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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지금은 차별을 더 발견해야 할 때

《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창비, 2019


차별은 도대체 왜 발생하는 걸까?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차별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차별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자. 차별을 하는 사람은 왜 차별을 할까? 저자는 소수자 지원 정책에 대해(가령, 여성할당제) 소위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차별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짚는다. 그들 역시 “적어도 평등이라는 원칙을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평등을 옳다고 여기는 사람마저 차별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평등에 동의하는 그 ‘선량한’ 사람들이 어찌하여 차별에 가담하게 되는지, 혹은 그 ‘선량함’이 어떻게 차별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이 책은 세세하게 짚어낸다.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차별을 가능케 하는 구조에 대해 설명한다. 그 구조는 차별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차별을 유지하고, 차별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 구조를 다른 말로 권력관계라고 말해 보자. 차별을 이루는 권력관계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인종, 피부색, 사상,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 수많은 특성들이 개개인의 서로 다른 위치를 결정짓는데, 흔히 교차성이라 불리는, 수많은 특성들이 중첩되는 개개인의 위치가 어디인가에 따라 권력관계는 달라진다.


권력관계에서 백인보다 아래에 위치한 흑인이라도, 흑인 남성보다는 흑인 여성이 더 많은 차별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장애 유무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도 있다. 많은 경우 남성은 여성보다 많은 권력을 갖지만,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멘 남성 난민이 한국 국민인 여성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저자가 책의 초반부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는 웹툰 송곳의 대사를 인용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거듭 위치에 대해 질문한다. 우스꽝스러운 흑인 분장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 어린이·장애인·외국인 사절이라며 특정 집단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 공적 공간인 광장에서 성소수자를 보기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을 보면서 평등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들은 왜 위와 같이 행동할 수 있는가? 그들이 분명히 어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선량함’이 전제하고 있는 것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권력행사나 차별조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웃자고 한 소리에 왜 정색을 하냐고.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왜 공공장소에서 유난을 떨면서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냐고.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이가 공정한 것이지 않냐고.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입장이 자연스럽지 않냐고 되묻는다.


그 ‘자연스러움’ 혹은 ‘보통’과 같은 단어들이 미리 전제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범주에서 벗어난 모든 특성이 ‘비정상적’이고 열등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그들의 당연함은 ‘공정함’이나 ‘공공질서’라는 가치로 포장된다. ‘출발선이 똑같다면 능력과 노력에 따라 대우에 차등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공적 공간에서 다수의 불편과 불쾌감을 일으키는 존재는 금지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청각장애인은 받을 수 없는 토익 600점이라는 점수가 왜 공기업 취업의 기준이 되었는지, 광장에서 열리는 수많은 축제 중 왜 유독 성소수자들의 축제만 ‘유난을 떤다’는 수식어가 붙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배제되어 있다.


이처럼 공정함과 공공질서를 중요시하는 어떤 ‘선량함’은 그 ‘선량함’ 자체가 이미 차별에 기반한 것이라고 지적당할 때에야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선량한 사람’은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던 평등이 누군가의 불평등 위에 서 있었음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소수자의 평등이 자신의 불평등을 가져온다고 생각할 것인지. 어떤 선택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위한 선택일지는 자명해보인다.


지금은 차별을 더 발견해야 할 때

여기서는 저자가 펼쳐 놓은 다양한 차별의 사례와 풍부한 참조점을 다 담아내지 못했음을 적어 둔다. 이 책은 또한 내용의 풍부함뿐 아니라 가독성이라는 미덕을 공히 지니고 있다. 술술 읽히는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동안 어딘가 모호했던 차별의 구조가 구체적으로 언어화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차별을 완전히 파악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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