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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위한 엔믹스 입문(下)

타이니데스크 엔믹스 편 함께 듣기

by 우덕호

라이브에서 가장 빛나는 그룹


엔믹스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그룹입니다. 이들이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음악의 힘을 보여드리고자 신중하게 고른 영상을 딱 하나 가져왔습니다. 이 중에는 바라건대 여러분의 귀에 익은 곡도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EP <Fe3O4: Stick Out> 발표 시점에 타이니데스크 코리아에서 마련한 무대입니다. 기존 노래 세 곡과 새로운 앨범에 수록된 두 곡을 세션 밴드와 함께 소화했습니다. 타이니데스크 무대답게 인이어나 MR/AR 없이 원테이크로 합을 맞춘 이 영상은 특유의 분위기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가 감상은 물론 입덕 영업용으로도 즐겨 사용하곤 합니다. 이 영상은 NPR Music 본채널에 직접 업로드되기도 했습니다. NPR Music의 총괄 프로듀서인 수라야 모하메드Suraya Mohamed는 ‘NMIXX는 여느 한국 걸그룹과는 다르다(NMIXX is not just another South Korean girl group.)’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이들을 소개합니다. 테드 지오이아Ted Gioia라는 미국의 저명한 음악 비평가가 본인이 운영하는 뉴스레터 <The Honest Broker>에 게시한 <16 YouTube Videos I'm Watching This Week>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에서 깜짝 소개한 영상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밝히기를, K-Pop 영상을 소개하는 건 처음이라고 하네요. 타이니데스크 코리아 엔믹스 편은 그만큼 많은 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퍼포먼스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멤버들을 비롯해 세션까지 즐겁고 신나게 무대를 한 판 벌이는 모습이 보는 이까지 행복하게 만듭니다.


https://youtu.be/bm-p-3Eh3G4?si=WLWUh9UP7S68KBz6

NMIXX: Tiny Desk Korea (출처: NPR MUSIC 유튜브 채널)



사랑과 연결, 모험과 도전


(0:03) Love Me Like This

사랑은 굳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마음속에 깊은 바다가 펼쳐지게 만드는 마법입니다. 차가운 금속의 심장에 약간의 피가 돌기 시작하는 순간, 꽃들이 참아왔던 숨을 터트릴 것입니다. 숨겨놨던 마음속의 깊은 바다에서는 감정이 큰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엔믹스의 세상에서 큰 파도는 피해야 하는 절대적인 공포가 아니라 버클을 단단히 조여매고 올라타야 하는 대상입니다. 거대한 파도 속에서 마음껏 열기를 내뿜다 보면, 환한 꽃들이 불꽃처럼 여기저기 터져 나오게 됩니다. 공허한 마음들이 만나면 더 큰 공허의 수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0+0=∞의 공식처럼 무한대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상호 증폭을 통해 한없이 커지는 사랑.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의 연결을 갈구하는 호소는 "Love me like this and I love you right back"이라는 마지막 가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켜켜이 쌓이며 일순간 엔진이 폭발하듯 고저와 조화를 곳곳에 만들어내는데, 이 에너지는 모험을 지속하는 주요 동력입니다.


(3:29) DASH

엔믹스의 노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심상이 있습니다. 상상력은 힘. 길은 헤쳐나가는 것. 벽은 깨부수는 것. 심장은 터질 듯이 달려야 하고,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은 벗어난다. 손을 잡고 연결되는 우리. 네모칸이나 박스는 없애버려야 하는 것. 하늘의 별을 지향한다. 덤다디, 다리럼, 주문같이 되뇌는 소리. 이들 모두는 포기하지 않고 억압과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공통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DASH>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케이드는 세상의 의도와는 달리 밟고 지나가는 대상이고, 가본 적 없는 거친 길은 내가 꿈꿔온 루트가 됩니다. 앞을 막는 건 모조리 다 물리치고 속도를 높여 질주합니다. 무섭기도 하지만 멈추지 않고 겁내지 않습니다. 항해의 키를 잡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내 길은 내가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8:34) Run For Roses

제가 대학시절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불렀던 노래 중에는 불나비처럼 몸을 던지겠다는 격한 투쟁가도 있고, 벗들이 있기에 청춘도 아름답다는 연대의 노래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은 가슴속에 뭔가를 끓어오르게 하는 노래들이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인생이 잘 안 풀린다고 느껴지거나 뭔가를 하기에 지쳐있을 때 흥얼거리면 저도 모르게 투쟁의식이 충만해집니다. 요즘에는 시위 현장에서도 블랙핑크나 소녀시대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고 하던데요. 함께 부를 때 더욱 힘이 세지는 노래의 속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이 곡이 현대의 민중가요에 가장 적합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에 살아있고,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겠다. 이대로 함께 낭만을 향해 달려가자고 진중하게 읊조립니다. 가시덩굴에 둘러싸인 그 한 송이 장미를 얻기 위해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가겠다고 외치는 순간, 맞잡은 두 손 사이에서 꽃들이 만개합니다. 반복되는 절망은 지겹기만 해도 함께 극복하겠다 말합니다. 목표를 향해 우리가 나아가는 과정에서 긁히고 패인 상처는 자랑이 될 것입니다. '낭만'이라는 단어는 이 시대에 조금 케케묵지 않았나 싶다가도, 노랫말 속에서 멤버들의 보컬을 통해 장미처럼 선명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봅니다. 염원을 담아 주문처럼 내뱉는 후렴구가 인상적입니다.


(14:02) 별별별(See that?)

