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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책 May 16. 2023

달의 전사

  “안녕하십니까. 화성과 지구에서 지켜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달의 전사’ 8강전이 곧 시작됩니다.”    

 

  화성 이주계획이 실현되면서 지구는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었다. 쌓여가는 쓰레기로 지구는 오염되었다. 온난화 현상으로 기온이 상승해 폭염이 지속되었다. 식량은 재배할 수 없었고, 많은 사람과 동물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돈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 화성으로 이주했다.

  지구에서도 얼마 살 수 없는 목숨이었기에 ‘달의 전사’의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도전했다. 화성 부자들의 유흥으로 제작되는 ‘달의 전사’는 1등 한 사람만이 화성 이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담보로 격투에 나섰다. ‘지구의 종말’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격투에 소질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치열하게 살아남았던 나는 ‘달의 전사’가 되었다. 지구에서 승리한 열여섯 명의 ‘달의 전사’는 마침내 달에 도착했다. 화성 부자들을 위해 오염된 지구 대신 달에 격투장이 건설되었다. 다행히 16강전에서 가볍게 승리했다. 지구에서 치른 수많은 격투와 16강전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1등을 해서 꼭 ‘화성의 세계’로 가고 싶었다.     


  8강전 격투장에 올라섰다. 객석에서는 화성 부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달의 전사’는 1대 1 토너먼트 격투로 진행되었다. 무기 없이 오직 몸으로만 싸워야 했다. 패배를 인정하면 격투장에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달에서는 거의 모두가 죽을 때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살아서 다시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잔인한 ‘달의 전사’ 규칙 때문에 원성이 자자했지만, 그 덕분에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상대가 나타났다. 긴장이 되었지만 카운트다운 소리에 집중했다. 승리하기 위해 선공에 무조건 성공하고 싶었다. 3.2.1.0

  아차. 상대가 너무도 빨랐다. 바로 상대의 발차기에 배를 맞았는데 장기가 파열된 고통이 밀려왔다. 상대는 강했다.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내 위로 상대가 올라타 연타를 날렸다.

  점점 의식이 사라졌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지구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화성의 세계’로 갈 수 없다니.

  나는 ‘달의 전사’로 죽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박시현. 저녁 먹으러 나오라고 몇 번을 불렀냐? 대체 뭐 하고 있어?”

  “아. 엄마. 노크 좀 해. ‘운명’ 게임하고 있단 말이야.”

  “운명이고 나발이고. 불렀으면 대답해야지. 빨리 저녁 먹으러 나와.”

  하.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또 시작될 것 같다. 같이 게임 중이던 강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8강전 승리 축하. 꼭 1등 해라. 나는 저녁 먹으러 간다.’      


  “시현아. ‘운명’이 그렇게 재미있어?”

  “요즘 유행이잖아. 엄마도 해보셔요. 강우 엄마는 벌써 ‘화성의 세계’ 하신대. 나도 빨리 ‘달의 전사’ 1등 해서 ‘화성의 세계’ 하고 싶어.”

  “어떻게 하는 건데? 많이 싸워야 해?”

  “어. 많이 싸워야 하긴 해. ‘운명’은 ‘지구의 종말’, ‘달의 전사’, ‘화성의 세계’ 스테이지가 세 개 있거든. ‘지구의 종말’에서 승리를 많이 해야 ‘달의 전사’가 될 수 있어. ‘달의 전사’는 1등 하기 어렵긴 한데 상대를 잘 만나야지. 나는 강우한테 방금 졌어. 8강전부터 다시 해야 해. ‘화성의 세계’가 진짜 재미있다던데 빨리 1등 해서 화성 가고 싶다.”

  “화성 가면 뭐라도 주냐?”

  “화성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재미있데. 화성에서 무언가를 여러 가지 만들 수 있나 봐. 나도 아직 안 해봐서 몰라.”

  “나도 폰에 ‘운명’ 다운로드 해야겠네.”

  “어. 엄마. 다운로드하면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게. 시작할 때 일단 캐릭터를 잘 골라야 해. 어떤 캐릭터가 강하냐면 말이야.”     


  시현이의 설명 폭격이 시작되었다. 아들이랑 같은 게임을 하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겠지. 이것이 엄마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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