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런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rie Jan 27. 2022

영화 <킹메이커> 관람 후기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

오늘 기준, 어제인 2022년 1월 26일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킹메이커>란 영화가 개봉했다.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포스터


예고편이 한창 떠돌 때부터 반드시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개봉 첫날 바로 예매를 했다. 사실 영화 개봉을 기다리는 것은 내겐 꽤 생소한 행위였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영화였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영화라 불쾌감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하지만 나는 특정 진영에 대한 미화보다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스틸컷

이 영화의 주인공 격인 설경구 배우님은 국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김운범’ 역을 맡았다. 그리고 모두가 아시다시피 김운범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을 캐릭터로 녹여낸 인물이다.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스틸컷

그런 김운범을 동경하며, 김운범의 세상을 만들려는 숨은 계략가 ‘서창대’ 역은 기생충으로 유명한 이선균 배우님이 맡았다. 개인적으로 단정하면서 차가운 느낌을 주는 서창대와 이선균의 이미지는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이북 출신의 그는 죄 없는 사람이 소위 ‘빨갱이’라 몰려 죽임을 당하지 않는 아주 이성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사회를 열어줄 지도자가 다름 아닌 김운범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스틸컷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의기투합하게 된 두 사람. 서창대 덕분에 줄줄이 선거에서 낙선하던 김운범은 연달아 선거에서 쾌거를 거둔다. 빛과 같은 존재인 김운범과 그림자와 같은 서창대는 아주 좋은 조합처럼 보인다. 적어도 대립을 하기 전까지는. 판이 커지기 전까지는.


한 팀이었지만 두 사람의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에 나온 예를 들어보겠다.


이웃집 사람이 우리 집 달걀을 매일 훔쳐간다. 그 파렴치한이 새벽에 몰래 우리 집에 들어왔다는 걸 봤는데도 쉽사리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놈이 마을 최고의 권력자나 다름없는 이장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서창대는 이런 방법을 제시한다. 모든 닭의 발목에 붉은 실을 묶는다. 그리곤 한 마리를 몰래 이웃집에 가져다 놓고 소란스럽게 외친다. 이 나쁜 놈이 달걀도 모자라 우리 집 닭까지 훔쳐가려고 한다고. 우리 집 닭엔 붉은 실이 묶여있다고.


반면 김운범은 정반대의 방법을 제시한다. 다음 날, 오히려 그 도둑에게 달걀 하나를 가져다주겠다고. 그리고 말한다. 의심해서 미안했다고. 그러면 양심이 있는 놈이라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겠냐고.


이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얼마나 결이 다른 사람인지 비교가 되는 대목이었다.


김운범의 방법은 누가 봐도 고매하며, 훌륭한 그의 인품을 잘 드러낸다.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스틸컷

하지만 선거에서만큼은 서창대의 방법이 조금 더 효과적이었던 모양이다. 영화 세계관 속 ‘같은 편이면 가장 든든하지만, 다른 편이면 가장 불안한 인물 1위’인 서창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따금 지저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김운범을 국회의원에 연달아 당선시킨다.


그것도 모자라 주류 정치인들을 모두 밀어내고 신민당의 대선 후보 자리까지 꿰차도록 설계한다. 요즘 말로 ‘어그로’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서창대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상대들을 무력하게 굴복시킨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짜 갈등은 가장 정점에 섰을 때 시작되었다. 치밀하고 속물적인 서창대가 순수한 마음으로, 정의감으로, 독재에 대한 단순한 반발심으로 김운범의 편에 선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알 것이다.


김운범의 대의가 이루어지냐, 마냐의 기로에 선 그 순간 서창대의 검은 욕망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껏 김운범을 위해 일해왔으니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싶은 것도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런 서창대가 불안한 김운범. 이때부터 둘의 위태로운 사이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스틸컷

마찰이 잦아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끝이 난 건 ‘김운범 저택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다. 김운범이 미국 순방길에 올랐던 때, 김운범의 어머니와 조카가 있는 저택에 폭발물이 터진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지만, 범인의 정체가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된다.


여당은 김운범의 자작극을 의심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초산 테러를 당했을  그의 지지율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를 모방했다고 몰아가려고 했던 .) 오히려 김운범 진영은 타고난 어그로꾼인 서창대를 의심한다. 폭발물 테러가 일어났을  서창대가 자리를 비웠다는 점과 테러 직후에도 그것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등이 강한 증거가 되었다.


