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스 Nov 03. 2023

인간동물은 왜 비인간동물에게 구원을 요구하는가

-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와 당나귀 EO의 평안을 위하여.

2023년 10월 3일, 당나귀 EO라는 제목의 영화가 정식개봉하였다. 영화 당나귀 EO는 한국에서는 2022년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에게 선보인 적은 있으나 정식으로 영화관에서 개봉이 되는 것은 2023년 10월이 처음이다. 당나귀 EO는 1966년 프랑스에서 개봉한 당나귀 발타자르를 리메이크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EO와 발타자르 모두 당나귀의 이름이다.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는 표드르 도스도옙스키의 소설 '백치'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영화 당나귀 EO는 영화 당나귀 발타자르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로 보여진 비인간동물, 당나귀 EO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EO가 처음 등장하는 씬은 바로 서커스였다. EO는 서커스에서 인간동물에게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서커스 무리가 이동을 할 때는 짐을 옮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서커스에서 EO와 함께 공연을 하는 인간파트너인 카산드라는 당나귀인 EO에게 친절하지만 EO가 겪은 서커스에서의 삶은 딱히 평온하지는 않았다. 서커스가 공연을 다니는 폴란드 내에서 동물권 이슈 문제로 인하여 EO는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구조'되어 떠돌이 신세가 된다. 구조 직후에는 사진촬영용 말을 키우는 마사에 들어가 말의 먹이를 끄는 마차 역할을 하게 되며, EO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당나귀가 사는 생추어리로 이동하게 되지만 이 곳에서도 EO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한다. 어느 날 카산드라가 당나귀 생추어리로 EO를 찾아와 잠시 쓰다듬어주지만 곧 자신의 길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EO는 생추어리를 '탈출'하여 길을 나선다. EO는 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생추어리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길을 떠났을까? 알 수 없다. 인간동물이 EO에게 '넌 어디로 가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해주지 않았듯이 EO 역시 인간동물에게 '스스로 어떤 삶을 살겠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EO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당나귀 EO가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면서 보여지는 인간동물의 면면은 비인간동물의 입장에서는 이해도 공감도 안 되는 상황뿐이었다. 길에서 EO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 화재진압을 하는 동안 한 쪽에 EO를 묶어둔 소방대원의 의지와는 달리 길을 떠도는 어떤 인간동물은 그저 '무질서가 좋다.'는 이유로 EO를 다시 풀어준다. 작은 운동장에서 열린 축구경기 옆에서 울음소리를 내어 경기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이긴 팀에서는 EO를 마스코트라며 끌고 다니고, 진 탐에서는 EO 때문에 경기에서 졌다고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 경기에서 진 팀의 폭력 때문에 다친 EO는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지만 치료 후 EO가 가게 된 곳은 여우의 가죽을 판매하는 모피 공장이었다. 죽어가던 당나귀가 인간동물에 의해 목숨을 건져, 인간동물이 여우를 죽이는 곳에 흘러가게 된 것이다. EO가 반복적으로 보는 것은 모두 이렇다. 인간동물 중 누군가 선의에서 한 일이 EO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고, EO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비인간동물의 삶을 침해하는 인간동물과 당나귀인 EO 자신을 도와주는 인간동물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을 뿐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 백치의 주인공 뮈시킨은 예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동물이었고, 자신을 버림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는 인간동물이었다. 문제는 뮈시킨의 행동으로 어떤 사람은 절망에 빠져버렸을 뿐이다. 상당히 많이 인간동물에 영화에서 당나귀 EO에게 서투르고 어설픈 동정을 보이고 그 때문에 EO의 삶은 망가진다. EO를 비롯하여 그 어떤 비인간동물도 인간동물에게 구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에게 구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EO는 물론 모든 비인간동물을 삶을 위하여 인간동물은 어설픈 구원이 아닌 모두의 삶을 위한 선택이 필요할 수 있다. Peace!



글쓴이: 나윤

동물이 좋아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물이 좋아 비건이 된 사람. 동물 중에서는 대동물을 좋아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