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바라보는 인간관계
설경구, 임시완 주연, 김희원, 전혜진 조연으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매력적인 영화 '불한당'은 범죄조직의 일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 분)와 세상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현수(임시완 분)의 의리와 갈등, 배신 등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뻔한 누아르 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특별한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복잡하게 꼬여버린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순진하고 천진난만하던 현수와 악의 주축만 같았던 재호가 가까워지는 모습은 여느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현수에게 재호는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악의 세계에서 평생을 보냈던 재호에게 현수는 정상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귀여운 동생이었다. 정반대의 매력에 서로 매료되었고 감옥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죄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남모를 아픔을 슬쩍 꺼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우리의 눈에 비친 것보다 더욱 꼬여있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게만 보였던 현수는 사실 재호 일당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붙인 스파이였다. 재호를 만나기 전의 현수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원동력은 어머니. 어머니는 아팠고 수술을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다. 천 팀장이 현수에게 내건 조건은 어머니의 수술비 지원이었다. 상황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재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을 할수록 현수는 큰 죄책감을 느낀다.
그것도 잠시, 재호를 만난 후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현수는 따스한 햇살에 누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수의 단꿈은 병을 회복한 어머니가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와장창 깨져버린다. 모범수가 아니라 어머니 장례에 참여할 방법이 없다는 무책임한 천 팀장의 말에 울부짖는 현수. 그에게 뜻밖의 소식 하나가 들려온다. 감옥을 꽉 쥐고 있던 재호의 입김으로 외출을 허락받은 것. 자신의 전부인 어머니를 위해 힘써준 재호가 너무 고마운 현수는 무능한 천 팀장 대신 재호를 믿어보기로 한다. 결국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는 현수와 그 정도는 별일 아니라는 듯 변함없는 태도를 보여주는 재호다.
경찰을 속이면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는 현수와 의심을 하면서도 그를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재호. 그 사이 천 팀장은 현수가 재호와 손을 잡은 사실을 알게 된다.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가자 그녀는 어머니 사고의 CCTV를 공개하는 초강수를 둔다. 이로써 뺑소니 사건을 교사한 사람이 재호라는 것이 밝혀진다.
재호는 처음부터 현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같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친구 병갑이 경찰의 작전을 먼저 눈치채고 미리 알려준 것이다. 자신의 조직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처리해야 하지만 재호는 망설였다. 그러기엔 아까운 아이라며 일단 자신의 편으로 돌아서도록 구슬려보고 그때도 안 되면 처리하겠다며 현수를 그냥 두었던 것이다.
강한 배신감을 느낀 현수는 재호를 찾아오고, 무엇에 씐 거라는 병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호는 현수를 죽이지 못한다. 결국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차갑게 식어버린 길바닥에서 냉소적인 웃음을 보이는 현수에게 목이 졸린 재호는 죽음을 맞이한다. 재호와 함께 있던 차에 앉아 허망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현수. 이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내가 진짜... 진짜 뭐에 씌었나 보다."
"그래... 처음부터 내가..... 너를... 죽였어야 했어. 그냥... 끝까지.... 모르지 그랬어."
"너는 나 같은 실수하지 마라."
삼류 범죄 영화로 치부될 수 있는 이 영화가 설득력을 얻은 것은 등장인물이 가진 매력과 얽힌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관계 덕분이다. 천진난만하고 순진했던 현수가 타락하는 과정이나 평생을 악의 세계에서 살았던 재호가 정상적인 삶을 꿈꾸는 모습은 영화를 관전하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관계를 부여받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한테 상처 받은 이가 사람으로 그 상처를 치유하는 역설을 보면 인간관계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재호와 현수도 '범죄자'라는 상황의 특수성만 제외하면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다. 결국 재호가 현수를 죽이지 못한 것은 '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죽음을 당할 뻔한 기억이 있기에 사람을 믿지 못하는 재호였지만 현수는 그런 재호를 흔들었다. 재호가 새로운 미래를 꿈꾸도록 그의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린 것이다. 세상 똑똑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약해지고 사리분별에 실패한다. 그래서 인간관계란 어렵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범죄 영화 작품들이 나왔지만 이렇게 두 남자 주인공 간의 케미를 극대화시킨 영화는 불한당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가볍게 보면 남자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 흑심을 품고 보면 농도 짙은 애정으로 보이는 것이 이 영화만이 가지는 매력인 듯하다. 또 자칫하면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퀴어'라는 소재를 과하지 않게 풀어낸 것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 보인다.
영화가 끝나고 드는 생각은 '재호는 왜 현수의 엄마를 죽이게 되었는가?', '마지막 장면이 가지는 의미는?' 정도이다. 정해진 결말이 있다기보다는 그동안 흘린 증거를 토대로 시청자에게 해석을 맡긴 듯 보였다.
재호는 경찰과 현수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배신당한 현수를 자신의 편으로 데려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현수 엄마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재호가 살아온 환경이라면 수단보다는 결과에 치중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전개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심을 품는 재호였기에 현수를 테스트해볼 의향도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재호의 마지막 모습은 충격적이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총으로 죽인 천 팀장과 대비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재호를 생각하는 현수의 마음이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의견을 덧붙이자면 재호에게도 현수에게 직접 죽음을 당하는 것이 잘못에 대한 죄를 뉘우치는 행위였을 것이고 현수의 경우에도 재호를 직접 정리하는 편이 그를 용서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다.
병갑과 재호의 관계도 짧고 굵직한 인상을 남겼다. 병갑은 현수의 비밀을 다 알고 있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다른 첩자는 깔끔하게 처리했던 그가 재호의 말만 믿고 현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친구 재호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자신을 죽이려 찾아온 재호에게도 반격은커녕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인 탓에 더욱 안타까움이 남는다.
천 팀장은 극이 진행되면서 가장 크게 이미지가 변한 인물이다. 카리스마 있고 강단 있는 유능한 걸 크러쉬 경찰처럼 보였던 그녀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때에는 극 속의 현수가 된 것 마냥 큰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필요할 때는 현수를 찾고 쓸모가 없어지면 매몰차게 버리는, 나쁜 놈 중의 가장 나쁜 놈이었다. 사회 비판과 풍조가 드러난 부분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공권력을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것과 범죄자를 미화하는 행위는 누와르 영화가 뚫고 나아가야 할 한계점이 될 것이다.
불한당을 보면서 느낀 점은 작가가 모든 대사에 힘을 실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무심코 지나친 짧고 격한 대사 속에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복선이 깔려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모두 감상한 시청자에게 여운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