김운범은 처음엔 자신의 사람인 서창대를 의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김운범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서창대의 폭주에 결국 묻고 만다.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집에 폭발물을 던진 것이 자네냐고.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김운범이 정말 서창대를 의심해서인지, 서창대를 내칠 구실을 만들기 위해 물은 질문인지 헷갈린다.


어찌 되었든 서창대는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러하노라고 대답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서글픈 눈물은 그가 범인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김운범은 서창대에게 자네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등을 돌린다.


그날부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 두 사람, 그리고 그 직후 대한민국에선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지역감정’이 시작된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다.


남과 북으로 나눠진 땅덩어리를 다시 동과 서로 나누는 정치인들. 영남 사람들은 호남 지역에 대한 절대적인 분노를 쏟아내며, 그곳에 정치적 발판을 둔 김운범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호남 지역 인구보다 훨씬 많은 영남 지역의 인구는 김운범에게 넘지 못할 장애물이 된다.


김운범과 김운범의 사람들은 끝까지 맞서 보려 하지만, 인간의 제일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린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운범은 알고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서창대뿐이라는 것을.


마침내 김운범은 3선에 도전한 박 대통령에게 지고 말고, 그가 꿈꾸던 시대는 철저히 붕괴된다. 그리고 역사가 이야기하듯 그는 아주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많은 고초를 겪은 후 1998년이 되어서야 그의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예상대로 지역감정 조장의 배후엔 서창대가 있었다. 숨이 막히리만큼 가쁜 배신감에 사로잡힌 그가 복수를 결심한 것.


원하는 대로 김운범을 무너뜨리고, 막대한 보상을 받았으나 그는 전혀 기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적 걸음마에 도움이 되어줄 박 대통령과의 만남마저 거부하고 유유히 떠나간다.


그에게도 죄책감이라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감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갈등을 조장했다는 죄책감, 존경하던 김운범의 시대를 닫아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에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선거는 끝이 난다.




개인적인 감상을 몇 개 이야기하자면,


출처 : 영화 '킹메이커' 공식 스틸컷

1. 이 영화의 전체적인 콘셉트인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연출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김운범의 위엔 언제나 높고 밝은 빛이 내리쬔다. 그에 비해 서창대가 서 있는 곳은 낮고 어둡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서창대는 짙은 어둠으로 걸어간다.


영화감독이 아주 빛을 영리하게 쓴 것 같다. 대사나 주제보다 눈에 먼저 각인되는 이미지를 통해 두 사람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는 그의 연출기법에 세뇌되어 심리적으로 김운범과 서창대를 빛과 그림자로 인식한다.


2. 서창대는 김운범을 정말 사랑했던 것 같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존경하고 사랑했기에, 그토록 처절하게 배신을 했을지도.


만약 둘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의 역사는 달라졌을까, 쓸모없는 가정을 하게 된다.


3. 영화 속 인물과 실존 인물을 연결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 고(故) 김대중 대통령, 고(故) 김영삼 대통령, 고(故) 전두환 등이 생전 모습과 쏙 닮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4. 경상도 출신 사람으로서 우매하게 그려지는 영남 사람들을 보며, 부끄럽고 씁쓸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격한 반응을 할지도 쉽사리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에 따라 설정 및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만은 사실이다. 그 당시의 투표 결과가 인증했고,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있는 지역감정이 그 증거다.


경상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


그 맹목적인 미움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결국 남는 것은 제삼자의 탐욕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우린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고, 서로를 미워하기 위해 미워했을 뿐이다. 이제 시대가 변했고, 당시보다 훨씬 더 고등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우리는 좀 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5.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는 많이 던져준다.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것은 ‘투표권의 무게’이다. 많은 사람의 투쟁과 피 위에 세워진 이 권리의 깃발을 올바르게 휘둘러야 한다.


힘을 쥐여주기에 국민들은 너무 어리석다는 어느 작자들의 헛소리를 진실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역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현재 우리나라에 필요한 지도자를 뽑기 위해 노력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나는 자유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2022년의 대한민국을 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6. 너무 무거워진 글의 분위기를 상쇄하기 위한 마지막 감상.

출처 : 영화 '불한당'

지천명 아이돌께서는 이번 영화에서도 무척 열일 하셨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누군가에겐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지만, 시간을 투자할 영화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릴 적 교과서로 배웠으나 잊어버린 현대사를 다시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


한 번 지나온 역사를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다시 되짚으며 현재처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폰 13 미니가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