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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의 영화편애 Feb 25. 2022

하마구치류스케감독, '드라이브 마이카' 영화리뷰

'드라이브 마이카', 제 2의 기생충 될까?

#드라이브마이카 #하마구치류스케 #하루키소설 #여자없는남자들 #영화리뷰 #영화편애


하마구치류스케감독은 각종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고, 게다가 봉준호감독은 부산영화제에서 영화토크를 하게되면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곧 열릴 아카데미영화제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 등에 후보가 오르며 제2의 기생충의 될 수 있을지 기대를 하고 있다.

개봉관을 찾기가 어려워서 보기 힘들었는데, 뒤 늦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소문대로 좋은 영화였다. 하마구치류스케 감독이 추구하는 사실주의 미학이 나의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사실 남다르게 좋아하는 부분도 있다. 보통 대다수는 장르영화에 더 끌리는데, 나는 사실주의 영화에 더 끌리는 경향이 있다. 장르영화광들은 이 감독의 영화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스스로 왜 뛰어난지를 잘 이야기하지 못하기도 하다. 취향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서적으로도 잘 맞는다.

그의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아사코> 부터이다. 너무 대중적인 소재로 자신만의 인장과 미학이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영화광스럽게 다양한 명작영화들의 모티브가 담겨있기도 해서 더 흥미로웠다. 그 이전작품이지만 나는 좀 뒤늦게 본 <해피아워>가 어찌보면 감독의 관심사와 특성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 생각이 들고, 이번 작품 <드라이브 마이카>는 그의 영화미학의 정점에 있는 듯 하다. 기존의 영화 주제와 미학을 세련되게 담아내고 있고, 게다가 이야기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1. 자동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의 매력


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없는 남자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카'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마치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 원작을 보며 열차라는 공간에 대해 흥미를 가졌던 것처럼, 하마구치감독은 이 소설에서 차 안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이루어지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차에서의 대화씬을 많이 좋아하는데, 그의 이전작품 <해피아워>나 <아사코>에서도 마찬가지다. 차 안에서 처음에는 남을 배려하기 위해 사소한 대화를 시작하다가 어느새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서는 그런 장면을 영화 속에 자주 담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해피아워>에서 이혼을 앞둔 여자는 버스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혼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묘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영상으로 보게 되니 공감이 많이 되고, 흥미로운 대화씬이라 느껴진다.

원작 소설에서도 차 안에서의 대화씬이 아주 흥미롭게 전개된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인물의 전사가 하나씩 드러나고, 아내의 외도라고 하는 흥미로운 스토리가 덧입혀지면서 너무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나는 소설에 잘 집중을 못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내가 처음으로 재미있게 본 소설이고, 작법에 있어서도 큰 통찰을 얻었다. 소설은 시작부터 한 남자의 삶의 한 상황으로 무작정 들어가면서 시작하고, 대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전사, 그의 차를 운전하는 젊은 여자의 전사, 아내의 외도 사건이 하나씩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작법이 너무 인상깊었다. 이 소설은 한 번 필사를 해보고 싶더라.

다시 돌아와서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씬은 대부분 차 안에서 이루어진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처음에는 전혀 서로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관계로 시작해서 서서히 속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은 서로를 위로하고 구원하는 관계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 안에서 많은 것들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중요한 대화장면은 다 차에서 이루어지니 양식적으로도 큰 실험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드라마에는 대화씬이 있는데, 그것을 나만의 표현방식으로 연출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차 속에서의 대화'라고하는 감독만의 인장을 담아냈다고 본다. 영화를 보면 우리들도 같이 차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 안에서 인물들이 삶의 진실을 나눌 때에 우리들도 그 대화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차 촬영이 많은데 대부분 세트가 아닌, 현장에서 촬영을 했다고 해서 많이 놀랐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이 차에서의 대화씬은 정말 영화적이고 매력적이긴 하다.





2. 삶을 위로 하는 예술에 관하여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역시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성찰이 많이 담겨있다. 창작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감독의 창작론을 은근슬쩍 보여주기도 하고, 또 안톤체홉의 <바냐아저씨> 이야기와 대사가 영화 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의 삶과 연극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교차로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하마구치감독의 연출론과 같다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드라이리딩을 굉장히 오래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감독도 그렇게 배우와 리허설을 한다고 한다. 감정을 다 빼고 대사를 숙지시키고, 한참 후에야 카메라 앞에서 비로소 감정을 표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연출방식이 너무 흥미로웠고, 성숙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바냐아저씨의 대사는 적극적으로 영화에 개입된다. 그것도 죽은 아내의 목소리로 들려지기 때문에 더 무게 있게 들려지기도 하다.

마지막에 바냐아저씨에서 소냐의 대사를 통해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는 부분은 정말 감동적이더라. 그 장면이 감동을 더해서 창의적이기도 하는데, 대사가 말이 아니라 수어로 전달되어지기 때문이다. 연극 공연이 일반적인 공연과 달리 다양한 국적의 배우가 모여서 함께 연기를 하고, 스크린의 자막을 통해서 사람들은 대사를 듣게 된다. 그런데 그 배우 중에 말을 하지 못하는 배우도 포함되어있는데, 그 역할은 박유림이라고 하는 한국배우가 맡았다. 굉장히 비중이 큰 역할이어서 인상깊고, 그녀가 수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흥미로우면서도 진중하고 깊이 있게 전달 되었다.

