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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Aug 20. 2023

칸쿤에는 에어컨이 없다

멕시코에서 더위 먹은, 여덟 번째 날

1. 칸쿤의 첫 아침. 어제 멕시코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자정 너머 잠에 들어서, 오늘 오전에는 일정을 만들지 않았다. 그람에도 시차 때문인지 8시에 눈이 떠졌다. 햇빛이 들게 커튼을 열고 자서 그런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2. 준비를 하고 근처 해산물 식당에 가려 출발했다. 그런데 날씨가 정말 미쳤다. 한국 여름 날씨와 비슷한데 그늘이 더 없다고 보면 될거같다. 습도가 높아서 체감 온도는 훨씬 높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 정말 양산 없이는 걸을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가려던 식당이 12시부터 영업이었다. 10분 정도 걸었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3. 너무 더워서 주변 식당에 들어갔는데 에어컨이 없었다! 한국은 모든 식당에 에어컨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아침 10시 경인데 33도였다. 에어컨이 없는 대신 문을 전부 열어둔 사실상 야외 식당이었다. 웨이터가 땀을 엄청 흘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진짜 더웠다.


4. 칸쿤의 물가는 한국보다 비쌌다. 환율을 고려해도 더 비싼 것 같았다. 타코와 브런치를 먹는데 열대 새가 날아들어왔다. 직원이 익숙한 듯 비닐봉투로 새를 조심스럽게 잡아 밖으로 내보냈다.



5. 진짜 너무너무 더웠지만 일단 버스를 타고 Playa Chacmool로 향했다. 예쁜 해변이 있는 곳이다. 하... 시내버스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심지어 다 낡아서 이러다가 부서지는거 아닌가 싶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버스 문을 열어두고 달렸다. 가만히 그늘에 앉아있으니 조금 괜찮아지더라. 내릴 정류장에 맞춰 일어났다. 내려달라고 해야 내려주는건 칸쿤도 똑같다. 이제 버스도 잘 탄다.


6. 칸쿤은 올인크루시브 호텔이 굉장히 많다. 칸쿤에 오면 1박 정도는 올인크루시브에서 머무르라고 하던데, 나는 돈 없는 대학생이라 불가능했다. 우리는 그 중 하나에 있는 카페에 갔다. 그런데 외부인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너무 더워서 다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아, 주변 프렌차이즈 카페를 찾았다.


7. 다시 버스로 두 정거장을 가서 하겐다즈 매장에 갔다. 이쯤에서 우리는 반쯤 더위를 먹은 상태였다. 태양 아래 무방비하게 3시간 정도 노출됐으니 그렇다. 하겐다즈 매장은 유명한 클럽인 <코코방고> 앞에 있었는데 음료가 무려 2만원이었다. 가격 미친건가...



8. 에어컨 아래에 좀 앉아있으니 괜찮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예쁘다는 칸쿤 바다는 봐야지 싶어서 해변가로 갔다. 백사장이라서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다. 선글라스가 필수다. 갈매기가 많았고 물은 미지근했다...!


9. 무료 파라솔까지 가는 길은 발이 푹푹 빠지는 바람에 힘이 두 배로 들었다. 나는 월경 2일차인데다가 먹은게 별로 없어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고, 속도가 현저히 줄기 시작했다. 겨우 파라솔 아래에 앉아 바다를 봤다. 색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진하고 예쁘긴 했다.



10. 그늘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나는 약하게 더위를 먹어서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급하게 샤워실에서 발을 씻고 버스를 타서 호텔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에어컨이 너무너무너무 반가웠다. 그 더위에 조금만 더 서 있었다면 아마 좀 위험했을 것이다.


11. 스타벅스에는 한국처럼 사람들이 노트북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있었다. 우리는 2시간 정도 앉아 더위를 식혔다. 진짜 살 것 같았다. 이게 이렇게 행복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천국 같았다ㅎ...


12. 스타벅스 바로 옆에 월마트가 있었다. 우리는 칸쿤의 살인적인 물가를 실감하고 앞으로 아침저녁은 웬만하면 만들어먹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월마트에 들려 과일과 빵, 요플레 등의 먹을 것들을 샀다. 파스타도 만들어먹을까 하다가 일단 관뒀다.



13. 월마트에서 장 보는건 재밌었다! 한국 음료인 <봉봉>은 있는데 라면이 없는게 좀 웃기긴 했지만 어쨌든 신선한 재료를 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 교환학생 예행연습 같기도 했다.



14.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오랜 샤워를 했다. 몸이 깨끗해지니 사람이 행복해지더라. 개운한 상태로 좀 쉬다가 숙소 바로 옆 레스토랑에 갔는데, 정말... 지금까지 멕시코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피자는 도우까지 맛있었고 파스타와 샐러드도 좋았다.



15. 오늘은 여행 중간에 더위를 먹어서 저녁에 예정된 카누를 내일로 미뤘다. 친구한테도 미안했고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일분일초를 다 알차게 즐기고 싶은데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들린 월마트가 재밌었고, 일찍 돌아온 숙소에서 읽은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취향이었고, 별 기대없이 간 레스토랑이 너무 맛있었다. 역시 망한 하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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