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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들지 않는 아밀리 Oct 12. 2023

프롤로그)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사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다지 해본 적이 없다. 5년 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생전 처음 보는 것들과 음식들,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기록을 시작했던 것뿐이다. 나도 내가 작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대학교 초년 때, 뭣도 모르고 호주에 1년 워킹홀리데이를 간 적이 있다. 영어도 잘 못하고 스페인이랑 멕시코가 붙어있는 줄 알았던 무지한 나에게 참 스파르타 같은 일 년이었다. 그리고 그 난리 속에 정말 많은 유럽 친구들을 만났다. 호주를 떠난 지 5년 만에 유럽을 여행하며 그 친구들을 하나하나 다시 만났고, 살면서 2번 없을 추억과 경험을 쌓고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 돌아오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남겨야겠다.

프랑스 친구 집 놀러갔다가 라따뚜이 얻어먹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게 시작이었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스마트폰만으로도 웬만한 카메라 못지않게 선명하고 예쁜 사진들을 남겨왔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고 좋았던 여행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마음에 드는 사진들은 몇 장 인화해서 벽에도 붙여보고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펜을 집어 들고 그림으로 각색하여 한 장 한 장 남기기 시작했다. 난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유럽 친구들 얼굴을 그려 틈틈이 보여주는 맛이 쏠쏠했다. 원래 봐주는 사람들 반응이 좋으면 그리는 사람도 더 신나지 않는가. 그 재미에 맛들려 반년 넘도록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그리다 보니 어느덧 분량이 꽤 쌓여있었다. 어느 날 ‘이 정도면 책 한 권 나오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어 글까지 쓰게 된 것이다.

그렇게 1년간 그림과 집필을 했고, 일러스트 에세이 작품인 <안녕! 보고 싶었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볼 때마다 아쉬움과 부족한 점이 수두룩 하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문학작품으로 남겼다는 사실은 지금도 뿌듯하다. 그래서 난 주변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꼭 책 한 권은 써보라 ‘고 말하곤 한다.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2020년 1월, 생애 첫 작품의 출판을 기념하는 것도 잠시, 거짓말처럼 팬데믹 시대가 열렸다. 모두가 먹고사는 문제로 발목을 잡혔고, 여행 에세이 시리즈를 제작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내가 하는 ‘모션그래픽 디자인’은 안 그래도 일자리가 매우 적은 희귀 직군인데 경기불황까지 겹쳐 눈앞이 깜깜했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프리랜서 광고를 여기저기 올렸다. <안녕! 보고 싶었어> 작가라는 타이틀 내세워 광고를 했는데, 정말 기적같이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프리랜서 삶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게 됐다.

인생은 새옹지마, 타이밍이라고 참.


첫 출판을 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팬데믹은 사실상 막을 내렸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인생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경기가 바뀐 탓인지 문의도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잘 될 것만 같았던 남자친구와의 결혼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내게 23년도 올 한 해는 참 어둡고 고된 시간이었다.

오랜 연애를 마무리 후 치열했던 사업과 삶을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긴 여행을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유럽을 가본 지 무려 5년이나 지난 오늘,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너무 충동적인 결정인가? 생각이 든다면 정답이다. 그런데 과연 여행 가기 ‘적합한 시기’란게 있기는 한 걸까. 삶에 환기가 필요한 지금이 여행을 떠날 시기가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머릿속 한가득 걱정을 품은 채, 긴 여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짐 싸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한 세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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