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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Sep 29. 2023

밥을 해 먹는다는 것

미국 기숙사에서 한식 먹기 참 쉽지 않죠.

H마트에서 울다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H마트는 미국에 있는 대형 한인마트 체인점으로, 웬만한 한국 음식은 전부 팔고 있는 이마트같은 곳입니다. 매번 외식할 돈이 없는 한국인 교환학생에게는 더없이 귀중하고 소중한 곳이죠.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에서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이주민 2세 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평생 한국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어머니와 갈등하던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H마트를 혼자 가게 됩니다. 그리고 울어버리죠.


책 이야기를 하는 글은 아니니 이쯤 하고, 아무튼 음식이라는 건 그만큼 사람의 아주 큰 일부가 된다는 말입니다. 미국에서는 '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는데요, 네가 먹는 게 곧 너를 만든다는 소리죠. 정성이 들어간 좋은 음식을 먹는다면 나도 귀중하게 관리받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고, 영양소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먹는다면 엉망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 본가에서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따뜻한 밥만 얻어먹다가, 교환학생을 계기로 삼시세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던져집니다. 음식에 별 집착이 없던 저였기에 부모님께서는 제가 출국하는 날까지 '밥이나 제대로 먹을까' 싶다며 걱정하셨어요.


그러나 막상 미국에 도착해 생활하니, 음식의 중요성을 점점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학교 이벤트에서 자주 나눠주는 피자나 햄버거만 먹다 보니 몸이 무겁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몸소 증명한 것이죠ㅎㅎ...


그래서 저와 제 룸메들은 2주에 한 번은 H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옵니다. 살인적인 샌프란시스코의 물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신중하게 장을 보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고, 시간을 들여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만든 후 그걸 먹는 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죠.


미국에서 한식 먹기, 정말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해내고 있습니다. 점점 나를 돌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요?



양배추참치덮밥 레시피


제가 다니는 학교는 매주 평일에 'Free Grocieres'라는 이벤트를 열어줍니다. 선착순이기 때문에 언제 열릴지 몰라 인스타그램을 자주 확인해줘야 해요. 주변 마트와 농장에서 기부를 받아서 나눠주는 음식들인데, 생각보다 퀄리티가 높고 신선하답니다.


저는 프리 그로셔리에서 받아온 양배추와 참치캔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을 검색합니다. 그리고 '양배추참치덮밥'이라는 메뉴를 발견했어요. H마트에서 사 온 햇반도 있고, 굴소스는 없지만 올리브유와 간장이 있으니 할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잘 챙겨 먹기 위한 저의 첫 번째 메뉴가 탄생합니다.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해요.



준비물: 먹기 좋게 손질한 양배추 한 그릇 정도, 간장 한 큰 술, 올리브유, 국물 뺀 참치캔 한 캔, 밥

1. 올리브유를 프라이팬에 한두 바퀴 두르고 달궈질 때까지 조금 기다립니다.

2. 양배추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씻은 다음 프라이팬에 볶기 시작합니다.

3. 양배추가 적당히 흐물 해질 때쯤, 참치캔의 국물을 다 빼고 참치만 투하합니다.

4. 간장 한 스푼 넣고, 양배추에서 물이 조금 나온다 싶을 때까지 볶아줍니다.

5. 전자레인지에 돌린 햇반을 꺼내 프라이팬에 넣고 볶습니다. (반만 넣어도 되고 다 넣어도 됩니다)

6. 그럼 완성!



제가 만든 음식을 룸메들에게 선보이니, 다들 너무 맛있다고 좋아해 주더라고요. 여기서 사귄 일본인 친구에게도 만들어줬고 저도 음식이 마땅하지 않을 때마다 해 먹는답니다. 건강에도 좋고 칼로리도 낮고 포만감도 들어서 너무 좋았어요. 가끔 참치캔이 없을 때는 미국에서 자주 먹는 화이트 치킨을 넣기도 합니다!


오늘은 뭐 해 먹지?


이제 한 달 되었습니다. 한식이 그리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안 먹던 것들도 미국을 오니 참 먹고 싶더라고요. 그래도 텅 비어있던 냉장고가 점점 채워지고, 서툴렀던 칼질이 익숙해지고, 설거지에 요령이 생기고 있습니다.


건강한 음식으로 건강한 나를 만들어봐요. 다들 밥 잘 챙겨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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