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환대’가 너울대는 비건 세상 속으로
코로나19가 탄생하기 전 2019년 여름, 더 넓고 깊은 비건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비건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유럽으로 정해졌다. 첫 한 달 간은 북유럽과 맞닿아있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시작으로 핀란드, 에스토니아, 스웨덴, 덴마크까지 북유럽을 두루두루 탐방하고 왔으며, 그 이후에도 네덜란드, 독일,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페인, 포루투갈,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을 여행하고 왔다. 이렇게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비건 네트워크의 어마어마한 도움이 있었다. 가진 돈은 적었지만 비건들에게 받은 사랑은 엄청났다. 본 글에서는 비건 네트워크를 통한 여행을 다루고자 한다. 숙박비 지출 0원에 달성한 유럽 여행이 가능했던 데에는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할 가치가 있었다. 바로 비건 네트워크가 가져다준 ‘관용’ 그리고 ‘환대’의 가치이다. 나의 여행기를 통해 그 가치를 나누고 싶다. 이를 위해 훗날 여행할 비건 여러분을 위한 팁을 알려주고자 한다. 그럼 지금부터, 비건 세상 속으로 뽈뽈 통통 돌아다닌 나의 여행기를 시작하겠다.
먼저 여행의 시작, 북유럽 여행의 목표는 선진적인 현지 비건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함은 물론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여행하기였다. 그를 위해 동행자와 나는 비건 네트워크를 통해 숙박을 구하고 적극적으로 비건 친구들을 사귀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지구별을 여행하는 비건 에코페미니스트로서 유료 숙박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현지 경제체계를 좌우하는 다국적 기업의 권력과 환경오염을 줄이고 싶었기에 최종 목표를 숙박비 0원으로 잡았다. 일반적인 여행에서 우리는 다국적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첫째로, 여행자는 보통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을 이용할 때 숙박 검색 플랫폼이나 세계적 브랜드 호텔과 같은 다국적 기업의 상품을 이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현지 경제체계로 들어가야 할 자본이 다국적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현지 경제체계는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지역성 경제 자립성을 잃어버린다. 둘째로, 우리가 어떤 형태의 숙소를 이용하게 되든지 간에 우리가 거쳐 간 곳에는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올 것이다. 새로운 침대시트를 매번 교환하거나 일회용품 제공하는 등 많은 영역에서 환경오염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기여하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낭비를 최대한 줄이고자 유료 숙박을 지양하기로 했다.
그를 위해선 내가 할 일은 부킹스 닷컴을 검색하는 일보다는 페이스북을 열심히 뒤적이는 일이었다. 더불어 해외에 친구가 많은 비건 친구를 통해 여러 나라의 비건 친구들과 연결시켜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정말이지 다양한 통로를 통해 비건 친구들의 집에 묵게 되었고 목표였던 숙박비 지출 0원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만남과 장소들을 소개해보겠다.
먼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따스한 공동체가 기억에 남는다. 나보다 먼저 그 도시를 방문한 비건 친구가 소개해준 곳이었다. 새벽 두 시,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침입한 우리에게 그들은 당황함이 아니라 미소로 반겨주었다. 그 때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따뜻한 차와 빵의 온기가 아직도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듯, 비밀스러운 공간이 가득한 듯 보였던 그 집에는 대대로 많은 가족들과 개인들이 왔다 갔다 하며 공간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라온 사람들의 아이들이 또 이곳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도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늑한 침대와 차 한 잔을 내어준다.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환영과 모두가 평등하게 한 집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에 감격했다. 내가 바라는 공동체에 직접 묵어본 경험은 정말 귀중했다.
다음으로,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A는 본 적도 없는 우리에게 선뜻 근사한 방을 내어 주었다. 방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에서 처음 만난 도시 헬싱키, 여행 가기 전 난 페이스북 Annonymous for the voiceless(이하 AV); Helsinki 그룹에 가입했다. 그리고 여행 일정을 말하며 하룻밤이라도 지낼 수 있을지 숙박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과연 이렇게 해서 방을 구할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올린 글에 바로 연락이 왔다. 바로 연락을 준 A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냥했다. 20년차 비건인 그는 비건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는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 빈 방이 하나 있다며 그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사우나까지 있는 멋진 집 사진을 보내며 친절하게 도시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친절에 우리는 마음 놓고 헬싱키로 향할 수 있었고 직접 만난 그는 예상만큼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머무르는 동안 우리의 편의를 봐주고 현지인만 아는 헬싱키의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에게 훌륭한 비건 뷔페를 사주기까지 했다. 비거니즘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며 비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영감을 얻었다. 나는 과연 이방인에게 이러한 친절과 따스함을 베풀 수 있을까? 그에게 받은 것만큼 깨닫는 것이 많은 만남이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비건 친구들 덕에 잘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원래부터 알고 있던 스웨덴 친구의 집에서 묵으며 스웨덴의 부산, 예테보리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수많은 비건 먹거리를 직접 요리하면서 북유럽 비건의 일상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어딜 가든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들과 비건 친화적인 사회 인식이 참 부러웠다.
