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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Jul 18. 2022

남녀 사이엔 친구란 없는 걸까? (2)

전 편의 내용과 이어집니다.

전 편의 내용을 쉽게 얘기하자면, 오랜 기간 함께한 친구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 정도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이야기에서 만큼은 나는 어부다. 나는 지금 상황을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일단, 어부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바다로 나가는 것이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최근 바다에는 아주 거대한 파도가 쳤다. 허리케인이 몰아쳤고, 쓰나미가 몰려왔다. 지금의 바다는 잠잠한 듯 보이나 나는 아직 바다에 사라지지 않는 잔류 소용돌이가  남아있다고 믿는다. 아마 내가 나서서 확인하고,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그 바다로는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거다. 물론, 돌아간다 해도 큰일이 일어났던 만큼, 예전의 물살과 기류 같지는 않을 거다.


자, 이런 상황에서 한평생 뱃일만 하며 살아온 어부는 바다로 나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맞을까?


누군가는 어차피 가야 하는 바다고, 어차피 돌아올 바다다. 그러니 부딪혀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 바다와 쌓았던 모든 것을 내버려 두고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그래, 그 날이후로 그 친구와의 연락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연락을 보내고 있지만…


요즘은 뭐하고 지내? 잘 지내?”


그 친구의 따뜻한 인사는 여전히 거부할 수 없을 듯이 착하고 따스하지만 이전처럼 더 이상 순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섣불리 내가 모른 체하고 대답해버린다면 아마 그 친구도 내게 다시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난 인정하기 싫다. 남녀 사이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었던 친구사이가 고작 그 한순간 때문에 깨지는 것도, 우리가 쌓아온 6-7년 간의 우정이 사실은 짝사랑에서 일어났던 사랑의 감정 따위였다는 것을.


그 친구는 애써 모른 척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날 무슨 일 있었냐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꺼내긴 하지만… 그다지 그 말을 신뢰하거나 믿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나한테 감정을 표현한 것은 그 일 한 번 뿐만은 아니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않겠지만, 나는 군대가 많은 젊은이들을 고립시켜서, 감정적으로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성관계에 있어서)


그 친구는 8월 중순이 되면 대구를 떠나 부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자취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아마 대구엔 거의 내려오지 않겠지. 그래, 우린 이제 그런 사이가 되는 것이 옳겠다. 나의 학창 시절과 성년기를 같이 보내준 친구와 그에 대한 기억을 모두 바다에 두고 떠나야지. 그럼에도, 부산으로 떠나기 전 밥 한 끼는 같이 해야 하지는 않을까.


글을 쓰고 보니 마음 한편이 많이 아리고 슬프다. 내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소중한 추억들이 더 이상 기록되지 않고 낡은 일기장에 잠들어 대청소를 할 때나 추억하게 되는 그런 사이가 된다니. 아니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그날의 이야기는 머나 먼 바다 깊은 곳, 그 속에서 굳게 닫힌 마음과 함께 잠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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