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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Nov 18. 2021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버즈였다

오글거린다고 하지 마세요, 우린 진심이었으니까

버즈(Buzz)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버즈였다.'


나는 살면서 이토록 대중가수를 향한 멋진 헌정 문장을 보지 못했다.


당사자인 버즈뿐만이 아니라 버즈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깊이 울리는 말이었으리라.


그만큼 버즈의 전성기는 대단했고,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내 또래 중 10대의 단 한 부분이라도 버즈에게 저당 잡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꼭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여자에게도 버즈는 소중한 한 페이지였다.


아이돌 외에는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버즈를 ‘겁쟁이’란 노래로 알게 되었다.


어떤 남자아이가 버즈의 겁쟁이를 부르며 내 친구에게 고백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고백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데, 버즈와의 처음은 똑똑하게 기억에 남는다.


미래지향적이고 영어 가사들이 주를 이뤘던 아이돌 음악과는 다른 부류였다. 한국적이고, 다소 촌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인 가사, 처연한 분위기까지. 나는 그 투박함에 팍 꽂히고 말았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겁쟁이 이후 급격하게 인기가 늘어난 버즈는 남자아이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BGM 자리를 독점했고, 노래방에 가면 일단 예약하고 보는 요즘 말로 ‘믿고 듣는 가수’가 되었다.


겁쟁이에 이어, 가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까지의 연타 흥행은 신드롬이라는 말도 아깝지 않은 버즈 전성시대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버즈의 인기가 남자아이들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는데, 그 밴드의 보컬이란 사람이 잘생겨도 너무 잘생겨서 논란(?)이었던 것이다.


당시 남학생의 팬덤과 여학생의 팬덤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남학생들은 버즈, 플라워, 더 크로스 등 노래방에서 확 지를 수 있는 노래의 가수들을 좋아했고, 여학생들은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등의 아이돌들을 좋아했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것은 우리 오빠들인데, 자꾸 그 쓸데없이 너무 잘생긴 보컬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노래까지 그렇게 잘하면 얼굴이라도 좀 못생기든지, 스타성이 없든지. 화가 날 정도로 민경훈은 모자랄 것이 없는 스타였다.


민경훈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민경훈 못지않게 잘생긴 다른 멤버들도 눈에 들어와 소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곤 했다.


그야말로 소위 ‘남녀 대통합’의 드문 사례다.


나도 입덕을 부정하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버즈에게 스며들었다. 당시 용량이 무척 협소했던 나의 MP3엔 동방신기 노래 반, 버즈 노래 반이 들어갈 정도였다.


그렇게 버즈는 안티도 없이 대한민국 톱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어폰 버즈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시절, 우리는 왜 그렇게 버즈에 열광했을까.


단순히 잘생겨서? 노래를 잘해서? 운이 좋아서? 음악성이 뛰어나서?


아니다.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운이 좋고, 음악성이 뛰어난 가수들많다. 그러나 버즈만큼 오랜 시간 회자되고 모두가 스스로를  그룹의 멤버임을 자처하는 밴드는  없다.


나는 그 이유를 ‘감성’에서 찾았다. 버즈만이 낼 수 있었던 그때의 애절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 그게 2000년대 초중반 시대 분위기와 너무 잘 맞았던 것이다.


나의 기분을 BGM으로 표현하고, ‘오글거린다’라는 검열 없이 우리의 생각을 홈피에 잔뜩 적어내던 그 시절 감성과 버즈는 찰떡궁합이었던 것이다.


솔직하고, 돌려 말하는 법이 없고, 감동적인 소설 글귀를 공유하던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노래는 버즈 노래뿐이었다.


그래서 예민하고 상처가 많았던 우리는 버즈를 사랑했고, 민경훈을 좋아했다.




나보다 연장자인 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옛 추억을 꺼내 보는 일이 많아진다.


앞서 어렴풋이 말했듯이 나는 동방신기의 열렬한 팬이었다. 난생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 오빠들에게 미쳐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버즈의 예전 영상으로 추억을 곱씹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서툴렀던 10대를 오롯이 회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버즈 노래다.


나는 동방신기를 동경했고, 말 그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동방의 신’으로 떠받들었다. 하지만 신은 언제나 멀리 있는 법이니까. 신이 내 일상 깊숙이 파고들진 않으니까.


그렇게 딱히 원픽도 아니었던 버즈는 나의 10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갓쌈자

요즘 아이들은 민경훈이 버즈, 아니, 심지어 가수인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냥 아는 형님에 나오는 잘생겼지만 약간 도른 삼촌 정도로 생각한단다.


이래서 세월 앞에서 장사 없다는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한들 시간이 흐르면 그 왕좌의 자리를 내어줘야 하고, 서서히 잊힌다. 아마 지금 대단한 가수들도 언젠가는 그런 씁쓸한 과정을 겪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질 테다.


그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긴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으려고 한다. 어느 예능에서 말한 민경훈의 소원대로 버즈는 잊히겠지만, 버즈의 노래는 오래 남아 대중에게 사랑받을 테니.


적어도 내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은 버즈는 전설이다.




버즈의 인기를 모르는 자들.


길 가다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외쳐보라.


“수없이 어긋난대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기다릴게.”


두성 섞인 멜로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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