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프로젝트 3 - 마흔 수영 도전기 (2)
“여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수영 강습 3일 차, 누워서 발차기를 하는데 코와 입으로 자꾸 물어 들어왔다. 초. 중급 레인 옆은 고급반 수강생들이 오리발을 끼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큰 물고기처럼 우리를 스쳐갔다. 문제는 그들이 지나간 후 몰려오는 물결이 일엽편주처럼 잔잔히 떠가는 우리를 사정없이 밀친다는 것이다. 그 물살에 떠밀려 한 레인 안에서도 우측통행이 원칙 이건만 수영장 바닥에 그려진 파란색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허우적대며 오고 있는 다른 강습생과 부딪힐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이번에는 누워서 발차기를 하니 바닥의 중앙선도 안 보이고 오로지 수영장 천장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발을 휘젓는다. 그렇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가다가 반대편에서 자유형으로 오고 있는 분과 부딪히는 사고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누웠는데 이번엔 고급반이 일으키는 물살이 코와 입을 사정없이 덮친다. 물 먹는 기분.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아침을 거르고 빈속으로 수영을 하다가 희미한 락스 냄새가 나는 수영장 물을 먹고 나면 속이 울렁거린다. ‘또 물 먹고 싶지 않아. 빨리 도착하자.’라는 필사적인 의지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발차기를 하지만 수영장 끝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얼굴에 물세례를 당하고 물을 먹게 된다. 가까스로 수영장 벽을 잡고 쉬다가 뒤를 돌아보니 나처럼 이번에 처음 수영을 등록한 초짜 수강생이 레인의 반대편 끝에서 물 밖으로 솟구치더니 물을 토해내고 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야말로 토사곽란이 따로 없다. 역시 나만 이런 건 아니군... 코는 따끔거리고 속은 메스꺼운 그 상태를 수영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거라고. 저 고급반 인어들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잠시 후, 나는 다른 수강생의 동작을 봐주느라 바쁜 강사에게 다짜고짜 말을 붙였다.
“코랑 입으로 자꾸 물이 들어가요.”
평소라면 소심하게 쭈뼛거리다가 겨우 기회가 왔을 때 공손하게 물었을 테지만 자꾸 물을 먹다 보니 약이 올라서 이판사판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망설임 없이 힘을 주어 물었다. 여자 강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누워서 수영할 때도 일명 ‘음파’ 호흡을 물속에 있을 때와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띵하며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랬군 그랬어. 그럼 진작에 좀 알려주지’ 하는 약간의 원망 섞인 눈빛을 알아챈 건지 강사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여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항상 코로 ‘음’ 내쉬고, ‘파’하고 들이쉬고.”
그렇다. 여기는 다른 세상. 물속 세상. 나는 물고기처럼 호흡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강사의 ‘다른 세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설렘. 벽장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아이들이나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가는 엘리스처럼. 거대한 모험 속에 들어온 인물이 된 것 같았다. ‘그래, 다른 세상에 왔으면 이 세상을 멋지게 탐험해 보자 ‘라며 다시 힘차게 출발했지만, 결과는 또 코와 입으로 듬뿍 물을 먹고 말았다.
강습 5일 차쯤 되니 강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킥 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데 중간에 멈춰 서지 말고 레인 끝까지 가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이 동작의 핵심은 숨쉬기. 숨을 참고 발차기를 하다가 숨이 다 하면 고개를 내밀고 숨을 들이마셔야 하는데, 숨을 마시려고 고개를 내미는 순간 몸이 가라앉고 입속으로 어마 무시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마치 컵을 기울여 수영장 물을 떠 담는 것처럼. 오늘도 나의 첫 끼니는 수영장 물이다. 그렇게 수영장 물을 꿀꺽꿀꺽 먹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즈음. 강사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자세를 봐준다. (단체 강습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동작을 봐주는 시간이 길지 않다.) 킥판을 잡고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발차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숨을 마시려고 머리를 드는 순간 강사가 내 머리를 누른다. 내가 고개를 너무 높이 든다는 거다. 수면 위로 입이 살짝 올라와 숨만 들이쉬고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머리 전체가 수면 위로 나오고 있었다.
“몸이 물 밖으로 많이 나오는 만큼, 몸이 더 가라앉아요. 천천히, 조금만 올라오세요”
또 한 번,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사실 나는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다. 첫 강습에서 의외로 큰 거부감 없이 물속 세계를 관찰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머리를 물에 넣는 순간부터 내가 긴장한다는 것 그리고 숨이 다 할 때가 되면 질식에 대한 공포로 물 밖으로 서둘러 머리를 내밀려고 허둥대다 물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 밖으로 나오려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물속으로 가라앉게 된다는 역설적인 현실. 결국 나의 두려움을 잘 다루어 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 강사는 걸어서 레인을 한 바퀴 돌라고 했다. 호흡이 가장 큰 문제였으니 걸으면서 연습을 했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 자세로 걸으며 입과 코를 물에 담그고 ‘음‘하고 내쉬고, 다리를 펴서 물 밖으로 나와서 ’ 파’하고 들이쉬었다. 물 밖으로 나오는 높이는 입만 살짝 수면 위로 뜨는 정도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썼다. 그러자 눈높이가 수면에 가까워졌다. 여기서 몇 센티미터만 내려가면 다른 세상이다. 물속 세상. 공기가 있는 세상과 물속 세상의 경계선을 지켜보며 걷는 기분이 묘했다. 이 경계선을 오가며 나는 사람이 되었다 인어가 되었다 한다. 아니 인어는커녕 아직은 잔챙이라고도 할 수 없는, 물살에 떠밀려 이리저리 부유하는 물풀 수준이지만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경계선을 발견한 건 모험의 문을 찾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동적이다. 물론 이런 감격스러운 마음과는 별개로 다음 강습에서도 나는 꾸준히 물을 먹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