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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책 Apr 02. 2024

고모

카페 수.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던 지수에게 입사 전에 했던 일을 물었을 때 나왔던 카페 이름이었다. 회사 점심시간, 나이가 동갑인 지수와 말을 놓기로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 상태였다.

“남자 친구하고 같이 했던 카페였어. 남자 친구 이름에도 수가 있어서 지었는데 카페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라. 일 년도 못 채우고 결국 문 닫았어.”

“거기 네가 했던 카페구나. 디저트가 예뻐서 나도 동네라 한번 가봐야지 했었는데 위치가 좀.”

“맞아. 위치가 외져서 더 힘들었어. 그 주변에는 등산하거나 백숙 먹으러 오는 나이 많은 사람들뿐인데 우리는 젊은 사람을 대상으로 메뉴를 만들었으니. 망할 수밖에.”

“그래도 문 닫으면서 아쉬웠겠다.”

“카페는 지긋지긋해.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쟁이가 훨씬 좋아. 했던 일이기도 하니까.”

지수가 고개를 크게 내두르며 말했다.

“거기는 이제 영업 안 해?”

“여기 입사하기 전에 인수인계 다 했는데 영업을 안 하더라고. 빨리 시작하고 싶어 해서 이때다 싶어서 권리금 받고 바로 넘겼거든. SNS에 영업 공지하라고 그런 것까지 다 넘겼는데도 감감무소식이더라. 아. 맞다. 지난주에 수도과에서 전화 왔었는데.”

“수도과에서 왜?”

“거기 카페에서 아직 명의이전을 안 했나 봐. 나한테 전화 와서 평소보다 수도세가 많이 나왔다고 확인 해달라더라. 영업도 안 할 텐데 수도세는 대체 왜? 생각난 김에 전화해 봐야겠어.”

영업을 하지 않는 카페에 수도세라니. 그때는 그저 넘기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카페에 대해 다시 알게 된 것은 텔레비전의 저녁 지방 뉴스에서였다. 아빠는 늘 그렇듯 소파에 누워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저기 우리 동네에 있는 카페 아니야?”

아빠의 물음에 주방에서 물을 마시다 나와 뉴스를 보았다.

“어. 맞는 것 같은데.”

텔레비전 속 화면에는 카페 수의 전경이 나왔다.

“저기가 불법도박장이었단다. 멀쩡하게 카페 차려놓고 왜 저런 짓을 하냐.”

얼마 전에 나눴던 지수와의 대화가 떠올랐지만 설명하면 또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입을 다물고 화면을 보던 중.

“저 사람 네 고모 같은데.”

불법도박장에서 경찰서로 잡혀 온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데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달래 색 등산복 점퍼. 작년 봄 아빠가 고모에게 사줬던 점퍼가 맞았다. 고모가 마음에 들어 했지만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여러 매장에 전화해 재고를 물어보고 겨우 주문했던 그 귀한 점퍼.

“고모 맞아. 저 덩치가 어디 가겠어? 그 버릇 또 나왔나 보네.”

“전화를 안 받는다.”

이미 아빠는 고모에게 전화했다가 끊으며 말했다. 벌써 몇 번째인가. 고모가 도박 때문에 경찰서에 간 게. 그렇다고 고모를 이렇게 뉴스에서까지 볼 줄은 몰랐다. 경찰서에 가면 늘 아빠가 고모를 데리고 나왔다. 자식들도 안 챙기니 자신의 유일한 누나를 챙겨야 한다며. 내일도 아빠는 고모를 챙기러 경찰서에 갈 것이다. 매번 챙기는 아빠의 지극정성에 놀랄 뿐이었다.

“내일 경찰서에 가봐야겠네.”

어느새 자세를 고쳐 소파에 앉은 아빠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 커다란 덩치에 짙은 눈 화장을 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며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분홍 립스틱이 묻은 담배를 발로 끄고 연기를 뿜으며 내게 다가왔다.

“이제 마쳤나 봐.”

담배 냄새와 섞인 지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응. 이 동네에 무슨 일이야?”

“나 요즘 여기서 김치 담그는 일 하고 있어. 오늘도 김치 치대다 하루가 다 갔네.”

피곤하다는 듯 팔을 주무르는 시늉을 했다. 거짓말. 당신 평생에 일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잠자코 조용히 있으니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우리 잘 만났다. 안 그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요즘 내가 사정이 좀 안 좋아서…”

그럼 그렇지. 재빨리 말을 끊었다.

“돈 이야기라면 안 했으면 좋겠어. 아빠 돌아가시고 나도 지금 정신이 없거든.”

“어. 그래. 또 전화할게.”

새빨간 손톱으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 떠올랐다. 응급실에서 아빠의 사망선고를 받았던 날. 모두 정신없이 울고 있던 시간이었다. 곡소리를 내며 돌아가신 아빠의 몸을 더듬던 당신. 아빠의 손에 있던 금반지를 빼가려다가 나에게 걸렸었지. 이런 건 금방 분실될 수 있다고 재빨리 챙겨야 한다며 내 손에 원래 주려고 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반지를 쥐여 주던 당신의 새빨간 손톱. 마치 괴물 같았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당신은 오늘도 내 곁을 태연하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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