진중함과 동시에 재기 발랄함, 신선함으로 꽉 차있는 노래입니다. 개인적으로 청개구리, 두더지 파트를 좋아하는데, 실제로 이것들은 지극히 귀여운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스러운 두 종류의 생물은 어떻게 제멋대로인 존재의 표상이 되었을까요. 남들이 얘기한 것과는 정반대로 굴거나, 평평한 땅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튀어나오기 때문일까요? 영상에서는 이 부분에서 멤버들이 세션으로 분해 하찮아 보이는 악기들을 들고 연주합니다. 각자 개성 있는 불협화음의 조화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멋진 장면입니다. 이 트랙은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별종들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더지 얘기를 좀 더 해 보겠습니다. 두더지는 극히 제한된 시야를 가지고 땅 속에서 생활합니다. 어두운 두더지의 눈에서 빛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늘 하던 대로 수평이나 아래로 파고들 때가 아닙니다. 자신의 세상을 뚫고 나오려는 결심을 하는 바로 그때입니다. 누구든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만 한다는 말처럼, 두더지는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투쟁합니다. 물론 그 시도가 단순히 방향을 착각하고 길을 잘못 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에 의한 행동이든, 제 세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이 든 간에 이 장면은 그 자체로 경이롭습니다. 이 곡이 수록된 <Stick Out> 앨범에서는 이렇게 '불거져 나오는' 다양한 순간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타성을 무너뜨리고 비현실적인 꿈을 꾸게 할 것임은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이 노래는 누구도 나를 억누를 수 없다는 육중한 선언입니다.


(22:01) Love Is Lonely

이 곡은 타이틀을 통해 '사랑은 외롭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사랑에 실패하거나, 혼자 사랑하거나,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고 느끼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실낱같은 사랑을 이어가는 중이거나... 하지만 제목 너머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너의 부재'라는 외로움의 조건입니다. 문장을 평이하게 재배치하면 '네가 있기에 내 사랑은 외롭지 않다'가 됩니다. 하지만 엔믹스의 언어에서는 사랑의 속성이 외로운 것이라고 우선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외로움을 없앨 수 있는 조건으로 상호적인 '너'의 존재가 구원처럼 등장합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 방황하며 떠돌던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말 그대로 운명적인 일입니다. 고난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약한 빛이라도 발하고 있다면 가능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희미한 빛은 더 눈에 들어오는 법이니까요. <Love Is Lonely>에서는 공허한 우주의 낯선 궤도를 한없이 떠도는 작은 별도 어두운 밤 함께 빛나는 작은 빛을 확인할 수 있다면 외로움을 견딥니다. 노래의 말미에서는 이 속삭임이 한층 희망에 찬 확신으로 변해갑니다. 모든 이들이 태양만을 바랄 때 나는 우산도 없이 너의 비를 함께 맞아도 좋아. 그 속에 끝없이 잠겨버려도 함께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그렇게 하겠어. 이 다짐으로 두 사람이 연결되는 순간, 희미했던 불빛은 확 밝진 않을지언정 더욱 단단하게 빛납니다. 그래, 네가 있기에 내 세상은 로맨틱하다. 내 사랑의 조건은 다 너였다.



모험은 계속된다


엔믹스의 노래들은 독립적으로 보면 사랑, 세상의 편견,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덧입습니다. 어느 쪽이 되든 그 자체로서 완성도 높은 음악과,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역량 있는 보컬, 잘 짜인 퍼포먼스는 엔믹스의 음악을 제 플레이리스트 상단에 머무르게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소위 자컨이라고 불리는 자체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멤버 개개인의 다채로운 매력과 상호작용은 덤으로만 생각하기에 마냥 아쉬울 따름입니다.


오늘은 엔믹스의 새로운 음반이 발표되는 날입니다. 채 몇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 글을 어떻게든 조속히 마무리해 보고자 했던 것은, 앨범 발매 전에 여유를 두고 사전 정보를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목표조차 방해하는 빌런은 저의 생업입니다. 일정이 조금씩 뒤로 밀리더니, 며칠 전에 수정한 계획은 발매 디데이에 맞춰 하루 한 편씩 업로드하는 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섯 편을 세 편으로 줄이기도 했습니다. 남은 시간이 3일밖에 안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엔 세 편을 하루에 몰아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발매 시간인 18시 전에 가까스로 업로드하긴 했으니, 저의 가벼운 모험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 전에 이것도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시 누군가 엔믹스의 음악을 감상하는 데 이 글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미 너무 나이 들어버린 것만 같은 지금, 저는 이 지지부진한 생업과 일상에서 벗어나 더 큰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요? 엔믹스의 새 음반을 들으며 다시 의지를 부풀려 보겠습니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험과 항해에 물살이라도 한 번 갈라주는 노꾼이라도 되었다 생각하면 제 1인 사업장의 육체노동도 외롭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엔믹스의 음악은 일상 속에서도 저의 모험이 늘 계속되는 상태로 유지해 주는 멋진 동료입니다. 일단 제 여정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저에게 있어 걸그룹 덕질은 모험이라면 모험이지만, 일상이 즐거워진다면 전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동년배들에게도 조심스레 입덕을 권합니다.


<Fe3O4: FORWARD> 트랙 리스트 (출처: 인스타그램 @nmixx_official)




영상 세트 리스트

① Love Me Like This <expérgo> (2023)

② DASH <Fe3O4: BREAK> (2024)

③ Run For Roses <Fe3O4: BREAK> (2024)

④ 별별별(See that?) <Fe3O4: Stick Out> (2024)

⑤ Love Is Lonely <Fe3O4: Stick Out> (2024)


* 커버 이미지: 엔믹스 EP 2집 <Fe3O4: BREAK> (2024) (출처: JYP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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