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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라 꽃목수 Oct 31. 2024

Ep.02 | 드림 게하에서 코코넛 한 뚝배기 하실래예

콜롬보에서 12시간 만에 도착한 숙소, '드림 게스트하우스'

인천에서 출발한 지 32시간 만에,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꼬박 12시간을 달려 도착한 스리랑카 포투빌. 새벽 1시 무렵 숙소인 ‘드림 게스트하우스(a.k.a 드림 게하)’에 다다랐을 땐 살짝 당황했었다. 당시 꽃목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밤중, 파도 소리와 야생 동물 울음소리만 엄청 크게 들리는 미들 오브 노웨어'에 온 느낌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12시간 추월 드리프트의 긴장이 확 풀리면서 짐도 못 풀고 비몽사몽 씻고 잤던 기억이 난다. 



드림 게하 문 열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풍경. 기가 막히쥬?

아침에 게하 밖으로 나가자 탄성이 나왔다. 간밤엔 깜깜해서 하나도 안 보이던, 모래밭에 우뚝 서 있는 야자수와 에메랄드빛 인도양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누가 봐도 스리랑카 분위기에 로컬 느낌 물씬 나고 너무 아름답쟈나! 그때 숙소 뒤편에서 아저씨 한 분이 마체떼를 들고 오셨다. 

바로 나무에서 코코넛을 따 웰컴 드링크를 말아주시는... 사랑합니다
웰컴, 웰컴


드림 게하를 운영하는 ‘싸지’의 새아버지였다. '싸지'는 코인트리 꽃부자 한영준 대표님의 스리랑카 여동생으로, 쓰나미와 내전 직후 스리랑카에 갔던 우리 대표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싸지는 할머니, 여동생 ‘마두’와 셋이 살고 있었고, (지금 마두는 결혼해서 인도에 살고 싸지는 할머니와 단둘이 지낸다) 싸지 할머니가 집 부엌 한편에서 간이매점처럼 콩, 설탕 등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좌) 코인트리 꽃부자 한영준 대표님과 싸지(흰T) & 마두(노란T) 자매. (2015?) / (우) 코인트리 꽃보라 & 꽃목수와 싸지 (2024)

꽃부자 대표님은 싸지와 마두가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폐가를 직접 수리해 ‘드림 게스트하우스’를 지어줬다. 코인트리의 재상, 댄서욱 꽃주주(후원자)님도 스리랑카로 날아와 게하 짓기에 힘을 보탰다. 이후 싸지는 게하를 에어비앤비에 등록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운영해 조금씩 생활비를 벌고 있다. 이 멋진 게하는 우리가 매년 한 달 이상씩 스리랑카에 출장 갈 때 머무는 숙소이기도 하다. 코인트리 직원과 후원자 한정 싸지의 특별 할인가는 1박에 약 13,000원.(2022~2023년 기준)  

싸지&마두 자매를 위해 꽃부자 한영준 대표님이 직접 지은 드림 게하
침대, 에어컨, 냉장고, (일하고 회의할 때 요긴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게하를 지을 때 힘을 보탠 꽃주주(후원자)님들의 이름까지. 필요한 건 다 있는 드림 게하!
드림 게하 바로 앞 나무에서 바로 따서 마시는 코코넛 맛은 KEUKROCK. (마시는 사진 없어서 그려 넣음)

흔히 동남아시아 지역에 여행 가면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파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빨대가 뭐죠?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건 요식행위다. 그냥 뚜껑 날린(?) 코코넛을 바로 입으로 가져가 마시는 거야! 코코넛 워터가 목이며 옷에 줄줄 타고 흘러내려야 제맛이다. 

 


드림 게하에 코인트리 꽃주주(후원자)님들과 같이 방문한 날.

드림 게하는 포투빌 아루감베이 지역에서 현지 주민들이 사는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다. 외국인 서핑객이 많은 아루감베이 메인 거리에서 도보로 약 15~20분 정도 떨어져 있어 덜 소란스럽고 평화롭지만, 매일 다이나믹한 일이 일어난다.

드림 게하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 원숭이. 싸우면 100% 내가 질 것 같다.

