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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위한 엔믹스 입문(上)

함께 떠나는 일상의 모험

by 우덕호


프롤로그


250114. 저는 신년 계획 무용론의 신봉자이지만 올해는 이것저것 목표를 세워 보았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상하게 새로운 결심이나 분위기의 반전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이루기엔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그럼에도 게으른 천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지, 올해의 시작은 작년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질질 끌리다 맥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250228. 역시 한국인에게는 설날이 한 해의 진정한 시작이지요, 라고 글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가 어느새 3월을 코앞에 두었습니다. 게으른 자들에게 3월은 마지막으로 새로운 다짐을 부여잡을 더할 나위 없는 기회입니다. 학기가 시작되거나 계절이 바뀌는 상징적인 시점. 3월만큼 새로운 기분을 내기 좋은 때가 없습니다.


250315. 여기까지 썼던 것을 발견하고 다시 이어 씁니다. 다시 보니 저 목표라는 것도 일주일에 몇 시간 운동을 하겠다거나, 대출을 상환하겠다는 등의 현실적인 내용뿐입니다. 어른이 되니 꿈도 어느새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겸연쩍은 마음에 글을 좀 써 보겠다거나, 돈벌이와 관계없는 개인 작업도 종종 해 보겠다는 다짐을 몇 줄 추가해 봅니다. 저는 과연 이 지지부진한 현실을 깨부수고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엔믹스가 뭔데?


이렇게 장황하게 써 놓고 보니 뭐라도 대단한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실은 그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추가된 목표 중 하나는 ‘엔믹스(NMIXX)’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왜 갑자기 엔믹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엔믹스는 현실적인 꿈을 집어던지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이상을 좇으라는 메시지를 반복해 들려주는 작은 목소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친 하루 속에서 그 이름이 들려오면 어느새 분위기가 반전되고, 다시 치고받고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이 뿜어져 나옵니다. 이름조차도 어찌나 단단하고 생동감 있는지. ‘엔’, 할 때 혀끝이 앞니 뒤를 살짝 두드리고, 바로 입술을 붙여 터뜨리듯 이어지는 ‘믹쓰-’의 강렬함. 두 개의 닿소리로 분리되어 사르르 사라지는 마지막 x의 소리까지 완벽합니다. 실제로 엔믹스는 제 직업상 작업 효율을 5% 이상 증대하거나, 체육관에서 마지막 5분 고강도운동을 거뜬히 추가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 줍니다.


아직까지도 ‘엔믹스가 도대체 뭐야?’ 하고 궁금해하실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엔믹스는 2022년에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걸그룹입니다. 트와이스나 잇지, 더 거슬러 올라가 우리 동년배들에게 더욱 친숙한 이름으로는 원더걸스나 미쓰에이의 후배 그룹이지요. 불혹의 나이에 다다른 제가 어찌하여 여기서 주접 행위를 부끄럼 없이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곧 엔믹스의 새 음반이 발매되는데, 이렇게 쓰다 보면 기다림의 시간이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는 해 봅니다.


30세가 넘으면 새로운 음악을 찾기보다 익숙한 음악을 반복해 듣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것저것 들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플레이리스트의 재생 횟수 상위권은 대부분 예전에 한창 듣던 음악들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동년배 여러분께 엔믹스의 음악을 부디 들어주십사 읍소나 강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단은 그저 TV 채널을 돌리거나 핸드폰을 할 때 익숙한 이름이 보이면 알은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엔믹스의 활동 재개가 코앞에 와 있으니까요.


40768b2df90c42569d9adb7709d828e9-nmixx_01.jpg <Fe3O4: FORWARD> Concept Photo (출처: JYP 엔터테인먼트)



믹스팝과 세계관


엔믹스라는 팀이 보이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믹스’입니다. 엔믹스(NMIXX)라는 이름부터가 미지수(n)의 조합(mix)을 의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믹스팝(MIXX POP)’이라고 이름 붙인 장르적 문법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복수의 이질적인 파트를 연결하여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힙합과 재즈가 한 곡 안에서 갑자기 교차하는 식으로, 예상치 못한 전환이 특징입니다. 특이한 곡 전개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몇몇 곡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엔믹스의 노래를 듣다 보면 중간에 'NMIXX'를 외치는 것과 같은 체인지업 콜사인이 있는데, 그것을 기점으로 곡 전후의 분위기가 급격히 변화합니다. 재미있는 기믹이긴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대중의 호불호가 어느 정도 갈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곡 제작자나 퍼포머의 역량이 불충분하다면 리스너들은 그 지점에서 바로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세심하게 만들어진 곡 위에 뚜렷한 개성들이 정교하게 믹스되는 멤버들의 보컬이 더해진다면, 취향은 갈릴지언정 완성도 높고 세련된 작품인 것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엔믹스의 음악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엔믹스뿐 아니라 많은 근래의 그룹들이 음악에 자체적인 설정과 이야기를 담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낯설거나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캐주얼하게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진입을 방해하는 난해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의견도 많은 모양입니다. 세계관을 내세우는 그룹들은 이와 연계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지레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믹스팝 또한 여느 장르와 같이 사전 배경 지식 없이도 충분히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악들입니다. 세계관 이전에 보편적인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일부러 저버릴 제작자나 아티스트는 없을 테니까요. 세계관을 아는 만큼 음악의 숨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관이 궁금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거창한 세계관이나 장르에 대한 인식 없이 노래만 흥얼거리더라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상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으로서 고백합니다. 엔믹스의 노래에 일관성 있게 등장하는 특정 기호들을 찾아 조립하거나, 판타지적인 스토리라인에서 이후 전개를 예측해 보는 것은 저에게 매우 재미있는 활동으로 느껴집니다. 이 세계관을 면밀히 분석하여 <믹스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뉴비를 위한 안내서> 라든가, <READ N MIXX: The Ultimate NMIXXology Guide> 따위의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싶은 욕망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지식과 체력, 시간 중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지나가던 아저씨의 다소 엄중한 덕질 일지 정도의 느낌으로 엔믹스를 소개하는 글을 딱 세 편만 가볍게 써 보겠습니다. 간략한 세계관 설명과 대표곡 소개 정도를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엔믹스의 세계관 속에서 멤버들은 다양성과 상상력이 힘이 되는 세계를 향해 거친 모험을 해 나가는 중입니다. 모험에는 나침반이 필요하겠죠. North, South, West, East, 그리고 길(Route)을 알려주는 답으로써 엔써(NSWER)가 존재합니다. 엔써는 엔믹스의 팬덤 이름입니다. 읽다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간다면 여러분도 이미 유망한 예비 엔써입니다. 어딘가의 명단에 등록한다거나 거창한 지식을 갖출 필요도 없습니다. 모험에 동료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누구든 이끌린다면 올라타면 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중년의 엔써였습니다.


NSWER.jpg 엔써의 상징인 고래 (출처: JYP 엔터테인먼트)




키워드 사전

① 엔믹스(NMIXX):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6인조 걸그룹. 멤버는 릴리, 해원, 설윤, 배이, 지우, 규진

② 믹스팝(MIXX POP): 다양한 섹션을 연결하여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작법. Mix를 MIXX로 표기

③ 엔써(NSWER): 엔믹스의 공식 팬덤명. North + South , West, East + Route


* 커버 이미지: 엔믹스 싱글 1집 <AD MARE> (2022) (출처: JYP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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