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숨겨둔 치부가 상대에게 투영되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원제가 'Why We're Polarized(우리가 양극화된 이유)'인데 굳이 제목을 저렇게 번역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인문학 서적으로 보이길 원해서였을까.
저자인 에즈라 클라인 (Ezra Klein)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분석가이며 팟캐스트 진행자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주제로 이야기 포문을 열었고 트럼프의 당선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 이유로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지적했다.
책은 미국의 정치 양극화에 주목해 미국 정치의 역사와 통계, 미디어분석, 심리학까지 동원해 양극화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현상은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국가와 정치가 존재하게 된 이유는 결국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이 모여서 살기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이고,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사회적 배분을 전제로 한다. 그 사회적 배분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고 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사람들의 정체성을 조작하고 감정을 부추겨 정당을 위한 지지자와 후원금을 모으는 정치가 득세하면서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인간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의 협동을 유발해 사회 전체가 잘 살게 하고, 협동의 결과인 공공재를 활용해 사회 전체가 잘 살면 자기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제대로된 정치인데, 공공재에 기여하지 않고서도 이를 사용할 수 있다보니 이기적인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이 사람들을 지지자로 만들고 부추기는 자들이 정치를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돈은 당이 약해지고 열성 당원들이 강해지고 양극화 후보들이 번성하게 하는 또다른 요소라고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정치 양극화로 인해 나타나는 미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양극화 현상을 간단하게 악으로 치부하지도 않고 일시적 현상으로도 보지 않았기에 양극화 현상을 없앨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양극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100% 정답을 찾기 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선을 선택해 내폭(폭발을 견디는 힘. 현재의 난관을 견디는 인내심으로 이해함), 민주화, 균형 세 가지 범주의 개혁으로 시스템을 수정해 가며 나아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일련의 양당제나 다당제 어느 것이든 이미 오랜 시간을 두고 체계화된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최선에 맞춰 시스템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치 뿐만 아닌 우리 자신들의 탈 양극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이 사는 곳에 정치적 정체성의 뿌리를 더 많이 내림으로서 양극화를 줄여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대부분의 사례는 미국이고, 대안 역시 미국의 정치 전제하에서 제시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이 겹쳐 보인 것은 정치 양극화 및 상대에 대한 혐오와 타자화가 비단 미국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세계적인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한번쯤 정독해 보시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