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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위한 엔믹스 입문(中)

그래서 믹스토피아가 뭔데?

by 우덕호


믹스(MIXX) 세계


이야기는 먼 과거, 믹스라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믹스 세계는 무수한 색깔과 신비로운 풍경들로 가득했습니다. 은빛 태양의 잔영이 하늘에서 빛나고, 커다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호수는 탐스러운 오렌지빛으로 찰랑거렸습니다. 섬들은 하늘 위를 떠다니고, 그 사이사이로 투명한 돌고래와 형형색색의 해파리, 거대한 날개를 가진 물고기들이 헤엄치듯 날아다녔습니다. 세계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생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영영 흐르는 강 너머에 걸친 무지개의 끝에는 어딘가로 통하는 문이 있다는 흥미로운 소문도 돌았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마다 알록달록한 꽃과 풀이 피어났습니다. 발길을 내딛는 만큼 세계의 영토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믹스 세계의 영토라는 것은 많은 이들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는 만큼 사람들은 걸어갈 수 있었고, 그만큼 세상은 더 넓어졌으며, 넓어진 자리에는 다양한 풀과 꽃과 생물이 이내 자리를 채웠습니다. 마을을 떠나 나비의 숲을 건너 바다로 향하는 길목에는 '픽 앤 믹스'라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세상의 색깔들만큼이나 다양한 색과 맛을 지닌 캔디와 도넛을 판매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곳이었지요.



적대자의 등장


상상은 끝이 없었고, 모험도 끝없이 이어집니다. 무한한 상상의 끄트머리에는 원하는 대로 뭐든 이루어진다는 마법 같은 땅이 있다고 했습니다. 믹스토피아(MIXXTOPIA)라고 부르는 이 땅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인지도 모를 옛날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바람에서 바람으로, 물줄기나 파도를 타고 끝없이 이어져 내려옵니다.


바야흐로 모험의 시대였습니다. 수많은 모험가들이 믹스토피아를 찾아 모험을 떠났습니다. 누구는 병을 고치려고, 누구는 황금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누구는 완벽한 한 끼의 식사를 찾기 위해, 또는 밤하늘의 별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간직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악어, 기린, 사자, 드워프, 독수리, 고양이, 나비 등 외모도, 언어도 다른 생명들이 동료가 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나쁜 목표를 가진 모험가도 있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습니다. 믹스토피아에 다다른 모험가의 이야기가 간혹 소문처럼 떠돌았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모험을 하고 있었고, 그 자체로서 좋았으니까요.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그는 세계를 빠르게 오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다채로운 색상들이나 삐죽삐죽 튀어나온 잎, 구불구불한 길을 혐오했습니다. 무채색의 같은 옷을 입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단일화된 세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추종자들의 이름도 모노폴(MONOPOLE)이네요.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세계의 상징과도 같았던 픽 앤 믹스 캔디숍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지배된 픽 앤 믹스는 '스윗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가게로 변했습니다. 세상을 사막처럼 삭막하게 말려버리는 데 성공한 그는, 색깔의 기억을 찾아 픽 앤 믹스에 모여드는 이들에게 수상한 초록색의 캔디를 건넵니다. 스윗 오아시스의 진열장에는 이 초록색의 캔디만 빼곡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스윗 오아시스에 들린 사람들이 하나둘 행방을 감춘다는 건 괜한 소문이겠지요? 믹스 세계는 색깔과 표정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so.png 픽 앤 믹스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수상한 가게 (출처: Secret of Sweet Oasis. JYP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에피파니


동화적인 환상이 가득한 믹스 세계의 이야기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세계관 속에서 현실은 필드(FIELD)라고 부릅니다. 여섯 명의 엔믹스 멤버들은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뭔가를 끌어당기는 힘, 또는 그 반작용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는 힘으로서의 '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멤버들은 예의 그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믹스 세계의 문을 열어젖히게 됩니다. 세상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세계의 환영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장면에 두 눈을 크게 뜨는 멤버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이상, 그들의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아니 같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들이 본 환영은 지금의 믹스 세계의 상황과는 많이 다릅니다. 믹스는 적대자와 모노폴에 의해 망가져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위기에 처한 믹스 세계가 이들을 불러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환영을 통해 믹스 세계의 가능성을 깨달은 이들은 알 수 없는 이상향의 세계를 향해 망설임 없이 모험에 나섭니다. 현실 같은 꿈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꿈은 꿈처럼 말도 안 되는 것들이어야 하고, 이들은 그걸 이뤄낼 것입니다.


