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빠 자서전 프로젝트」③ 슬로우 모드로 다시 계획 세우기
주말에 드디어 첫 녹음을 하려고 했다.
시간 한 번만 딱 맞추면, 앞으로는 쭉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오후에 한 두 시간만 같이 이야기해요.
엄마아빠 인생 이야기, 녹음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는
주 1회, 회기 3~5번이면 1개월 안에 완성!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 플랜’을 다 짜놓은 상태였다.
일할 때처럼.
그런데 부모님 입에서 바로 나온 말은 이거였다.
“토요일? 그날은 모임 있는데…”
“그다음날은 교회 가야지.”
“아빠 월요일에는 준비해야 하는 일정이 있으니 아빠한테 다시 연락해봐...”
말은 안 했지만,
순간 조금 마음이 어려웠다.
아니, 이 좋은 걸 왜 빨리 하면 안되나?
이 정도는 맞춰줄 수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근데 곧 깨달았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내 마음의 속도로만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습관이 돼서
무엇이든 ‘일처럼’ 생각한다.
스케줄을 짜고, 마감일을 잡고,
그 안에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에 익숙하다.
그런데 부모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남기는 일은
보고서도, 캠페인도, 성과지표도 아니다.
사람의 시간이고,
관계의 속도다.
부모님에게는
동창 모임도, 교회도, 병원도 등등
다 각각의 ‘삶의 루틴’이다.
거기엔 그분들만의 네트워크와 역할이 있고,
그 리듬이 하루를 버티게 해준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진행 속도가
부모님에겐 “내 일정을 다 비워야 하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슬로우 모드로 하자.”
주 3시간씩 짜서 몰아서 끝내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부모님 두 분이 가장 편한 타이밍에, 조금씩 녹음하면서
몇 주가 걸리든 상관없이
천천히 쌓아가는 방식으로.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을지,
이제는 내가 정하지 않을 거다.
그 대신 이렇게만 부탁하려고 한다.
“엄마아빠, 이번 달 안에
한 번만, 편한 날 잡아서
그날은 우리 이야기만 하는 날로 해요.
나머지 속도는, 두 분이 정해줘요.”
괜히 좋은 일 한다고 마음 조급해져서
부모님을 다그치거나,
내 일정에 맞추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다.
올림사랑은
효율이 아니라,
상대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시행착오는 분명 많을 거다.
날짜가 여러 번 바뀔 수도 있고,
녹음하다가 엉뚱한 이야기로 샐 수도 있고,
바빠서 몇 주를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런 모든 순간이
나중에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때 우리, 자서전 만든다고 했다가
시간 안 맞아서 몇 번이나 미뤘었지.”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벌써 「우리엄빠 자서전 프로젝트」 세 번째 기록이다.
아직 녹음 버튼은 못 눌렀지만,
그래도 나는 이 과정이 좋다.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그 첫 반응을 기억하면서,
조급함 대신 슬로우의 마음으로
한 걸음, 한 회기씩
천천히 앞으로 나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