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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키코치 Dec 13. 2021

육아도 레시피가 있으면 좋겠다.

나의 만능 레시피는 기다림

아이를 키우다 보면 눈앞이 캄캄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감성이 풍부한 둘째를 키우면서 아이의 기분에 따라 내 감정도 사인 코사인 곡선을 그릴 때가 많았다. 오늘은 뭐가 문제야? 어제까지 마음에 들었던 옷이 오늘은 마음에 안 든다며 울었고, 등원이 코앞인데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현관문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겨울왕국 여파로 길게 땋은 디스코 머리가 대유행이었다. 디스코 머리를 땋지 못하던 나는 제자에게 디스코 머리 땋는 법을 배웠고, 친구의 벼 머리를 부러워하는 아이를 위해 단골 미용실에 가서 벼 머리 땋는 법을 배웠다. 이런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삐져나온 잔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현관에 버티고 서서 등원을 거부하는 너란 아이. 현관 벽에 붙어있는 통 거울을 떼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치원 버스를 제시간에 태운 날이 절반도 안 됐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등원시키는 날엔 차에서 아이에게 폭풍 잔소리를 해댔다. 한참을 훌쩍이다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유치원에 들어가던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은 웃음이 난다. 그땐 올라오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인근 편의점에서 커피 우유로 당 보충을 하며 차에 멍하게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부모와 자식도 성향이 다르면 힘들다는 게 어떤 건지 온몸으로 느끼는 극한 체험의 연속이었다.   

  

한 번은 엄마에게 혼나고 눈물로 뒤범벅된 채 잠들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안 예쁜 건 싫어!"라고 말하며 떼쓰다가 잠든 너.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네 눈엔 이쁜 게 참 많은가 보다.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다가 육아에도 레시피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때마다 알맞은 것들을 곁들이기만 하면 너도나도 이렇게 힘들진 않을 텐데.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우리만의 레시피가 생길까? 옷 때문에 기분 나쁜 너를 위한 레시피는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거나 전날 입고 싶은 옷을 미리 골라둔다. 아니 이건 해봤다. 미리 골라 두면 뭐하나. 다음 날 아침에 마음이 변했다며 다른 옷을 찾는 너인데... 장난감 사고 싶다고 마트에서 떼 부리는 너를 위한 레시피는 달래서 데리고 오거나 마트에 데리고 가지 않거나, 그냥 사주거나. 그런데 이것도 마음에 안 든다.     


내가 선택한 만능 레시피는 '기다림'이었다. 감정이 상했을 땐 어떤 말로도 설득이 안 되는 둘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네 마음 너도 모르겠지? 그런데 엄마가 자꾸 이렇게 해볼래? 저렇게 해볼래? 얘기하다가 화내니깐 너도 힘들지? 그래 기다려줄게. 너도 네 마음을 잘 들여다보렴. 이 기분 나쁨이 조금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을 가져보렴. 네 기분에 휘둘려야 하는 엄마도 힘들구나! 엄마도 시간을 가져볼게. 호흡을 가다듬고 너를 기다려줄게.  

   

나의 레시피는 기다림 한 국자, 심호흡 열 스푼, 달달한 초콜릿 한 개였다. 아이와 조금 거리를 두고 초콜릿을 입에 물고 가만히 앉아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의 저항이 거셀 때는 청심환 같은 안정제를 먹으며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아이도 슬쩍 내 눈치를 본다. 이 틈을 이용해 단호하게 한마디 던져준다. “떼 부린다고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엄마는 떼 부리면 절대로 들어주지 않아. 그러니 이제 그만해!”라고.     


아이를 위해선 ‘안 돼’라는 거절의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가 허용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주고, 그 선을 넘어왔을 때 한결같이 안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귀찮다고, 주변 사람들 보기 민망하다고 들어주기 시작하면, 아이가 떼 부리는 강도는 점점 거세진다. 시간이 걸리고,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한결같은 부모의 훈육 태도는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규칙을 정해두고 혼내기!

우리의 규칙은 부모가 정한 선을 넘어올 땐 아주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 즉, 물을 엎지르거나, 집을 어지르거나, 잠이 와서 투정 부리거나, 피곤하거나 배고파서 짜증 낼 때는 아이를 혼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꼭 한 번씩 부모 간을 볼 때가 있다. 이럴 땐 거침없이 아이를 꺾어줘야 한다. 난 너에게 호락호락당하지 않는다는 걸 각인시켜줘야 한다. 특히 아들은 서열 관계에서 밀리면 계속 힘들어진다. 아이도 부모가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지하는 순간 불안정해진다. 집에서 말 안 듣는 아이가 태권도 관장님 말씀을 잘 듣는 이유는 태권도 관장님이 본인의 서열보다 우위에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와의 힘겨루기가 힘들거나 귀찮아서 포기하면 아이는 부모에게서 안정감을 얻을 수가 없다.    

 

'난 너를 통제할 수 있단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정해준 선만 넘지 않으면 돼.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놀아도 된단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를 언제 혼내야 할지, 어디까지 허용해줘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한결같은 태도로 아이를 훈육한 결과 아이는 마트에 가서 “구경만 하고 있을게요. 떼 부려도 안 사주는 거 알아요. 칭찬 도장 모아서 뭘 살지 고민해 볼게요.”라고 말하며 기다릴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둘째 아이는 얼마 전 어버이날 외할머니께 이런 편지를 썼다. “할머니, 제가 어렸을 때 떼를 많이 부려서 힘드셨지요? 힘들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그땐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짜증이 났나 봐요. 이제는 안 그래요.”라고.    

 

나중에 둘째가 돈 벌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외할머니가 너를 돌보며 드셨던 청심환 값 니가 갚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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