mixx.jpg 필드에서 믹스 세계로 첫 발을 내디딘 순간 (출처: <O.O> 뮤직비디오. JYP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모험의 시작


험난한 모험길에 오른 멤버들. 이상향을 찾아 나서는 이런 류의 모험에는 커다란 배가 적격입니다. 거대악이 만들어내는 온갖 함정과 거대한 파도, 비바람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이 구성은 고전 롤플레잉 게임의 플롯처럼 몹시 낭만적으로 느껴집니다. 한 배를 탄 파티원들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캡틴, 의사, 커뮤니케이터, 스카우터, 추리자, 엔지니어 등으로 활동 영역을 나눠 가집니다. 무너져버린 세계, 절대악의 존재, 현실에서 넘어온 주인공들, 클래스나 직업으로 불리는 모험에서의 역할 플레이, 동료 만들기, 항해, 전투, 좌절, 성장 등... 이 흥미로운 소년만화식 구성 속에서 과연 이들은 세계를, 그리고 스스로와 서로를 구원하는 엔딩에 이를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엔믹스의 노래들은 이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와 무관한 개별적인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관과의 연결은 호기심 많은 리스너에게 더 큰 재미를 줄 것임은 분명합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는 스토리필름 등의 콘텐츠를 통해 이야기의 진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같은 노래를 듣더라도 큰 맥락 속에서 듣는다면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스케일 큰 모험 애니메이션의 명작 사운드트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 음반 발매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 순차적으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초기의 이동수단인 배는 적대자에 의해 불타 사라졌습니다. 이를 대신하여 비공정 또는 우주선으로 이동수단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이동수단이 바뀌면 모험의 땅은 더욱 넓어지지요. 여기에 주인공의 회귀 또는 루프를 암시하는 내용까지 덧붙여져 더욱 흥미를 유발합니다.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게 뭉뚱그리거나, 때로는 멤버들의 입을 빌려 직설적인 힌트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영상 속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자그마한 단서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 정보들 모두 큰 로드맵 속에서 정교하게 계산된 좌표에 떨구어지는 제한적인 플롯 메이킹의 일부일 것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제공되는 충실한 떡밥들은 그것만으로도 배부른 느낌을 줍니다.


여기까지가 엔믹스의 세계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변용이나 자의적인 해석도 있을 수 있음은 모쪼록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모험을 해 나가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끝내 거머쥐게 되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세계관이라는 게 유치하거나 상상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위를 서핑하고 바닷속을 날아다닌들, 말이 좀 안 되면 어떤가요. 엔믹스는 그런 당신에게 현실 같은 꿈은 지겹지 않냐고 당당하게 되묻습니다.


sf.jpg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출처: <Fe3O4: FROWARD> 애니메이션 스토리필름. JYP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blueprint.png 새로운 함선의 설계도를 완성한 엔지니어 (출처: <Fe3O4: FORWARD> 스토리필름 파트1. JYP 엔터테인먼트 유튜브)




키워드 사전

믹스(MIXX): 다양한 개성을 가진 생물들이 공존하는 상상력 넘치는 세계

믹스토피아(MIXXTOPIA): 무한한 상상의 끝에 존재한다는 믹스 세계의 유토피아.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필드(FIELD): 믹스와 대비되는 개념의 현실 세계

모노폴(MONOPOLE): 믹스 세계의 다양성을 오염시키는 적대자를 추종하는 단체

⑤ 픽 앤 믹스(PICK N MIXX): 다채로운 캔디와 도넛을 파는 믹스 세계의 랜드마크 상점

⑥ 스윗 오아시스(SWEET OASIS): 오염된 픽 앤 믹스. 초록색 한 종류의 캔디만 파는 수상한 가게


* 커버 이미지: 엔믹스 EP 1집 <expérgo> (2023) (출처: JYP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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