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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지 Aug 05. 2022

마이너 필링스 -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 마티 / 2021

캐시 박 홍의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



저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캐시 박 홍이라는 시인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민 2세대 한국계 미국인이다. 1976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올해 2022년 기준 47세. 첫 시집 ‘몸을 번역하기’로 푸시카트상을 수상, 두 번째 시집 ‘댄스 댄스 레볼루션’으로 바너드 여성 시인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시집뿐만 아니라 각종 매체에도 꾸준히 시를 발표하는 활동적인 시인이고 럿거스 대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다.


‘마이너 필링스’는 2020년 출간된 캐시 박 홍의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다.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앤드루 카네기상 우수상 후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타임스 올해 최고의 10대 논픽션, 워싱턴포스트 올해의 책, NPR 올해의 책, 뉴욕 공립도서관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다. 한국에는 2021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주간지와 일간지 등 여러 매체에서 주목받아 2021년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언론을 통해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니고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추천으로 띄워주어 보게 되었다. 내가 하도 사회 분야 책을 많이 읽어서 좋아할 것 같았나 보다. 마침 자주 가는 도서관에도 있어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그동안 출간했던 책들은 다 시집이었다. 시집이 상을 받은 건 저자가 시인이니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에세이인데도 권위 있는 상을 많이 받았고 꼭 수상이 아니더라도 후보까지 여러 번 오른 점이 신기했다. 또 하나 신기했던 건 한국계 미국인이 쓴, 제목 그대로 소수적 감정에 대한 책이 이렇게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좋아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책으로 인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생겨났다.



단 한순간도 인종 정체성에 초연할 수 없는 삶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을지, 무슨 말을 하면 좋았을지 내 생각을 샅샅이 점검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 무한대로 커져서,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결코 충분치 못하다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더 잘하고, 더 잘되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하며…내 순가치를 늘려 내 개인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는 짓을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한다. 58p


저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를 인식하며 살아왔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다른 종류의 차별을 당한다. 아시아인은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 만한 존재감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으며(26p)”, “눈에 보이지도 않는 노예 같은 존재(38p)”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흑인에게는 불신당하고 백인에게는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흑인을 억압하는 일에 이용당한다”(26p). 아시아인은 흑인과 달리 착하고 성실하다는, 백인이 심어놓은 모범 소수자 신화에 따라 움직인다.


저자는 이 모든 현실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없다. 다수가 느끼지 못하는 오묘하고 복잡한, 소수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불쾌감? 일반적인 불쾌감과 다르다. 짜증? 그냥 짜증과 다르다. 저자는 이 감정을 소수적 감정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보편적인 감정과 구분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일반적인 정체성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그의 인종, 그러니까 인종 정체성이 야기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84p


사실 책 초반부를 읽을 때, 저자가 겪고 있는 우울증이나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얘기가 한참 나와서 읽기 힘들었다. 그만 읽을까 싶어 책을 덮었더랬다. 제목인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기에 그런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감정을 말하는 건가 보다 내 멋대로 추측하고는, 그렇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우울하고 답답한 소리만 하는 책일지 모른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소수적 감정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소수적 감정, 이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단 한순간도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초연해질 수 없는 삶, 자유가 있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삶, 그래서 소수적 감정을 숨 쉬는 순간마다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삶.


상상이 잘 안 된다. 나는 겪어보지 못해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은, 이다. 언젠간 내가 캐시 박 홍 처럼 비백인 국가에서 비백인종으로 살 수도 있으니 아예 가능성이 제로인 일도 아니다. 만일 내가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불일치하는 사람이고 내 외모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백 퍼센트 알아볼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면 아주 조금은 그 상상에 다가설 수 있으려나.


만일 내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이런 폭력적인 환경에서 무시와 혐오와 모멸을 느끼며 성장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솟는다. 나 같아도 성격이 있는 대로 삐뚤어졌을 것 같다. 학교 애들과 싸우느라 말발이 더 좋아졌을 것 같다. 성격도 세졌을 것 같다. 저자가 자신이 우울증과 편집증 등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기를 먼저 한 이유가 비로소 이해된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이런 소수적 감정과 싸우며 인종 정체성에 초연하려 애쓴다. 자신의 글에서 인종 정체성을 지우기도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므로 굳이 아시아인이라는 인종 정체성을 글에 드러낼 이유는 없잖은가.


그러다 대학 시절 저자는 명미 킴이라는 시인이자 교수를 만난다. 명미 킴은 저자의 글을 보고 다른 사람의 말투를 모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때 백인처럼 글을 쓰고 백인에게 환심을 사려 들었던 그는, 서투른 영어를 부끄러워하며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려 자기 자신을 몰아세웠던 그는, 서투른 영어를 자신의 유산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글에서 인종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일정 기한이 지나면 우리가 인종 문제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비록 나는 회의적이지만, 이 기회에 우리가 미국 문학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동으로 규정하는 낡은 인종 서사, 우리의 삶을 백인 청중의 구미에 맞추면서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다양한 현실을 삭제해버리는 낡은 인종 서사를 갈아치우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어진 공식에 따라 우리 자신을 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75p


그의 언어는 힘이 있다



지금까지의 소개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 캐시 박 홍이라는 사람은 부드럽고 온화한 스타일은 아니다. 성격 있고 센 언니 같은 느낌이랄까. 곳곳에서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과격한 표현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다혜 씨네 21 기자가 진행하는 알라딘과 마티의 북토크 영상에서 캐시 박 홍을 봤는데 예상했던 이미지여서 혼자 웃었다.) 그동안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정한 글들이 주는 말랑말랑한 위로와 안정감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었는지 읽다가 종종 흠칫 놀라곤 했다.


그의 언어는 힘이 있다. 단지 과격한 단어들을 열거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언어를 찾지 못해 헤맸던 시간을 공유하고, 그 끝에 찾아낸 언어로 차별에 대해 말한다. 백인이 아시아인을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보는 것을 비판했듯 차별에 대해서 결코 뭉뚱그려 얘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 자신이 본 일, 그때 자신이 느낀 감정,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게 파고 들어간다. 꾸밈없고 신랄한 문장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과 혐오의 단면을 날카롭게 베어낸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었을 때 캐시 박 홍의 인생을 어느 정도 간접 체험해 본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고 분노할 때 같이 분노했다. 물론 내가 미국에 살아보기 전에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



누군가는 이 책의 제목의 뜻을 알고 나서, 혹은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라는 부제목을 보고 또 인종 차별 얘기야?라고, 지겨워서 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또 읽을 필요가 있는지 잠시 생각했다.


그럼에도 왜 차별에 대한 또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했을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관련 책을 꽤 많이 읽어왔다고 자부하면서도. 아마도 이 책 다루고 있는 주제 범위가 비교적 작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차별 중에서도 인종 차별, 그중에서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을 핀셋으로 콕 집어 가져와서 뼈와 살과 근육까지 낱낱이 해부한다. 해체된 속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내가 아는 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차별이 없어질 때까지. 저자의 말대로 보편성이 파괴될 때까지.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얘기를 듣고 싶었다. 계속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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