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이 개발되면서 종이책 입지가 위협을 받을 거란 예측이 있었다. 전자책 읽는 20대 인구가 증가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종이책을 읽는 것이 '텍스트힙'이라 여겨지며 유행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지만 그렇다고 옛날 것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음악 산업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음악을 듣는 형식이 LP, CD,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 등의 순서로 이어지며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아이돌 CD는 팬들에게 또 다른 가치를 가져다주어 팔리는 상품이 되었고, LP는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체험형 소비가 되었다. CD, LP용 플레이어가 없어도 이를 사서 모으거나 큰 스피커로 들을 수 있는 공간에 사람들이 모인다. 누군가에겐 보고 듣는 음악으로, 옛날 감성을 자극하는 레트로 감성으로, 새로운 체험이자 이색 데이트 코스로,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나 편안한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이다.
덕분에 LP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사랑 받고 있다. 오랜 시간 LP를 수집해온 공간, 재즈를 좋아하는 취향이 묻어나는 공간, 조용히 음악에 집중하거나 뮤지션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공간 등 다양하다. LP가 모여있지만 컨셉도 용도도 다르다. LP음악을 저마다의 취향으로 채운 부산의 LP바 3곳을 소개한다.
남천항 인근 방파제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상가 건물 2층에 재즈프레소가 있다. 벽 한쪽 면에는 LP가, 다른 벽에는 카세트 테이프로 가득차 있다. 공간 한 쪽에는 라이브 공연이 이뤄지는 피아노와 드럼 자리가 세팅되어 있다. "여긴 진짜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LP는 사장님께서 고등학생 때부터 직접 모은거라고. 화려한 스피커와 함께 재즈에 관해서라면 (거의) LP로 준비되어있어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 라이브 공연도 거의 매주 열린다. 재즈 애호가, 뮤지션과 교류도 활발하다. 오픈된지 1년이 채 안 되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사장님의 취향이 응집된 공간이다.
시간이 쌓인 진심은 분명 통한다. LP와 재즈에 모든 진심을 쏟은 애호가의 감각을 즐기고 싶다면 방문해보길 권한다.
부산 전포동 거리를 걷다 보면 100가지 우주를 볼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컨셉과 확고한 취향을 가진 가게로 가득한 골목길이다. 그 중에서도 평일, 주말 모두 2030대로 가득한 카페가 있다. 구프는 LP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레코드바 이다. 가게 내부엔 LP와 함께 레트로 팝 감성을 자극하는 포스터로 가득하다. 커피, 칵테일, 디저트, 브런치 등 즐길 수 있는 메뉴도 다양하다. 친구를 만나는 곳으로, 작업하는 공간으로, 취향을 즐기는 공간으로 등 이곳에 방문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LP감성과 편리함까지 모두 갖췄다. 부산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이다.
전포동에 위치한 LP바 셰르는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아늑한 조명과 우드톤 인테리어는 LP의 매력과 잘 어우러진다. 바텐더 앞쪽으로는 다양한 술이, 뒤쪽으로는 LP가 쌓여있다. 테이블을 둘러보면 많은 손님들이 시키는 메뉴가 있는데 과일과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크로플'이다. 셰르는 분위기 좋은 LP바로도 유명하지만 넉넉한 인심의 안주로도 유명하다. 주문 즉시 크로플을 굽고 신선한 과일을 컷팅해 서빙된다. 이곳에서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편안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셰르에서 LP 음악과 함께 세련된 편안함을 즐겨보길 권한다.
LP를 즐기는 이유가 다르듯 LP바를 만든 이유도 모두 다르다.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일이다이다. 각자의 컨셉과 취향이 뚜렷해 다양한 우주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앉아 턴테이블에서 틀어진 LP 소리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자극적인 소리에서 벗어나 음악을 온전히 흡수하는 동안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