솜으로 피부결을 정돈한 다음에, 사용한 화장솜으로 인센스 재들이 쌓인 홀더를 닦아낸다. 이후에는 기초 화장품을 바른 뒤, 머리 손질을 하면 아침의 루틴은 끝이 난다.

책상은 늘 깔끔하게 정리해두는 편이다.

이 정도면 결벽증이나 강박증 아니냐


맞다. 누군가 보면 ‘결벽증이 아니냐’라고 기함할지도 모르겠지만, 벌써 이런 생활이 3년째 몸이 거부할 수 없게끔 익숙해져 버린 꼴이 됐다. 정리정돈에 이렇게까지 열중하게 된 건 오래전 보았던 한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전 미군 해군 대장 윌리엄 H. 맥레이븐이 2014년 텍사스 대학교 졸업 축사를 하는 영상이었는데, 아니 글쎄 그 양반이 하는 말이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이불 정리부터 시작해라”라는 거다. 말의 요지란, 세상을 바꾸려는 허황된 상상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부터 바꾸라는 말이었다. 이건 나에게 마치 “마누라와 자녀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말한 故 이건희 회장의 말과 비슷했다. 내 삶을 안정되게 이끌기 위해서는 일단 집부터 깔끔하게 정리해야 했다.


청소도 빼먹지 않는다.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청소기부터 돌리고, 이후에 운동을 하던 글을 쓰던 취미 생활을 즐긴다. 주말에는 걸레로 집기들과 바닥의 먼지를 닦아내고 청소기를 돌린다.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침구 빨래를 하고, 욕실 청소를 한다. 이 청소 또한 하나의 루틴이라서 마땅한 사정이 없는 이상 거르지 않는 편이다. 이 때문에 슬픈 건 주말이라도 평소의 시간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 어차피 생체리듬이 평일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뻗지 않는 이상은 항상 오전 9시 이전에는 깨어버린다. 그래서 “내일은 무조건 늦잠을 잘 거야”라고 외치고 자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버리는 거다. 일찍 깨면 뭐 하겠나. 청소나 할 뿐이다.

  

누구든 맥레이븐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안정되게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누군가는 퇴근 후 가는 사우나일 수도 있고, 매 주말마다 예쁜 카페나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다니는 게 일종의 ‘휴식’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이게 집 청소가 됐다. 결벽증은 단연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도 좋아하고, 이들이 내 집을 어지럽혀도 마음이 서운하다거나 갑자기 짜증이 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을 즐기고, 다음날에도 그걸 치우면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한다. 그러니깐 막 이 규칙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내 집에서 누가 수건을 쓰더라도 “야 순서대로 꺼내!”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규칙이고, 누군가가 내가 정한 규칙을 깨버리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게 내 인생의 철칙 아닌 철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왜 이렇게 청소에 집착하느냐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이건 그러니깐 내 삶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일종의 지표 같은 것인데, 평소의 이런 규칙 중 하나라도 내게서 사라지고 있다면 뭔가 내 삶에 변화가 있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저녁에 들어와서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다면 정말 저녁이 피곤했구나를 느끼는 지표이고, 침구 정리를 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는 건 정말 제대로 늦잠을 잤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예 청소를 뛰어넘은 주간은 내 일상이 내가 정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걸 거울처럼 보여준다. 시계가 고장이 난 것과 비슷하겠다. 그래서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걸 다시 청소하고 정리하다 보면 깨져버린 일상의 리듬을 고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다시 일상의 모습으로 회복한 집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혼자만의 위로를 해준다. 내가 집을 회복하고, 그 집이 나를 위로한다. 좋은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정리라고 굳이 깔끔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규칙만 있으면 된다.

너무 힘들 때는 모든 규칙을 파괴해 버린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 때가 있다. 일이 너무 쏠려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고, 모든 관계에서 지쳐 도망가고 싶을 때다. 특히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질 때도 포함되는데 굳이 이럴 때는 이 규칙들을 전혀 지키지 않는 편이다. 과거에는 제대로 번 아웃이 와버려서 연차를 쓰고, 그 기간 동안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적이 있다. 이때 나는 일주일 동안 집 청소를 비롯해 설거지까지 3일 동안 쌓아두고 지냈다. 이 기간 동안 한 일이라고는 한 번씩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하루 종일 드라마나 영화만 보면서 있었다. 침구 정리도 물론 하지 않았다. 약간 ‘될 대로 돼라’라는 식이었는데, 뭔가 이 규칙성을 다 부숴버리고 자연인이 되어버릴까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어처구니없이 씻겨버린 상황이 벌어졌는데, 도저히 청소할 마음도 들지 않던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 하나가 꼴 보기 싫어서 책상 위에 올려두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청소를 시작했다. 종이를 책상 위에 올리려다 책상 위의 먼지를 보고 걸레를 빨아 먼지를 닦아냈고, 걸레를 빨고 난 뒤에 청소기를 돌린 후에 정말 몸이 기억이라도 하는 건지 아무 생각도 없이 설거지까지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어질러져서 더러워진 조그마한 원룸이 조금씩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예 나는 가구에 있는 지저분한 얼룩부터 가구 위 소복하게 쌓인 묵은 먼지까지 닦아냈다. 오후 1시쯤에 시작한 이 작업을 밤 10시까지 이어갔다. 분명 모든 규칙을 다 파괴해 버려서 다시 그 규칙을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지만 그냥 내 몸이 원래의 규칙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그 탓에 애석하게도 나는 자연인이 되지 못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일부러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너무 지칠 때는 청소를 했다. 내가 꿈꾸는 저 멀리의 일을 위해 달려 나가려면, 일단 내 일상부터 지켜야 했다. 그렇다고 임마누엘 칸트처럼 정각정시에 정해진 행동을 하는 강박증 같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힘이 들 때 과감하게 모든 규칙들을 거부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내기 위해 그 규칙을 따라가는 걸 반복했다.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완전히 집을 더럽혔고, 그걸 다시 청소하면서 내 삶을 회복해 갔다. 누군가는 청소가 뭐 그렇게 큰 효과가 있느냐고 하지만, 깔끔해진 집을 마주한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다. 특히 퇴근하고 지친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침구를 바라보고, 깔끔한 집을 다시 더럽히면서 느끼는 그 희열감이란 내게 정말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청소를 한다. 누군가는 결벽증처럼 느낄지라도 나는 청소하면서 산다. 일상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아침 일어나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이불을 정리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몸은 지치더라도 그것도 잠시다. 평평하게 펼쳐지는 이불에서 나는 그걸 바라봤다. 여유롭지 않지만, 매번 늘 좌절하지만,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푹 쓰러져버리고 싶지만 청소하고 정리한다. 그렇게 내일의 나를 지킨다. 다시 시작할 일상을 지킨다. 정말 정 힘들면, 그래도 청소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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