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와 줄넘기 수업

by 아마로네


“엄마, 이가 빠졌어“


자려고 누워있던 아이가 어둠속에서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 몇 주간 흔들리던 앞니가 자기 직전에 빠진 것이다. 젖니가 빠지는 것도 벌써 다섯번째라 그런지, 피가 조금 났는데 놀라는 기색도 없이 아이는 알아서 자연스럽게 휴지를 물고 있다. 처음 흔들리는 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던 게 불과 몇 달 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윗니가 빠진 건 처음이라 신기한 듯 연신 거울을 쳐다본다.


사실 오늘의 메인 이벤트는 이미 하나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운영하는 줄넘기 수업에 등록해서, 오늘 첫 수업을 듣고 온 것이다. 놀이터에 갈 때마다 화려한 줄넘기 스킬을 보여주는 언니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이를 보고 호기롭게 남편과 몇 번 줄넘기를 가르쳐봤지만, 줄넘기가 생각보다 복잡한 운동이라는 사실만 깨닫는 시간이었다. 줄넘기란 줄을 돌리는 팔의 스킬과 정확한 타이밍에 점프하는 온몸의 협응력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고급 스포츠였던 것이다. 10여년 전 ‘요즘은 줄넘기 학원도 있다며?‘하고 수근댔는데, 두 번의 시도만에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줄넘기 수업이 워낙 인기인지 지난주에 추첨을 통해 겨우 등록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미 방과후 스케줄이 차있기 때문에 월요일에 줄넘기 주 1회 1시간을 넣으려면 남은 저녁시간이 바빠진다. 줄넘기를 하려면 그만큼 집에 와서 노는 시간은 줄어드는 것이며, 빨리 씻고 밥먹고 하지 않으면 줄넘기는 다닐 수 없다는 점을 아이에게 설명했다.


잠자코 듣던 아이가 갑자기 말한다.


“월요일에 줄넘기 하기 싫어.“

엇, 이게 아닌데..


“월요일 말고 내일하면 안돼? 바로 하고 싶은데.“


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밀당에 정말 능한 어린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만난 아이는 뿌듯함을 온 얼굴에 잔뜩 머금고 있었다. 다녀오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목욕도 하고 밥도 먹고 있는 중이라며, 줄넘기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쉼없이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게 한창 즐거운 나이. 아이를 보면 나도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피가 고인 잇몸에 휴지를 문 채로 아이는 두 손가락을 놀려 오늘 줄넘기 수업의 내용을 설명해준다. 조금 전 누워서 손가락을 놀려보았지만 깜깜해서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었는데 이가 빠져 준 덕분이다. 말 한 마디 없었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조금 후 피는 멈추고, 앞니가 빠져서 ‘진짜’ 어색하다는 아이는 “엄마, 요기 구멍으로 바람 불어봐.“ 하며 깔깔 웃다 잠이 든다.


너의 수 많은 처음 중 오늘 두 가지나 볼 수 있는 날이었다니.

피곤한 월요일 겨우 눈을 뜬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기쁜 날일 줄 기대도 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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