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km 가는데 차로 12시간, 실화냐?
이게 뭔 일이래. 현장까지 400km 가는데 차로 12시간?? 실화냐???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제3세계에 학교 짓기.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봄직한 진부한 꿈일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 꿈만 품고 살 것이냐! 이제 스리랑카에 직접 학교를 지어보기로 한다. 학교를 세우기로 한 스리랑카 동부 암파라 주 '포투빌'이라는 마을에 처음 가던 날 썰을 푼다. 국제구호단체 코인트리 직원 '꽃보라'와 '꽃목수'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스펙타클 스리랑카에 학교 짓기, 렛츠고!
한국에서 카타르 경유 비행기를 타고 편도 20시간. 아니 목적지가 스리랑카인데 왜 카타르를..? 2022년, 우리가 처음 스리랑카 현장에 갔을 때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원래도 흔치 않은 스리랑카행 비행기는 더욱 찾기 어려웠고, 결국 가장 저렴하고 돌아가는 카타르 경유 비행기를 탔다.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인근 '반다라나이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디스 이즈 스리랑카!!"라는 게 실감 났다. 출발 당시 2월 한국은 영하 10도의 한겨울이었는데, 콜롬보에 도착하자마자 더운 바람이 우리를 훅 덮쳤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고 인천에서부터 미리미리 하나씩 벗고 왔지 후후 본의 아니게 인터내셔널하게 스트립쇼
콜롬보 시내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코인트리 스리랑카 지부를 이끄는 현지 직원 '올리스'를 만났다. 올리스는 코인트리의 꽃부자 한영준 (구 꽃거지 한영준) 대표가 후원했던 빈민 가정의 아이였는데, 대학 졸업 후 고향 마을로 돌아와 자신처럼 배움의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코인트리 '희망꽃학교'를 짓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주 훌륭한 청년이다.
우리의 첫 스리랑카 현장방문이었기 때문에, 올리스는 특별히 봉고차를 빌려 코인트리 학교가 있는 마을 '포투빌'에서 수도 콜롬보까지 우리를 마중 나왔다.
1. AA(아루감베이 아카데미, Arugambay Academy 2018년 설립, 운영~)
2. SA (특수아동 아카데미, Special Academy 2020년 설립, 운영~)
3. UA (우라니 아카데미, Urani Academy 2021년 설립, 운영~)
스리랑카 '희망꽃학교'는 '꽃부자 한영준'과 한국인 청년들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국제구호단체 코인트리가 스리랑카 현지 청년(코인트리 스리랑카 지부 직원)들과 함께 세우고 운영 중인 학교다. 한국인 기부자님들의 후원으로 2024년 기준 매일 140여 명 아이들이 공부하고, 급식을 먹고,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우고, 생계 지원도 받는다. 아주 훌륭한 학교다.
중요한 건 콜롬보에서 우리 학교가 있는 포투빌까지 가려면 스리랑카를 횡단해야 한다는 것. 거리는 400km쯤 된다. 서울에서 부산 정도면... 1일 생활권 아냐? 400km면... 아무리 도로 사정이 안 좋아도 7~8시간이면 도착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패기 넘치는 한국인 마인드
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스리랑카 횡단 400km, 봉고차로 12시간 걸렸다. 올리스가 마중 나와준다고 했을 때,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발 오지 말라고,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우리가 갈게요 라고 했어야 했다.
콜롬보를 빠져나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1차선 도로, 가끔 일방통행급 (상하행선의 위험한 대통합) 외길에 툭툭, 자전거, 승용차, 트럭이 줄지어 달렸다. 그 와중에 스리랑카에는 추월의 신들만 계시는지, 다들 추월을 미친 듯이 해서 뒷자리에 탄 내가 다 긴장되고 오금이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방광아 버텨라 휴게소고 화장실이고 별로 없단다
카타르를 찍고 콜롬보에서 잠시 눈 붙이고 출발하는 길이라 매우 피곤했지만, 잠은커녕 눈조차 자주 깜빡이기 어려웠다. 나중에 스리랑카에 오신 후원자님 한 분은 한국에서 나름 운전 마스터인데, 스리랑카에서는 절대 운전 못 할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정도로 강한 자만 잡는 스리랑카 운전대.
하필 2022년 2월 말, 우리가 갔을 땐 스리랑카에 국가부도, 최악의 경제위기가 터지기 2개월 전이었다. 스리랑카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고속도로가 있긴 한데, 중간에 주유소가 거의 없고, 주유소마다 기름이 동나서 고속도로로 못 간다고 했다. 그래서 400km의 구불구불 국도와 비포장도로와 산길로 가느라 12시간이나 걸렸다.
콜롬보를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산길을 타기 전, 잠시 들른 식당. 우리 학교가 있는 포투빌 마을에서 400km를 밤새 운전해 콜롬보로 오셨다가, 다시 포투빌 마을로 돌아가는 여정이라 기사님이 잠깐 쉬며 차를 드시겠다고 했다. 고생하는 기사님을 위해 맛있는 밥을 사드리고 싶었는데, 밥 먹으면 졸릴 것 같다며 잠시 차만 마시고 떠나자는 기사님... 너무 프로세요... 저희의 목숨줄을 쥐신 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기사님 티타임 완료 + 맛살라 음악(인도 영화 보면 단체로 춤추며 신나게 흔들흔들하는 그런 노래!) 볼륨업 하고 이제 국도 좀 타볼까? 하는데 미친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중부는 산악 지대라서 구불구불하고 오르막내리막 산길이 많은데, 급기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잠시 위 영상 속 흰색 차량을 주목해 주십시오. (그나마 비가 그치고 있는 중) 여러분은 지금 이 가파른 산길에서 우중 추월하고 있는 차를 보고 계십니다. 이거 한문철TV 제보각 아닌가 스리랑카에선 대부분 저 흰색 차처럼 운전한다. 우리가 탄 봉고차도 마찬가지. 저렇게 스펙타클하고 다이나믹한데 카타르 갔다 왔다고 잠이 올 리가 없제ㅋㅋㅋㅋㅋㅋㅋ 피로 따윈 안중에도 없다 지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임
한참을 비 내리는 산길을 달리다 비가 좀 그치고, 제법 큰 마을이 나오자 밥 생각이 났다. 콜롬보에서 출발한 지 6시간쯤 됐을 때다. 내내 도로로 확 튀어나오는 툭툭 + 들개 + 자전거 + 스릴러 영화급 추월 + 퍼붓는 빗속 산길에서 분노의 질주를 경험하는 6시간 동안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배가 하나도...