아침에 창문 밖으로 우당탕탕 소리가 난다? 숙소 주변 나무 울타리를 원숭이 예닐곱 마리가 와서 냅다 부수고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다. 원숭이 떼가 오면 늘어져 있던 들개들이 달려와서 하울링을 하며 마구 짖어댄다. 참된 견원지간 개들이 짖기 시작하면 동네 할머님들이 삼삼오오 집에서 나와 작대기를 휘휘 저으며 원숭이들을 쫓아낸다. (이곳 원숭이는 지붕과 울타리를 부수고 다니는 골칫덩어리다.)

드림 게하의 룸메들. (좌) 마당에 있는 애교쟁이 개 / (우) 거의 게하 호스트인 젤리 도마뱀

퇴근하고 숙소에 들어가면 반겨주는 룸메들도 있다. 화장실 벽과 나무판자로 얹은 지붕 사이 뜬 공간으로 작은 젤리 도마뱀이 수도 없이 들락날락하는데, 이 도마뱀들은 볼일을 보든 샤워를 하든 그저 화장실 벽에 가만히 붙어 있다. 야 임뫄, 쳐다보는 거 아니지? 물론 숙소 안쪽 벽에도 항상 붙어 있다. 뾱뾱 소리를 내며 세상 귀엽기만 할 뿐, 숙소로 들어오는 모기나 바퀴벌레를 잡아먹지도 않는 태만한 녀석들이다.

드림 게하의 (좌) 부엌 / (우) 화장실. 씻고 마시고 먹는 모든 일에 가장 필요한 물.

드림 게하뿐만 아니라 현지 숙소에서 가장 적응이 필요한 건 ‘물’이다. 수도꼭지를 틀면 당연히 물이 나오거나, 추울 땐 온수와 더울 땐 냉수가 나올 거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현지 숙소 대부분이 물탱크에 채워진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전기 버튼을 안 켠 채 씻기 시작하면 물이 곧 끊긴다. 발전기 버튼은 야외에 있어서 미리 켜놓지 않으면 샤워하다 말고 갑자기 물이 안 나와요 비누칠을 한 채 허겁지겁 나와 전원 버튼을 켜야 한다. 물탱크에 받아놓은 물로 씻을 때 가장 큰 단점은 한낮에는 물이 엄청 뜨겁고, 밤에는 물이 차가워진다는 것. 가장 더울 땐 뜨거운 물이 나오고, 약간 쌀쌀한 늦은 밤이나 새벽, 따뜻한 물로 씻고 싶을 땐 얄짤없이 냉수 샤워를 해야 한다. 

(좌) 야자수 오른편으로 보이는 구덩이가 쓰레기통. 쓰레기는 모아뒀다가 1~2주마다 태운다. / (우) 쓰레기를 버리면 바로 웨이팅하는 까마귀들

쓰레기를 쓰레기봉투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다. 포투빌에선 집집마다 쓰레기를 1~2주에 한 번씩 태우는데, 드림 게하에도 쓰레기를 넣고 태울 수 있도록 오목하게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가 있다. 특히 바나나 껍질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숙소에 두면 바로 개미천국, 바선생 웰컴이 되므로 구덩이에 바로바로 버리는데, 그럼 순식간에 웨이팅이 생긴다. 까마귀 떼, 원숭이, 들개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서로 눈치를 보며 낚아챌 준비를 하는 거다. 


살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 -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냉∙온수가 바로 나오고, 전기가 24시간 내내 들어오고, 쓰레기가 생기면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일 - 들이 당연하지 않은 곳이지만, 


우리는
‘드림 게스트하우스’를 사랑한다. 

드림 게하에서만 겪을 수 있는 순간을 사랑한다. 앞바다에서 직접 잡은 참치를 바로 토막 내어 구워 먹으라며 주시는 아저씨의 인심을, 맛있는 계피죽이나 튀긴 라면땅을 종종 가져다주시는 동네 할머님의 친절함을 사랑한다. 음식을 줄 땐 벌레가 들어가지 않게 접시 위 큼직한 야자수 잎을 덮어주는 이웃 주민들의 배려도 사랑스럽다. 

게하 주변엔 큰 건물이나 불빛이 없어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파도 소리만 들리는데, 하늘을 올려다 보면 정말 수백, 수천만 개의 별들이 빛나고 있다. 우리는 원숭이, 들개, 새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드림 게스트하우스의 아침과 쏟아져 버릴 것 같은 별들이 수놓은 드림 게스트하우스의 밤을 사랑한다. 스리랑카 소녀 '싸지'가 꿈꾸고 행복하길 바라며 한국인 청년들이 땀 흘려 지었던 드림 게스트하우스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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