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입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직원이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벌어 퇴사했다는 것이었다. 몇억이라고도 하고, 몇십억이라고도 했다. 근거 없는 말들이 무책임하게 흘러 다니는 와중에 또 다른 직원이 퇴사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역시 비트코인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회사 점심시간에는 당연히 비트코인으로 소위 대박을 친 직원들의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어떤 비트코인이 유망하다더라, 그 직원은 어떤 비트코인을 얼마나 샀다더라, 몇 프로의 수익을 얻었다더라 하는 대화는 자연스레 주식, 부동산 등의 재테크 관련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량주와 잡주에 대한 주관적인 품평, 수수료가 저렴한 주식 어플,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동산 카페 등등. 재테크의 세계는 과연 무궁무진한 것이었다. 지긋지긋한 월급쟁이의 신세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비록 매우 좁으나 분명 있음직했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그 길을 향해 내달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대화에 감히 낄 수가 없었다. 비트코인은커녕 월급쟁이들은 다 한다는 주식 한번 해본 적이 없었고, 그 흔한 로또 한 장 사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재산을 늘리거나 수익을 얻거나 하는 일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식 그래프의 빨강과 파랑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나는 철저한 재테크 무지렁이였다.
창조경제가 별건가
내가 아는 재테크란 참으로 귀여운 수준이었다. 월급의 50프로를 적금 통장에 붓기, 택시비나 은행 수수료 등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소비를 최대한 자제하기, 외식이나 배달음식 주문 대신 마트나 시장에서 싱싱한 재료들을 저렴히 구입해 건강도 챙기고 생활비도 절약하기.
아끼고 절약하여 돈을 모은다는, 지나치게 고전적이면서도 구닥다리 재테크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데 실상은 이렇다.
아껴 쓴다. 의식적으로 물건을 잘 사지 않으려 하고, 한 번 구입한 것들은 오래 쓴다. 특히 의류 잡화의 경우 최대한 질이 좋고 기본적인 아이템을 고른다. 이런 아이템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촌스럽지 않고 쉽게 망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겨울쯤 발품을 팔아 찾은 홍대 구제 가게에서 캐시미어 함량이 높은 검은색 롱코트를 오만 원에 샀다. 지난 5번의 겨울 동안 이 코트를 꺼내 입을 때마다 겨울이 또다시 왔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입을 때마다 나를 만족시키는 옷이다. 무난한 디자인과 부들부들한 촉감의 검정 코트는 올해 겨울에도 내 쓸데없는 소비욕을 잠재워줄 것이다.
나눠 쓴다. 아무리 필요에 따라 물건을 산다고 하더라도, 왕왕 필요치 않은 물건들이 집에 쌓인다.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올 때 장사꾼처럼 물건을 펼쳐놓고 흥정을 붙인다(돈은 받지 않는다. 이때의 흥정이란 소유권에 대한 것이다).
강아지 사료나 옷, 장난감들도 유기견 보호소에 나눈다. 우리 집 개딸은 인간만큼 입맛이 까다로워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사료는 뱉어버리고 먹질 않는다. 주변 지인들이 집들이 때 하나둘씩 선물해준 장난감도 딱딱하거나 소리가 요란한 것은 질색팔색을 한다. 전생에 사바나 초원을 거니는 야생동물이었는지 옷 입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전라 상태인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나는 욕쟁이 할머니처럼 구시렁거리며 개딸이 내다 버린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유기견 보호소에 보냈다. 그래도 내가 보낸 물건들로 인해 몇몇 애처로운 강아지들의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겠지, 생각하면서.
바꿔 쓴다. 나는 당근마켓을 사랑한다. 한때 야심 차게 집구석 바리스타를 꿈꾸며 당근마켓에서 호기롭게 커피 드립 머신을 구입했다. 2~3번 정도 사용한 거의 새 제품을 거의 반값에 준다니 횡재로다 하고 얼른 거래를 했다. 그러나 숨 쉬는 것 빼고 다 귀찮은 극도의 귀차니스트에게 홈카페란 허황된 꿈이었다. 다시 당근마켓에 커피 드립 머신을 되팔았고, 되판 돈으로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샀다.
이외에도 설치가 어려워 팬트리에 처박아둔 음식물쓰레기 분쇄기, 사용이 서툴러 잘 쓰지 않던 맥북 등을 당근마켓에 내다 팔았고, 판 돈으로 다시 생필품과 식재료 등을 구입했다. 쓸모를 잃고 나뒹구는 물건들을 보면 어쩐지 죄스럽던 나에게 당근마켓은 완벽한 구세주가 되어 주었다. 훌륭한 물물교환의 장터, 당근마켓을 나는 정말로 사랑한다.
다시 쓴다. 나는 주워 입기의 달인이다. 남편과 남동생 옷을 잘도 주워 입는다. 키가 큰 그들의 옷, 특히 점퍼나 후드 집업, 셔츠는 나의 훌륭한 운동복이 된다. 길이도 품도 낙낙하니 잠깐 외출을 하거나 산책할 때 입기 그저 그만이다. 내 체형에 맞는 트레이닝 바지 하나만 마련해 두고, 상의는 남편과 동생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을 돌려 입는다. 따로 외출복을 사지 않는다.
아나바다 운동을 체화한 생활이다. 사실 이쯤 되면 창조경제가 별건가 싶다. 나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사고 버린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났고, 물건들은 다시 각자의 필요를 찾아 적절히 쓰일 것이니.
나는 나의 '작은 그릇'이 좋다
결국 내 재테크 실력을 평가하자면 대략 이런 느낌이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문구가 수놓아진 낡은 초록색 모자를 쓰고 최신 스마트폰을 능수능란히 다루는 스마트한 젊은이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기분이랄까. 영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
더 많은 물건과 부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수익성이 좋은 주식이나 펀드를 찾아낼 수 있는 직감이 없고, 고수익을 내기 위한 선결조건 즉 과감한 투자를 할 배포가 없다.
하지만 나는 나아지고 싶지 않다. 낡고 초라하지만 소박한 가치들을 품고 살고 싶다. 내 모든 신경과 집중이 돈에 매몰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다. 분수에 맞게, 작고 소심한 그릇에 맞춰 소소하게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으나 아쉽지는 않다.
남편과 내가 남김없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딱 2인분의 음식을 만들고, 즐거운 식사를 끝낸 후 빈 그릇을 치울 때의 그 기분이 좋다. 종종 배달음식을 시키고 남은 플라스틱 용기를 깨끗이 씻어 남은 식자재를 냉장고에 가지런히 보관할 때의 그 기분이 좋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생활비와 용돈, 각종 공과금을 나누고 적금 통장에 일부 금액을 넣을 때의 기분이 좋다. 이번 달도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 적지만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느낌은 소소하지만 확실하고도 충만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밥그릇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데, 단언컨대 내 밥그릇은 간장 종지 정도일 것이다. 나의 경제생활은 그저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어떻게 잘 사용할까를 고민하는 것에서 그칠 뿐, 더 더 많은 것들을 얻고 누리기 위해 고민하거나 행동하는 그다음의 단계로 넘어가질 못하니 말이다.
그러나 한 달 한 달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직하게 벌어서 1인분의 몫만은 반드시 해내는 것. 그리고 나의 밥벌이에 대한 책임을 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는 것. 이 사소하고도 단단한 결심으로 여전히 구닥다리인 채의 삶을 느릿느릿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