이 대사를 통해서 삶의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가후쿠와 마시키는 큰 위로를 받게 되고, 그들뿐 아니라 관객들 역시도 힐링을 얻게 된다.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다...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면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에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 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테죠. 아,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아저씨, 우리는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거에요.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겪었던 우리의 슬픔을 돌아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될 거에요.

그리고 마침내 우린 쉴 수 있을 거에요. 나는 믿어요.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바냐아저씨> 중에서.




이러한 대사는 말로만이 아니라 장면으로로 메타포로써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인상깊다. 갑자기 사고로 가후쿠가 바냐의 역할을 하기로 하면서 미사키와 함께 그녀의 옛집에 가는 장면이 있다. 이 때 굉장히 운전해가는 길을 길게 보여주는데, 긴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아침과 밤을 지나기도 한다. 그 장면을 짧게 끊지 않는다. 그 긴 시간을 운전해가는 장면이 마지막에 소냐의 대사와 오버랩되면서 큰 감동을 주게 된다.







3. 하마구치감독의 사실주의 미학, 숏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감독이 숏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추구하는 미학이 너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숏이 대체로 긴편이다. 헐리우드 식으로 편집했다면 충분히 2시간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영화는 압축의 예술이라는 것을 무시하듯이 그는 더 리얼하게 삶의 진실을 담아내고자 한다. 처음에는 미숙한 연출이라고 생각했으나,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가장 핵심적인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집요함, 배우의 감정을 진득하게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미학과 진정성으로 느껴졌다.

인물의 감정이 느리게 하나하나 쌓여가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 인물이 가지는 감정이 관객들에게 더 깊고 여운이 길게 남겨지게 된다.

영화는 긴 시간을 급하게 압축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흔히 헐리우드 영화나 한국 상업영화에서 몽타주씬이라고 해서 긴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을 많이 보는데, 그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화가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감정을 잘 포착해낸다. 얄팍한 감동이 아니라, 아주 진중한 메시지로 관객의 마음에 전달되는 것이다.


만약에 상업영화에서 두 사람이 1박을 하며 운전을 하며 가는 장면이나, 연극연습 장면을 연출했다면 빠르게 몽타주식 편집을 활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을 관객들도 똑같이 느끼도록 최대한 숏의 길이를 길게 가져간다.


한국에서 사실주의 미학을 추구하는 감독도 많다. 홍상수감독이 있고, 이창동 감독이 있고, 봉준호감독도 어느 정도 사실주의 미학이 담겨있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표현해 내었다. 홍상수감독과 이창동 감동 중간 어디즘에 그의 미학이 있는 듯 하다.

최근 모든 영상 컨텐츠들이 숏을 빠르게 넘어가게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미덕이 되는 시대에 그의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감으로써 그만의 새로운 영화미학을 만들어내었고, 깊은 감명을 얻을 수 있었다.







4. 영화는 원작 소설과 어떻게 다른가?


마지막으로 원작 소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원작 소설도 너무 좋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우선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카'만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여자없는 남자들>에서 다른 단편도 담겨있다. 가령, 대표적으로 아내가 섹스를 할 때마다 이야기를 잉태하는 모티프는 <셰에라자드>에 담겨있다. 그리고 주인공 인물이 상처를 회피하고 살아가다가 마음이 텅 비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기노>에 담겨있다.

이렇게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이 소설에서 다양한 모티프를 가져오면서도 그것을 새롭게 각색하고, 또 거기에서 두 발 더 나아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펼쳐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각색상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나 각색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소설에서 주인공이 했던 질문에 대해서 영화가 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주인공은 분명 사랑했는데, 왜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해야했는지 그 마음을 너무 알고 싶어한다. 그리고 소설은 결론을 내지 않은 채 끝을 낸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나아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선 아내와 잠자리까지 했던 다카츠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한다고 가후쿠에게 충고한다. 그리고 마사키는 남편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사랑을 갈망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질문한다.


이렇게 영화와 소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영화 각색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컨셉만 가져오고 원작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던진 질문에 답하기를 시도하는 각색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각색은 역시 프롤로그이다. 소설에서는 이미 아내가 죽은 후부터 시작되지만, 영화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타이틀이 뜨고 비로소 소설과 같은 시간대에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런 구성도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5. 맺음 :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살아가기


영화 속 가후쿠와 미사키는 가장 소중한 관계였던 존재를 잃고 남겨진 자들이다. 어찌보면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인 것이다. 가후쿠는 아내를 잃었고, 미사키는 엄마를 잃었다. 그들은 자신이 살인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다. 자신의 소극적인 행동 때문이 두 사람이 떠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그 상처를 회피했다면 항상 공허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찾아가 진실을 마주한다. 그때 눈 구덩이를 작게 파서 담배로 제사를 지내주는 장면을 잔잔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에서 미사키는 이제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된다. 그 과정이 생략되어 어떻게 그 차를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미사키는 빨간색 차를 물려받고 운전자가 되어 직접 운정을 하고, 게다가 강아지까지 옆에 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도로를 달려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는 점이다. 아주 옅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 그 옅은 미소가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영화 3시간 내내 웃는 모습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미소는 그녀의 삶에 희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영화는 느리고 러닝타임도 길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이상의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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