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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Aug 20. 2023

노를 저어 칸쿤의 바다를 유영하다

멕시코의 바다에서 자연과 교감하기, 아홉 번째 날

1. 어제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겨우 9시쯤 눈을 떴다. 그리고 어제 월마트에서 사온 계란과 빵, 스프, 과일들로 간단한 아침을 만들었다. 요리하는건 수월했고 맛있었다! 이 구성을 밖에서 사먹었으면 최소 4만원은 나왔을 것이다.



2. 음식물 쓰레기를 각별하게 신경쓰고 처리했다. 그리고 수영복을 입고 만반의 춘비를 한 다음 출발했다. 거대한 에어프라이기 안에 들어온 듯한 날씨였다. 양산이 없었다면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냈을 것 같다. 체감온도 40도!


3. 어제 가려다가 실패한 유명 해산물 음식점에 갔다. 다행히 이 곳은 에어컨을 틀고 있었다. 그런데 안쪽에 자리가 있었음에도 야외에서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칸쿤의 더위에 익숙해진 것일까? 신기했다. 음식점에서 추천을 받아 메뉴를 시켰는데 둘 다 튀김이라 살짝 느끼했다. 새우튀김의 새우가 굉장히 통통하고 맛있긴 했다. 주변 현지인들이 볶음밥 같이 생긴걸 시키던데, 그게 인기메뉴였나 보다. 조금 아쉬웠다.



4. 이제는 익숙하게 시내버스를 탄다. R-1 버스는 거스름돈을 주지만 R-2 버스는 주지 않는다. 왜지?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역시나 정류장마다 버스가 멈추는게 아니라 사람이 온몸으로 타겠다고 어필해야 멈춘다. 그렇게 어필하면 가끔 길 가다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도 사람을 태우더라.


5. 멕시코의 특징 중 하나는 '무단횡단'이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빨간불에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지만, 조금 관찰해보니 인도 신호등이 차도 신호등과 잘 맞지 않았다. 시스템의 문제인 것 같은데, 그래서 다들 무단횡단을 하나보다. 이제 우리도 그냥 사람들이 건널때 눈치보다가 따라건넌다. 아주 멕시코인 다 됐다!


6. 칸쿤의 햇빛은 아주 뜨거워서 자칫하면 두피가 벗겨질 수 있다. 온 몸을 무장하고 카약을 타러 출발했다. 노를 저으며 칸쿤의 바다를 구경하는 체험이다. 5만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우리가 함께 가는 가이드는 조류와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페인에서 온 커플과 함께 총 5명이 함께 출발했다.


7. 카약은 난생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방향 잡기가 어려웠다. 잠시 연습을 해보는데 나와 친구는 자꾸 왼쪽으로 방향이 틀어져서 웃겼다. 칸쿤의 바다와 맹그로브 숲을 카약을 타고 2~3시간 정도 돌아보는 코스였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점점 익숙해졌다. 카약 정류장을 떠나 숲으로 들어갔다.



8. 곳곳에 맹그로브 숲이 있었다. 맹그로브 나무는 겉으로 보기엔 그냥 나무와 별반 다를 것 없어보이는데, 마치 빙하처럼 위로 보이는 나무가 5m라면 아래의 뿌리는 50m에 달한다고 했다. 그리고 굉장히 촘촘하고 빽뺵해서 산소 배출량이 다른 나무의 4배이며, 수많은 해양 생물과 조류들의 서식지가 되어준다. 없어서는 안될 칸쿤의 중요한 식물이며 비가 오면 홍수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따로 씨를 뿌리지 않고 길다란 앰브리오를 이용해 번식하는데, 파처럼 길쭉한 엠브리오의 아래부분이 두꺼워지면 물 속으로 떨어져 수직으로 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맹그로브 나무가 된다. 설명을 듣고나니 나무 곳곳에 있는 앰브리오가 보였다. 바다에도 수직으로 떨어져 싹을 내고 있는 앰브리오가 많았다. 자연의 법칙이 신비로웠다.



9. 우리는 아기 가오리도 봤고, 새들의 둥지와 그 속의 아기 새, 튀어오르는 물고기들을 봤다. 고요한 정글을 가로질러 노를 젓는 이 순간이 비현실적이었다. 나뭇잎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맹그로브 숲 한 가운데에 들어왔는데, 그냥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10. 계속 노를 저어 칸쿤 바다의 세노떼에 도착했다. 2m 정도 되는 깊이가 갑자기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훅 꺼졌는데, 그게 바로 세노떼다. 절벽처럼 보이는 세노떼에는 태풍에 휩쓸려 가라앉은 배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배의 창문이 보였다. 많은 학자들이 이 곳을 연구하기 위해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무에 주황색 리본으로 표식이 있었나보다.


11. 맹그로브 숲을 가로질러 다시 나오는데 아주 커다란 거미가 우리 배에 올라탔다! 앞에 앉은 친구의 자리에 붙어있었는데 노로 떼어내려 해도 안 도망갔다. 결국 친구가 거미를 주시하고 나는 전속력으로 노를 저어 가이드에게 달려갔다.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노를 저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모터 달린것마냥 질주해서 거미를 떼어냈다. 이 상황이 시트콤같고 너무 웃겨서 우리끼리 한참을 웃었다.



12. 2시간 반의 여정이 끝나고 노을을 봤다.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카약을 타고 멕시코의 바다를 항해했다는 사실 자체가 꿈 같았다.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13. 액티비티를 해서 그런지 기진맥진한 상태로 숙소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침에 엄청 열심히 음식물 청소를 했음에도 개미가 들어와 있었다! 숙소 주인과 전화하고 화생방 수준으로 퇴치약을 뿌리고 나서야 어느정도 박멸할 수 있었다… 씻고 나서 어제 먹었던 레스토랑에 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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