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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진 Feb 07. 2022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여자는, 거대한 몸을 이끌고 프라하 거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절름발이인 채로. 작가는 나치 독일 정권하에서 삶을 빼앗겼던 수많은 개인들의 울분과 좌절, 통한을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가시화한다.


그녀는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는 옷가지의 주름 주름마다 역사라는 미명 하에 이유 없이 죽어가야 했던 이름 없는 아무개들의 삶을 깊숙이 넣어둔다. 그리고 쩔뚝쩔뚝 거리며 힘겹게 프라하 거리를 떠돈다.


'진흙 속에 패대기 쳐진 개털'처럼 악취 나는 인간의 악함은 시대가 변하고 삶이 여러 번 끝남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


전쟁은 밀도 높은 파괴성을 띤다. 전쟁으로 망가진 사람들의 고통은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대물림 되고, 상처와 피폐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게 잘 감추어두었을 뿐.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던 프라하를 떠올려본다. 내가 철저히 관광객의 시선으로 즐겁게 거닐었던  프라하 거리를,  누군가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울면서 걸어 다녔을 것이다.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녀는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들을 들쳐보았고 심지어 어떤 날은 낱말들을 기다리고 있는 백지상태의 페이지들을 소리 나지 않게 스르륵 넘겨보기까지 했다. 그녀의 발자국마다 잉크맛이 솟아났다.(13p)


세기에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그토록 많은 사라진 몸들, 난파한 남자 여자들, 맨발로 환장하여 눈이 뒤집힌 아이들을   누더기의 주름주름마다 품고 있어야 하는데, 과거의  끝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무거운 역사의 몸을 떠메고 가야하는데  거인여자가 어찌 다리를 쩔뚝거리지 않을  있겠는가. (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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