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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Aug 28. 2023

안녕, 난 한국에서 왔어

스물한살 미국살이,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나요?

모두가 튀니까 아무도 안 튀는 곳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초등학교 때까진 '한민족' 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한국인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사실 멕시코에서도 동양인이 우리뿐이라 어딜 가든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을 받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함께 사진 찍자는 부탁도 상당히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우리는 그 어떤 이질감 없이 인파에 섞일 수 있었어요. 샌프란에 도착한 후 일주일 간 본 인종이 제가 평생 동안 마주한 인종보다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인종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참 다양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의 학식당에 가면, 평범한 후드티에 레깅스를 입은 사람부터 엄청난 굽에 찢어진 망사 스타킹을 신은 펑키 스타일, 브라에 투피스만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파티 스타일, 심지어 원피스를 입은 남학생까지 볼 수 있답니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은 모두 같은 스타일만 고수한다"는 말을 했는데, 당시에는 와닿지 않던 말이 조금 다시 들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더 신기한 건, 그렇게 다양한 인종이 한데 모여있는걸 처음 봤음에도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 사이에 섞인 동양인 한국 사람인 나도 자연스러웠고, 한 테이블에 미국, 네덜란드, 일본, 독일, 필리핀 친구들이 모여 저녁을 먹어도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생김새, 피부색, 옷차림이 전부 달라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튀니까 아무도 안 튀는 곳. 그게 제가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내 악센트 이상하지 않아?


대부분의 한국 교육과정을 거친 한국인이 그렇듯, 저는 영어 스피킹보다 라이팅을 잘했고, 라이팅보다 리스닝을 더 잘했습니다. 다시 말해 영어 말하기에는 통 자신이 없었다는 소리입니다. 한국어로 생각한 말을 번역하고, 문법이랑 발음을 신경 써서 내뱉고, 다시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말하는 과정을 반복하니 쉽게 피로해졌죠.


그래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오면서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발음이었습니다. 정확히는 한국어 악센트. 해외에 사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쉬운 단어를 잘 말했는데도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말해보라"며 비웃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김치 냄새난다며 양치 다시 하고 오라고 나무라는 등의 인종차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현지 학생들이 나의 발음을 비웃으면 어떡하지, 어떻게 받아쳐야 하지... 이런저런 시뮬레이션까지 돌려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수많은 인종이 있는 만큼 악센트도 아주 다양했거든요. 네덜란드 친구는 'cash(캐시)'를 'gash(개쉬)'라 발음했고, 프랑스 친구는 r발음이 강했고, 인도 친구는 조금 더 투박했고, 독일 친구는 흥분하면 독일어를 했어요. 그 사이에서 t발음이 강한 한국어 악센트는 그 어떤 놀림거리도 되지 못했죠!


친해진 한 미국인 친구에게 "내 악센트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어보니, "이상한 악센트라는 건 없어"라고 답해줬습니다. 완벽한 발음도, 이상한 발음도 없다는 말이죠. 한국인이니 당연히 한국 악센트가 있는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은 또 그 나라의 악센트가 있겠죠. 부끄러워할 일도, 신경 쓰여서 입을 닫아버릴 일도 아닙니다. 단어가 생각이 안 나면 바디 랭귀지를 하면 되고 정 안되면 파파고를 돌려도 됩니다. 중요한 건 적극적인 자세와 당당한 태도랍니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11명의 친구, 6개의 나라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금문교 공원으로 놀러 갔습니다. 네덜란드인 3명, 일본인 2명, 한국인 3명, 불가리아인 1명, 브라질리언 1명, 멕시코계 미국인 1명, 총 11명의 커다란 그룹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고 가끔 단어가 생각 안 나면 각자의 언어로 일단 내뱉어 보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습니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오래 이야기했고 개인적인 목표나 취미도 나누며 공원을 걸었습니다.


금문교 공원은 금문교와 거리가 좀 있는, 맨 메이드 공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은 직사각형 모양이었죠. 공원보다는 숲에 가까운 커다란 나무들 사이도 거닐고, 향긋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을 쬐며 벤치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큰 관람차 앞에서 단체 사진도 찍었답니다.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분명 문화도 다르고 정서도 다를 텐데, 혹여나 내가 모르고 무례한 말을 한다면 어떡하지, 얘네는 카카오톡도 안 쓸 텐데 인스타그램을 물어봐야 하나... 하는 그런 사소하고 별 것도 아닌 고민이었죠.


하지만 이젠 알겠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비슷하다는 사실을요.


친구 사귀는 건 어디든 똑같습니다.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이름과 출신, 전공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연락처를 물어서 다음 약속을 잡으세요. 언어가 아주 잘 통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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