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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미미 Jul 25. 2022

들어가는말. - 왜 놀이인가.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발췌

<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놀이는 언제부터 인류와 함께했는가? 각 문명권마다 공통적으로 놀이와 관련된 원시어(고대어)가 존재했다는 실증적인 사실이 놀이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이와 동시에 놀이와 관련된 각 문명권의 원시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놀이에 담긴 의미의 다원성과 더불어 놀이는 결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르네상스로 촉발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뿌리에는 인간의 예술적인 본능이 자리한다. 예술이 성립하려면 감성과 상상력 그리고 자유라는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놀이가 내포하는 우연, 상상, 자유 등의 가치가 인간성의 한 요소로 수용되었다는 뜻이다…근대의 놀이는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통로인 노동과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비생산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놀이는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놀이에 대한 전면적 재평가는 철학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놀이에 대한 편견을 뿌리부터 흔든 출발점은 문화사와 사회과학이 이른 실증적 연구였다. 


노동의 효율성과 유용성을 맹신한 근대의 파국을 돌파할 탈출구를 찾던 지적 노력은 오랫동안 잊힌 ‘놀이’를 새롭게 발견한다. 이러한 노력의 본격적인 결실은 1938년 네덜란드의 문화사확자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통해 드러난다. 하위징아는 이 책에서 문화는 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제기한다…하위징아가 내린 결론은 ‘문명이 놀이 속에서, 그리고 놀이로서 생겨나고 또 발전했다’는 것이다. 


놀이는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놀이는 기본적으로 생물적인 욕구 충족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 따라서 놀이를 유지하기 위한 외부적 강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놀이는 노동과 달리 놀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놀이는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놀이의 열광은 꿈과 상상력의 산물이다. 놀이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심심풀이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문화의 산물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행위라는 점 때문이다…놀이는 사회적 활동이다…놀이는 대개 사회적 성격이 강하며, 서로 경쟁하고 협동하는 과정에서 놀이의 기쁨이 배가된다. 


니체는 놀이를 둘러싼 문화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기 이미 반세기 전에 놀이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간파하고 있었다…니체는 근대의 가치가 몰락함으로써, 즉 니힐리즘으로 귀결함으로써 생리학적 자기모순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생리학적 자기모순이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자기 상승과 힘의 강화를 꾀하기 마련인데, 근대인은 이러한 생리학적 원리에 반하는 가치를 신봉한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놀이에서 어떤 가치들을 발견했으며, 그것이 왜 근대성 극복과 관계하는가? 첫째,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주체나 중심이 아니라 놀이하는 과정 자체이다…둘째, 놀이는 존재와 생성에 관한 전통형이상학의 좌표를 전도한다…존재의 측면에서 놀이는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맥락 의존적이다. 그런데 20세기의 사회문화적 환경은 선형적 질서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만큼 복잡해졌으며, 더욱이 자연과학적 탐구는 우리를 둘러싼 우주가 질서가 아닌 카오스 상태에 놓여 있고 우연이 필연보다 더 근본적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변화와 생성을 속성으로 하는 놀이가 존재를 기초로 한 전통 형이상학보다 삶과 세계를 설명하는 데 훨씬 유효하다. 


셋째, 놀이에 담긴 생성과 우연, 순간의 속성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의 뿌리가 된다…놀이가 지닌 속성은 오히려 개별자의 인식과 가치 실현에 본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놀이의 모호한 지위는 주체와 객체, 선과 악, 본질과 현상 등의 이분법에 기초한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놀이는 비-주관성, 비-목적성 또는 무-목적성, 무-의미성의 접두어 ‘비’ 또는 ‘무’는 단순히 실재와 모순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뜻한다…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인간 또는 주체로 인식될 수 없는 일체 존재자들을 개방하는 지평과 같다. 


니체의 경우…가치는 특정한 개인과 공동체의 ‘힘을 향한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놀이도 같은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데…유럽 가치의 재평가를 통해 니힐리즘을 극복하려는 니체가 찾은 돌파구는 바로 놀이다. 니체의 예술철학, 관점주의, 힘을 향한 의지, 영원회귀는 모두 놀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체 중심의 근대 현이상학을 극복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가디머에 따르면 예술활동은 근본적으로 놀이적 속성을 띤다. 즉 예술작품은 표현되고 해석됨으로써 의미를 얻는다. 예술작품에서 작가는 작품에 절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품에 부속된다. 놀이에서 주체가 아니라 놀이 자체가 놀이의 중심이듯이, 


핑크는…놀이를 통해 인간은 상상할 수 있고, 세계를 자유롭게 바라봄으로써 전체로서의 세계를 조망한다…놀이의 심층적인 의미는, ‘세계상징’으로서의...세계는 우리에게 자신을 상징으로 드러낼 뿐이다. 이 상징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놀이인데 이때 놀이는 세계와 마찬가지로 주체, 목적, 인과, 선악의 경계 너머에 있다.  


오늘날 예술은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예술은 놀이의 정신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현대철학의 놀이 사유는 현대 예술의 직간접적인 자양분 구실을 한다. 그리고 예술은 삶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현대예술에서 놀이의 정신을 상론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니체는 예술의 출발을 생리적 ‘도취’ 도취의 놀이에서 찾는다. 인간이 뭔가를 창작하려면 도취가 전제되어야 한다. 인간이 도취 상태에 있다는 것은 힘이 고양되었다는 뜻인데, 힘은 자신을 분출할 출구를 찾기 마련이다. 즉 일체의 ‘힘을 향한 의지’는 자기를 유무형의 방식으로 조형하거나 형성하고자 한다. 니체는 자신의 후기 사상 중 하나인 ‘예술생리학’에서 예술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전문가의 활동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인 활동 일체로 넓혀나간다. 따라서 그에게는 인간의 인식행위, 도덕적 가치를 수립하는 것도 일종의 창조적인 행위에 포한된다.


모든 인간 행위를 예술적인 활동으로 이해함으로써 예술 창작자와 관람자, 창작자와 작품 간의 분리를 거부한 니체의 ‘예술생리학’은 현대예술의 강령이 되었다…현대예술을 정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현대예술에서 우연과 놀이의 비결정성을 창작활동에서 핵심 요소로 받아들였다는 점과 작품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예술 활동 자체를 중요시한다는 점은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대예술의 경향에서 니체 놀이철학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왜 현대예술은 우리에게 멀어졌을까? 왜 놀이는 예술의 지평선이 아닌 소비의 지평선에서 주로 떠올려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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