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입사 1년 차, 나에게 남은 휴가는 많지 않았다.
일 년에 15일. 내가 연차로 쉴 수 있는 휴가 일수다. 휴가도 씀씀이와 같아서, 한 번 늘려두면 줄이기가 쉽지 않은데, 입사 1년 차라 최소 휴가만 받은 올해 초 나는 이 연차 일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보란 듯이 이 빡빡한 연차로 잘 놀아보리다. 그중에서 이미 봄에 하동에 가서 차를 파느라 3일을 써 버렸다. 하지만 이 한 줌 남은 연차를 빛나게 해 줄 연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을 모두 끼고 있는 가을 연휴였다. 9월 셋째 주엔 회사 노조 창립일까지 겹쳐 더욱 아름다운 연휴가 완성되어, 7일의 연차를 쓰면 총 주말 포함 19일을 쉴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돌아보게 됐다. 나는 왜 여행을 그토록 좋아했을까. 여행의 자유를 빼앗겨버리고 나서야 여행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나는 20대부터 열정적으로 해외 곳곳을 다녔던 그 모든 시간 중에 일부는 도피였으며, 또 일부는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준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했다. 현실의 고통과 괴로움을 여행을 떠나야만 잊을 수 있다면, 다시 돌아왔을 때 잠깐 기분 전환이 되는 것을 빼고는 그대로인 상황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자주 도망치는 삶을 사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다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오는 소셜미디어에 나의 여행 이야기들을 전시하며 '내가 이만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과시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나는 그 또한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100퍼센라고는 하기 어려웠다. 예쁜 풍경 사진, 맛있고 호화로운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은 여행지가 바뀌면 초반에만 그랬다. 며칠이 지나면 카메라를 들기보다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을 택했다. 다른 곳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거나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일, 그들이 베푸는 호의와 연민, 사람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기 위한 목적이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이 또한 현실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도 연습이 덜 되었는지 현실에선 자꾸만 마음을 반만 열어두곤 하거나 나도 모르게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해 선을 긋는 일을 더 나은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그만두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행지에선 눈만 마주쳐도 마음이 열린다. 머리론 절대 이해되지 않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주고받은 일, 나는 그 경험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왔던 것이다.
19일의 휴가. 나는 다시 한번 그 경험을 하기 위해 발리행 비행기를 끊었다. 여러 번 발리를 갔었지만, 매번 우붓만 갔었기에, 이번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짱구와 길리를 택했다. 고심고심해서 짱구의 숙소를 예약하고 넋 놓고 있다가 대충 길리 숙소를 예약했다. 짱구에 9박, 길리에 8박, 그리고 마지막 하루는 비워뒀다. 후에 마지막 하루는 다시 짱구의 같은 숙소가 되었다.
휴가를 떠나는 날 아침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장기 휴가로 인한 부재를 메꾸다 싼 짐가방엔 집에 널리고 널린 모자 하나 들어있지 않았다. 여권과 카드는 챙겼으니 이젠 에라 모르쇠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찾은 인천공항은 정말이지 쾌적하고도 우수하다. 엄격한 한식 채식으로 주문한 대한항공의 기내식도 훌륭했다. 6시간 반쯤 걸려 발리에 도착했다. 후끈하게 더운 열기로 다른 시공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