안 고프진 않고 그 와중에 또 허기는 지더라고요..? 그렇게 들어간 한 작은 식당에서, 스리랑카의 대표 음식 '꼬뚜' 발음조심 를 처음으로 먹었다. 꼬뚜는 로띠(난, 얇게 편 밀가루 반죽)와 각종 야채, 고기를 다져 볶은 음식이다. 한국의 철판김치볶음밥 같다고나 할까? 스리랑카 사람들이 아주 자주 즐겨 먹는 음식이다. 철판에 기름을 휘휘 둘러 볶은 꼬뚜는 진짜 맛있었다. 참고로 우린 스리랑카 음식을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꼬뚜맨' 발음조심 이라 부르기로 했다.
꼬뚜 한 접시씩을 야무지게 비우고 나오니, 이미 해가 져 있었다. 가로등이나 불빛도 많지 않다. 오금 저릿저릿하게 긴장하며 보던 추월 장면, 도로로 툭튀하는 것들마저 깜깜해서 보이지 않았다. 이제 뵈는 게 없기 때문에 기사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계속 길을 갔다.
그렇게 4시간쯤 더 달리고 도착지인 포투빌까지 2시간 정도 남았을 때, 검문소가 보였다. 와... 허리춤에 AK 소총 찬 군인에게 검문 받아본 적 없제...? 군인 아저씨가 신분증도 검사하고, 기사님은 따로 내리라고 해서 뭔가를 확인하고 우리를 보내줬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라 현지인들에게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했던 것 같고, 우리는 여권 한 번 쓱 보고 통과시켜 주셨다.
참고로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 QR코드? QOOV 앱? 이런 게 다 웬 말이냐, 스리랑카는 오리지날이다. 스리랑카 현지인들은 백신 접종 후 조그만 종이에 도장을 받아서 그 '쯩'을 꼭 들고 다녀야 한다. 당시 2차까지 필수로 백신 접종을 해야 했는데, 만약 그 '쯩'을 깜빡하고 두고 나왔는데 검문에 걸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우리 스리랑카 지부의 사무국장 '마파스'는 2차까지 성실하게 백신 접종을 했는데, 하필 저 날 깜빡하고 '쯩'을 집에 두고 왔다. 툭툭 타고 지나가다 검문에 걸렸고, 군인이 백신 접종 증명서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없다고 하니 ㅎㄷㄷ 바로 툭툭에서 내리라고 한 후... 그리고...
얼떨결에 코로나19 백신 주사 맞고 온 마파스. 우리는 이게 뭔 일이래 아니 바로 데려가서 주사를 놔버리네 하며 툭툭 안에서 숨죽이고 마파스가 백신 주사 맞는 모습을 찍었다. 예상치 못하게 저 날 3차 접종까지 한 마파스. 옷도 못 추스르고 황급히 빠져나왔어...
얘기는 다시 포투빌 가는 길 위로 돌아와서 아직 도착 안 함 11시간째 달렸을 때, 우리가 탔던 봉고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다.
와!! 이제 진짜 다 왔나 봐!!!
.....
엥...?
우왘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뭐얔!?!?!?!?!
다 와서 차가 선 게 아니라 도로 위에 소떼가 있어서 차가 선 거였다. 익숙하다는 듯 기사님은 상향등을 끄고 소떼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지나왔다. 소들과 봉고차가 서로 부딪힘 없이 조화롭게 오고 가는 게 제일 신기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길에, 멀리서 희끄무레한 게 보여서 저게 뭐지???? 하다가 쌍라이트를 탁- 켰을 때 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정말 탄성이 나왔다. 예쓰!!!!! 디스 이즈 스리랑카!!!!!!
우여곡절 끝에, 낮 12시에 출발했던 봉고차는 드디어 밤 12시가 조금 넘어서 포투빌 지역, 우리가 한 달 동안 묵을 숙소 앞에 도착했다.
사진 속에 숙소 불을 켜기 전까지는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다 왔다고, 이제 내리라고 했을 때 우린 살짝 당황했었다. 당시 꽃목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12시, 파도 소리와 야생 동물 울음소리? 가 엄청 크게 들리는 미들 오브 노웨어에 온 느낌'이었다. 일단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확 풀어져서, 짐도 못 풀고 비몽사몽 씻고 잤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에 눈뜨자마자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우리를 반겨 준 야생 원숭이. (길가에 멍멍이처럼 뛰어다니는 원숭이들인데 스리랑카 원숭이... 좀 크다)
처음 스리랑카 현장 가던 날,
꼬박 12시간 동안 400km를 달려 도착한 스리랑카 포투빌!
(그 후 매년 한 달씩 스리랑카 현장에서 살게 될 줄은 이때엔 몰랐다.)
국제구호단체 코인트리 직원 '꽃보라'와 '꽃목수'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스펙타클 스리랑카 현장 일기는
이제 시작.
투비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