덴마크에서는 비건을 기반으로 한 히피 공동체 하우스의 정원에서 지냈다. 모두가 자유로운 모습으로 모여 사는 그곳에서도 다채로운 삶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핀란드 투르크에서는 비건 친구의 연결 덕에 심지어 서커스에서 하루를 묵기도 했다.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재미난 경험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카우치서핑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페이스북 페이지 Vegan Amsterdam에 올린 글을 보고 한 비건이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주었다. 그는 기꺼이 커다란 매트리스를 펴주며 신세를 지는 우리에게 오히려 맛있는 비건 요리를 해주었다. 감동적인 순간의 연속이었다.
후에 이어진 여행에서도 비건들의 도움으로 나는 다채로운 곳에서 안전히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기적적으로 여행 하루 전 날 잘 곳을 구하기도 했다. 작은 도시, 룩셈부르크를 갑작스럽게 여행하게 된 나는 이 도시에서 잘 곳이 없다는 것을 여행 전날에 깨닫게 된다.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는 이미 자리가 찼고 고급 호텔만 남아있는 것이다. 초조한 마음을 가득 안고 나는 페이스북 그룹 Vegan Travel에 글을 올렸다. 놀랍게도 바로 몇 분 안에 룩셈부르크에 거주하는 비건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룩셈부르크의 모든 여행 일정을 짜주고 비건 맛집을 소개해주었다. 나와 같이 비건 에코 페미니스트인 그와 나는 밤새도록 동지를 만난 반가운 마음으로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한 명 더 생겼다.
독일과 스페인에서는 한국에서 원래 알고 있던 비건 친구들을 통해 숙박을 해결했다. SNS를 통해서 각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비건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비건들의 연대감이란 그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을 만큼 끈끈한 것이어서 많은 비건들이 자신의 방 한 켠을 서슴없이 내줄 때가 많다. 이로써 세계 곳곳마다 촘촘히 이어져있는 비건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밤새도록 비건으로서의 동질감을 나누며 떠들고 친해졌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들은 한국에 와서도, SNS 상에서도 무척이나 귀중하다. 지금까지 여행을 통해 잠깐이었어도 함께였던 비건 친구들은 나의 추억 속에 고맙고도 찬란하게 남아있으며 아직도 SNS를 통해 연락하는 등 든든한 비건 친구들로 인연을 이어나간다.
이처럼 비건 네트워크 덕에 멋진 비건 친구도 많이 사귀고 여행비도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값진 가치를 배웠다. 바로 ‘관용’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여행자를 환영하고, 이방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나만의’ 집이 아니라 ‘모두의’ 집이라는 의식이 확고해보였다. 이런 의식이 있을 때 진정한 공동체가 꾸려지는 것이 아닐까? 또 내가 받았던 묵직한 ‘환대’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 후에 내가 여행한 수많은 도시의 친구들이 자신의 방을 공유해주었듯, 나 또한 마음을 활짝 열고 다른 이들에게 나의 방을 공유해주었다. 그간 내가 받은 엄청난 도움이 있었기에 나도 도움을 베푸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다. 비건들이 내게 보여준 ‘환대’가 다른 이들을 향한 나 자신의 환대로도 이어진 것이다. 더하여 나 자신도 비건 네트워크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이처럼 나의 여행은 무수한 비건 세상의 일원들 덕에 저렴하고 안전한 것은 물론 알차게 마칠 수 있었다. 이방인을 향한 이들의 따뜻함과 배려가 넘치는 비건 세상을 여행하면서 나 또한 자신의 경계를 확장시키며 사람들을 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전 세계의 비건들을 연결하는 비건 세상의 관용과 환대가 우리 모두를 잇는 가치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도 이 글 밑에 공유한 나만의 팁을 통해 비건 친구들은 늘리고 지출과 낭비는 줄이는 비건 세상 속으로 행복한 여행하시길 바란다. 그 세상에는 ‘관용’과 ‘환대’가 너울거릴 것이다.
1. 여행을 가기 전 각 국가와 도시의 비건 네트워크의 페이스북 그룹을 탐색 후 가입한다.
예) 헬싱키에 간다면 AV: Helsinki, 암스테르담에 간다면 Vegan Amsterdam 검색 후 가입하기
2. 페이스북 그룹에 자기소개 후(사진이 있으면 더 좋다) 배낭여행 중인 비건임을 강조하고 숙박이 가능한 지 구체적 일정과 함께 묻는다. 이 도시의 비건 문화를 접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고 말하며 그 도시에서 열리는 비건/동물권 운동에 참여할 의지를 밝히거나,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재능(요리, 타투, 그림, 악기 연주, 타로, 사주 등)을 소개하면 좋다.
3. 페이스북 그룹 Vegan Travel에 반드시 가입한다. 정말 유용하므로 강력히 추천한다. 각 도시의 비건 숙박 문의나 비건 맛집 정보를 편리하게 얻을 수 있다.
4. 카우치서핑 어플에서 ‘비건’ 키워드를 강조하며 비건 호스트들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후기를 통해 호스트가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필수다.
5, 여행 전 다른 비건 친구의 친구 혹은 여행을 하며 사귀게 된 비건 친구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또 숙소를 구할 수 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알게 된 비건들의 도움도 컸다. ‘비건’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만들어지는 연결고리는 그만큼이나 끈끈하다.
6. 번외로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이라면 페이스북 그룹 Host a Sister도 추천한다. 세계 각국 여성들의 카우치서핑 그룹이다.
** 코로나 19 사태 이후, 이 글을 쓰는 2023년 지금 상황이 좀 변했을 수도 있다는 점 참고 바란다.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