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수영 도전기(3)
수영장 락커를 빼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지난달부터 수영을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요구였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수영은 내 일상에 큰 도전이었다. 예상외의 재미도 찾고 체력이 좋아지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수영 예찬론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왜 이제야 수영을 배웠을까? 후회될 정도로 즐거웠지만. 결론은 부실한 몸이 문제였다.
“어깨가 아파서 수영을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1월에 수영 재등록을 포기하고 담당자에게 미리 낸 강습비를 환불받으며 사정을 알렸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1차 고비는 평영. 초급반은 수영장의 가장 오른쪽 벽에 붙은 레인인이었다. 자유형과 배영은 상관없었는데 평영 발차기를 시작하면서 물속 격투가 시작됐다. 평영은 일명 개구리헤엄. 무릎을 당겨서 구부렸다가 사선으로 밀어주듯이 차주어야 한다. 그만큼 넓은 폭이 필요했다. 수영장에도 교통 법규가 있는데 무조건 우측통행이다. 한 레인 안에서 오른쪽은 반대편으로 가는 사람, 왼쪽은 반대편에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다. 이게 자유형, 배영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다리를 벌리고 차는 평영을 하면서 한 레인 안에서 양방 통행을 하는 것은 치열한 눈치 싸움이 되었다.
일단 수영장 벽을 오른쪽에 두고 반대편으로 헤엄쳐 갈 때는 오른쪽 발이 수영장 벽을 차게 된다. 그러자 왼쪽 허리에 찌릿하는 통증이 전해졌다. 번개처럼 스쳐 가는 통증에 깜짝 놀라서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출발했다.(저는 허리가 아픈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나와는 반대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분의 평영 발차기에 허벅지를 채이고 말았다. 다시 찌릿하는 통증. 아마 그분도 놀랐을 거다. 조용한 물속에서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격투 상황에 다들 당황하는 눈치였다. 두 번째 바퀴를 돌 때는 이쪽에서 한 사람이 출발하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렸다. 먼저 출발한 사람이 거의 도착할 무렵이면 마치 마중을 나가듯 앞으로 걸어 나가 그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는 걸 확인한 후에 출발했다.
허리 통증을 줄여보고자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오히려 수영을 하는 게 허리 통증을 더 악화시키는 건 아닐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도 이제 막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수영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대신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고, 잘못된 동작으로 허리에 힘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썼다. ‘내 몸은 통나무다. 팔과 다리만 움직이면 된다.’ 수영 강사의 말을 속으로 되뇌며 최면을 걸듯 연습했더니 오히려 동작은 더 정확해지고 통증도 없어졌다. 야호! 수영을 계속할 수 있다!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했다.
이밖에도 자잘한 통증이 나를 괴롭혔지만 수영을 배우려는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수영을 처음 시작할 때 배우는 발차기를 하면서 왼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무시했다. 이건 수영 때문이 아니라고. 다음은 한창 평영 발차기 연습을 하는 시기였는데 오른쪽 등에 담이 온 듯 결리기 시작했다. 재채기나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할 때면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다. 몇 번 겪고 나니 기침이 나오려 할 때마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한 번은 무심결에 그냥 기침을 했다가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너무 아파도 욕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일시적인 통증인 줄 알았지만 결리는 증상은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평영이 조금 익숙해지는가 싶으니 강사는 다음 진도로 고고~ 접영을 시작했다. 접영의 기본 동작은 차렷 자세로 물속에 엎드려 허리를 구부렸다 펴는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 허리를 구부릴 때마다 통증이 이어졌다. 처음 한 번 해보고 ‘이건 안 되겠구나.’ 바로 판단이 섰다. 강사에게 접영은 못 하겠다고 알렸는데 강사는 나만큼 아쉬워했다. 다른 회원들이 접영 동작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 자유형, 배영, 평영 동작을 연습했다. 혼자 미운 오리 새끼가 된 듯 조금 외로웠지만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렸다간 접영이 문제가 아니라 주사 치료를 다시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접영의 쓰나미가 마음을 강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어깨에 문제가 생겼다. 등이 결리는 시기와 비슷하게 오른쪽 어깨 통증도 함께 시작됐지만 심하지 않았기에 그냥 넘겼다. 그 후, 한 달이 지날 때쯤 양쪽 어깨가 다 아파왔다. 그래도 참았다. 그만큼 수영이 너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후 양쪽 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지 못하는 지경이 돼서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제 그만하자.’
“1월 락커비를 안 내셨더라고요.”
보증금 만원에서 한 달 락커 사용료 3천 원을 제하고 7천 원을 돌려받았다. 1월은 강습도 받지 않았건만...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어쩌면 금방 수영을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락커를 빼지 못했다. 수영을 그만두고 한 달이 지나자 병원에 가지 않았음에도 어깨는 많이 회복되었다. 2월이 돼서야 한동안은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렵겠다는 확신이 섰다. 락커에 들어있던 물건을 챙기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돼지라고 쉽게 말하기엔 내 몸과 체력에 자신이 없다. 다시 시작하게 되면 그때는 아프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을까?
고작 삼 개월. 내가 수영인으로 살았던 시간. 백일천하로 모든 것을 잃은 장수처럼 허탈해졌다. 짐을 다 챙기고 커다란 유리창 아래로 수영장을 내려다봤다. 조명을 받은 수영장의 물결은 바닥에 빛의 그물을 만들어내며 일렁이고 있었다.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가 한편으론 물이 살아 움직이는 동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경이로운 동물과 함께 했던 3개월이 꿈만 같다. 당장이라도 그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꿈틀댔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깝고 가엾기까지 했다. 주 3회 수영이 무리였던 걸까? 주 2회 정도면 괜찮았을까? 다음에 다시 수영장에 가게 되면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야지. 몸보다 마음이 앞서면 여기저기 아파진다. 요통이 있는 마흔의 몸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