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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히나 Nov 02. 2022

인류 최초의 옷.

    먼저, 제목만을 보고 인류 최초의 옷에 대한 역사적 고찰 내지는 '인류 최초의 옷은 oo이다"와 같은 명확한 명제를 기대한 사람들이 있다면 미안하다. 이 글은 당신이 기대한 내용이 아닐 수 있다. 지금부터 내가 적어 내려갈 내용은 성경(Bible)이란 지극히 종교적인 매체를 통해 생각도 못 해본 질문과 그 해답을 찾았던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단, 성경의 내용이 설명을 위해 들어가긴 했으나 이 글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해석 및 의미를 전파하긴 보단 의류학도로써 학술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간 것임을 미리 알린다.

  


    내가 막 박사과정을 시작했던 때에, 지역에 있는 한 교회에 방문했었다. 슈퍼 울트라 내향형인 나는 낯선 환경에 쭈뼛거리고 있었고, 그런 나를 배려하여 여러 교인분들이 말을 걸어주었다. 그러던 중 내가 의류학을 전공한다고 소개를 하니, 당시 찬양을 인도하던 집사님 한 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성경적으로 봤을 때, 인류 최초의 옷은 어떤 걸까요?

당시의 나는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생각이었고,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어렸을 적에 들었던 성경 내용을 토대로 이렇게 답을 했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후 몸을 가렸던 나뭇가지이지 않을까요?"

 

내 대답 후에도 그 집사님과는 그 주제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과연 그 나뭇가지는 어떠한 형태였을까, 옷이라고 할 만큼의 역할을 했을까 등등. 하지만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 한채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어느 한 목사님의 설교에서 나는 집사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설교는 성경의 창세기 3장의 일부분을 다룬 내용으로 그중 21절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란 구절의 가죽옷이 중심 화두였다. 설교에선 가죽옷을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물질로써 설명되었지만 나에겐 그 순간, '아 질문의 답이 저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왜 가죽옷일까?

내가 성경적으로 인류 최초의 옷이 나뭇가지 옷이 아닌 가죽옷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1. 옷이 갖는 기본적인 목적

    오늘날과 같이 자원이 풍족한 시대에서는 의복이 "자기표현의 수단"이란 의미를 갖지만 인간이 옷을 입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로부터 인간의 약한 신체와 피부를 보호하는데 의복은 그 목적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이전에 답했던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옷은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인류가 가장 초기에 만든 "직물" 옷은 나뭇가지나 식물의 줄기에서 얻은 섬유로 만들었다. 이것을 "인피 섬유(Bast fiber)"라고 하는데, 흔히 여름용 소재로 많이 입는 마직물로 만든 모시옷이나 리넨(Linen)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 인피 섬유들도 자연에서 채취한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서 실과 같은 형태를 갖춘 후 옷감으로 만든다. 때문에 여기서 "아담과 이브가 입었던 나뭇가지의 옷은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란 질문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분명 그들이 입었을 나뭇가지 옷은 가공된 형태의 재료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대충 몸의 일부분을 겨우 가릴 수 있는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몸의 형태에 맞게 나뭇가지가 어느 정도 정돈됐을 수는 있지만, 몸에 상처를 내지 않을 정도로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옷의 기본적인 목적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가 만들었던 나뭇가지는 결코 옷이라 할 수 없다.


2. 가죽이라는 재료적인 특성.

    전지전능(全知全能)한 하나님은 왜 '가죽옷'을 만들어 주었을까? 오늘날의 우리가 입는 옷과 같이 천으로 만든 옷을 만들어 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왜? 나는 이 이유가 바로 가죽이라는 소재가 갖는 특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죽은 조선시대까지도 갑옷의 재료로 사용될 만큼 방호력이 굉장히 좋은 소재중 하나이다. 물론 가죽도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형태와 질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천에 비해 튼튼하다는 특징이 있다. 물건을 넣고 다니는 가방에 가죽 소재가 많이 쓰이는 이유도 바로 내구성이 좋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가 가죽옷을 받은 시점은 온도와 기후 변화가 거의 없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이다. 에덴동산의 밖은 분명 극심한 추위와 더위, 험난한 산맥 등등 여러 다양한 환경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몸을 보호해야 하는 옷은 분명 튼튼해야만 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천보다는 가죽이 더 적합하였을 것이다.

또한 가죽은 통기성, 보온성 등등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동물의 표피였기 때문에 천연 가죽은 땀을 배출하여 체온을 조절하는 모공이 존재하는데 이 모공을 통해 공기의 순환이 이뤄지고 그로 인해 옷으로 입었을 때 습도 및 온도 조절이 용이해진다. 물론 동물성 단백질이란 특성 때문에 병충해에 취약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많고 다양한 천연 소재들 중 가죽 만이 갖는 장점들이 최초의 옷의 재료로 선택된 이유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생겼을까?

    처음에 가죽이란 단어만을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한 형태는 반질반질하게 잘 다듬어진 형태였다. 즉 털이 있는 모피와 같은 형태가 아닌 피부와 같이 매끈하게 가공된 형태 말이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나 혹은 역사 만화 등에서 원시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그림들을 보면 모피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많이 그린다. 그래서 혹시 번역 과정에서 달라진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영어 버전을 살펴보았다. 사실 성경의 원문을 보는 게 정확하지만 히브리어를 할 줄 모르니 그나마 할 줄 아는 다른 언어로 된 것을 찾아보았다. 참고로 영문으로 된 성경은 종류가 다양한데, 그중 몇 가지만 가져와봤다.


(Genesis 3:21)

[NIV] The Lord God made garmen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and clothed them.

[NKJV] Also for Adam and his wife the Lord God made tunics of skin, and clothed them.

[NCV] The Lord God made clothes from animal skins for the man and his wife and dressed them.

[ASV] And Jehovah God made for Adam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s, and clothed them.


의복을 표현하는 단어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통적으로 "skin"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다. 조금 더 자세히 묘사한 건 animal skin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Skin은 가공전의 짐승의 가죽을 의미한다. 이 가죽은 포유류의 것을 사용했다면 털이 존재했을 것이고, 포유류 이외의 종(파충류나 어류 등등)의 것이었다면 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의 표피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에덴을 "동산"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강가나 바닷가보단 산에 가까운 이미지여서 포유류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유추해볼 따름이다. 반면, 의복의 형태를 나타내는 단어는 두 가지였다. 바로 Tunic과 Coat이다. Tunic은 어깨에서부터 무릎 근처까지 일자로 뚝 떨어지는 의복을 뜻한다. Coat 역시 앞섶이 틔여진 형태란 차이만 있을 뿐 Tunic과 같이 대체로 길게 떨어지는 의복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옷처럼 인체의 체형에 맞게 패턴으로 나누어 만들어진 의복이 아닌 단순한 형태의 옷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 복식들은 동서양 모두 대체로 이와 같은 형태의 복식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종합해보면 성경적으로 최초의 의복은 "일자 형태로 떨어지는 단순한 형태의 모피 재질 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종교적으로  의미를 갖는 매체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나는 직물과 의복에 대하여 역사와 문화적으로 분석하는 의류학도이기 때문에  종교관과는 별개로 이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료로써 다가올 때가 종종 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데에 있어서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서술들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고,  외적인 것에는 인간의 의복이란 물질이 빠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성경책엔 옷과 관련된 용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전공이 그쪽이다 보니 처음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어서 부족하게나마 이런 내용을 적어내려 보고 싶었다. 물론 아직까진 식견이 부족하여 깊이감은 없지만  글을 읽는 이들이 '이런 것도 있구나' 정도의 유흥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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