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기억해내야만 할 이름들이 있었다.
뒷면
세상에 놓인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는데 그다지 위로가 되거나 하진 않았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말을 접목시키기에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었을까. 길가에 죽죽 늘어선 가로수의 역할마저도, 검푸른 아스팔트 위에 줄지어진 차량을 헤아리면 다만 시원찮게만 보일 뿐. 저 세상에 놓인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는데_
얼마만치 곱씹어도 딱히
위로가 되거나 하진 않았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말이지, 단물보다는 씁쓸한 눈물을 빼닮은 맛이 뚝뚝 흘러서 인상만 찌푸려지더라고. 세상이란 게 제아무리 달라진대도 결코 달라지지 않을 말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모르게 의존하게 되는 말이 흔하면 흔할수록, ‘결코 달라지지 않을 말’에 적합할 것이리라 생각해 왔는데_ 저 세상이란 게 언제나 그러했듯이 흔한 말 또한, 시간에 떠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음을 몰랐던 기대였던 걸까. 나머지로 분류된 이 삶을 지탱해 주기엔 너무나도 연약했고, 나의 기대는 어릴 적의 그것으로부터 손톱만치도 성장하지 못한 듯했지.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었다.
조금만 더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줄로만 알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기어코 피어난 민들레가 그러하듯이, 세상에 놓인 그게 무엇이든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고 배웠으니까. 씁쓸한 눈물을 빼닮은 맛이 뚝뚝 흘러 인상 찌푸려진대도, 이 정도의 씁쓸함 따윈 괜찮다면서 견뎌낼 수 있었는데_
적재적소라는 말을 이 삶에 접목시키자니 저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다. 길가에 죽죽 늘어선 가로수의 역할마저도, 아스팔트 위로 나란히 줄지어진 차량을 헤아리면 시원찮게만 보였고. 저울로 기능하는 마음에 부족함과 풍족함을 올려보면, 조금의 오차도 없이 평평하기만 해서 이미 찌푸려진 인생이 더욱더 찌푸려지더라고. 저 세상은 간편하게 이해되는 세상이 아니었단 사실을 그렇게 배웠다.
조금은 어렵게 서럽게 따갑게 배웠다.
세상에 놓인 그게 무엇이든 간에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던 흔한 말이 더는, 위로가 될 수 없으며 이딴 오늘마저도 담지 못할 ‘옛말’이 돼버렸단 사실까지도 나는: 어렵게 서럽게 따갑게 배웠다.
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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