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입장하기
오랜만에 영화관을 갔다. 평소에는 나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남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제 갑자기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휴대전화로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살인자 리포트’를 보기로 했다.
주말 오후였으나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상영관으로 갔다. 안내 데스크에는 온라인으로 예매한 입장권을 확인받기 위해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그 뒤에 섰다. 안내원이 앞에 선 사람들에게 하는 말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다. 입장권과 함께 신분증도 보여 주세요.”
앞의 남자는 안내원의 말에 조금은 당혹스러웠는지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꼭 신분증을 봐야 압니까? 그냥 얼굴 보면 딱 답이 나오잖아요.”
안내원이 다시 반복했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다. 입장권과 함께 신분증도 보여 주세요.”
이번에는 남자가 뒤로 돌아서서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신분증을 보여 달랍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제빛을 잃지 않는 하얀 깃털 같은 내 머리카락을 봤음에 틀림없었다. 젊은이가 초대한 링 위에 오를 것인가, 아니면 신분증을 꺼내고 나만의 길을 갈 것인가. 짧은 순간 생각이 겹치고 갈등이 일어났다.
결심했다. 남자의 어이없음을 누그러뜨리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겨우 디뎠을 20대 초반 아르바이트생의 입장도 고려한 한마디가 필요했다.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신분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따라 이 어두운 조명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안내원이 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아닙니다. 제가 매뉴얼 대로 하다 보니….”
모든 것을 어두운 조명 탓으로 돌리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줄지어 기다리던 네 사람 모두 웃으며 입장했다.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한 채 외모로만 성인 인증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동안이 추앙받는 시대, 20대 30대가 학생으로 오해받는 억울한 사례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또 그 반대의 사례도 충분히 있다. 명배우 윤경호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30대로 오해받았다고 했다.
안내원이 정확한 판단을 위해 정해진 규칙과 규정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인 남자의 관점에는 융통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뒤집으면 긴장과 불안을 딛고 자기 일을 해내는 젊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풋풋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미숙함을 너그러이 이해받아 마땅한 그 시기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도 한때 지나왔을 그리움 담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