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상대음감

by 아마로네


집에 피아노를 들였다. 작년부터 주말에 잠깐씩 다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아무래도 연습이 없으니 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신 터였다. 친정엄마는 내가 어릴 때 쓰던 덩치 큰 피아노를 가져가라셨지만, 애써 비운 집을 갑갑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쿠팡에서 88키 전자피아노를 5만원쯤 주고 주문했다.


도착한 피아노는 작고 가볍지만 생각보다 음역이 넓어 웬만한 곡은 칠 수 있어 보였다. 특히 학생용 책상 구입 후 용도를 잃고 버려질 위기였던 유아용 땅콩책상에 올려놓으니 딱 맞아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아이도 이런저런 버튼을 눌러보고, 악보 없이 칠 수 있는 유일한 곡인 ‘비행기’도 연주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피아노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는 고민하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루루핑송‘을 가볍게 연주하기 시작했더니,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노래를 따라했다. 놀란 표정이 재미있어 내친김에 몇 곡 더 쳐주었다.


“엄마! 이거 아무 것도 안 보고 어떻게 칠 수 있어?”

“엄마는 노래를 들으면 다 칠 수 있어. 너도 피아노를 많이 연습하다보면 그렇게 된다?!“


요즘 읽고 있는 <아무튼, 리코더>에 의하면 이런 걸 상대음감이라고 한단다. 노래를 들으면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알아채서 쉽게 연주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데, 타고나는 부분이 많은 절대음감에 비해 노력으로 얻어지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큰 흥미도 없던 피아노를 하기 싫다고도 말 못하고 10년 가까이 배운 덕에, ’루루핑송‘을 듣고 바로 연주할 수 있는 능력 하나는 건졌다. 지금까지는 별 쓸모 없는 재능이었는데, 오늘 아이의 놀라고 신난 표정을 보면 또 그렇게 소소한 성과는 아닌것도 같다.


어쨌든 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니 아이도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연주하는 모습을 좀 더 보여주기로 했다. 디즈니 ost 악보 중 가장 쉬운 책을 골라 주문했는데, 웬걸 생각보다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아이는 칠 때마다 다가와서 자기도 그 노래 쳐보고 싶단다. 나름 체르니 30까지 배웠다는 남편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피아노 좀 치네?”한다.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연주해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는걸 아이 덕분에 이제 알았다.


아이에게 나는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다. (물론 선생님은 제외) 생각해보면 미술도 피아노도, 내가 지금 아이의 나이이던 시절 학원을 다니며 배웠던 것들이다. 이 아이도 언젠가 “엄마는 피아노를 잘치잖아!”하고 눈을 반짝이는 제 아이를 보며 웃게될까? 괜한 상상을 하다 불호령이 떨어진다.


“엄마 엄마! 이번에는 ‘안녕 여름아’ 할거야. 잘 칠 수 있지?”


무언가 피아노를 구매할 때 생각한 그림이 아닌 것 같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즐거움이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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